우리 전통 명절 속에 숨겨진 아로마

창포물에 머리 감던 '단오'의 향기

by 이지현

우리의 기억 속에 '명절'은 주로 풍요로운 가을의 추석이나 새해를 여는 설날의 분주함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화려한 명절의 그림자 뒤편에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자연의 힘을 빌려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소박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숨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향기로운 기억을 품은 날이 바로 여름의 문턱, '단오(端午)'다.

음력 5월 5일, 일 년 중 양(陽)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다는 이날, 우리 조상들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특별한 향기 의식을 치렀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창포를 뜯어와 끓인 물에 정성껏 머리를 감고, 집 대문에는 쑥을 꽂아 악귀를 쫓았으며, 그윽한 향나무 그네를 타며 여름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글에서는 잊혀 가는 이 아름다운 명절 속에 담긴 향기로운 지혜를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관점에서 재발견하고자 한다. 창포의 맑은 향기와 쑥의 굳건한 향기가 단순한 미신이 아닌, 얼마나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자기 돌봄의 방법이었는지 알아보자.




여름의 문턱에서, 역병과 싸우다

단오의 모든 풍습은 '여름'이라는 계절이 가진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했던 계절, 여름을 맞이하는 조상들의 지혜는 절박한 생존의 기술이기도 했다.


'수릿날',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

단오는 '높은 날', '신의 날'이라는 의미의 '수릿날'이라고도 불렸다. 음력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 중에서도, 양의 숫자인 '5'가 겹치는 5월 5일은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극에 달하는 날이라고 믿었다. 만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이 시기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기운, 즉 '사기(邪氣)'와 역병 또한 가장 왕성해지는 위험한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조상들은 가장 강한 양의 기운을 빌려, 음의 기운인 모든 사악하고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고자 했다.


향기, 보이지 않는 적을 막는 방패

현대 의학이 없던 시절, 덥고 습한 여름은 콜레라, 이질과 같은 수인성 전염병과 모기와 같은 해충이 옮기는 질병이 창궐하는 공포의 계절이었다. '나쁜 공기(미아즈마)'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믿었던 서양의 흑사병 시대처럼, 우리 조상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기운과 역병을 막기 위해 가장 강력한 무기인 '향기'를 사용했다. 강렬하고 깨끗한 향을 가진 식물은 그 자체로 부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는 실제로 공기를 정화하고 해충을 쫓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맑은 정신을 씻어내는 향, 창포(菖蒲)

단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맑은 냇가에서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의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풍습은 단순한 미용법을 넘어, 깊은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tip004t121024_l.jpg?type=w800


'창포물에 머리 감기'의 의미

단오날 아침, 여성들은 창포(학명: Acorus calamus)의 잎과 뿌리를 삶은 물, 즉 '창포탕'을 만들어 그 물에 머리를 감았다. 이는 머리카락에 윤기를 더하고, 부스럼이나 피부병을 예방하며, 두피를 건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바로 '정화'에 있었다. 창포의 맑고 깨끗한 향기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깃들어, 일 년 동안의 나쁜 기운과 불운을 모두 씻어내고, 맑은 정신으로 여름을 맞이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남성들은 창포 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액운을 막기도 했다.


현대 과학으로 본 창포의 효능

이러한 전통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지혜로운 건강 관리법이었다. 창포의 뿌리와 잎에는 '아사론(Asarone)'과 '아코린(Acorin)' 이라는 정유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이 성분들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두피의 비듬균이나 모낭염을 유발하는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여, 위생 환경이 좋지 않았던 과거에 발생하기 쉬웠던 각종 두피 질환을 예방하는 천연 샴푸 역할을 했다. 창포의 성분은 두피의 모세혈관을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이는 모근에 영양 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건강하고 윤기나는 머릿결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또한 창포 특유의 상쾌하고 알싸한 향기는 머릿니와 같은 해충이 기피하는 향으로, 천연 방충제의 역할을 했다. 결론적으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행위는 미용과 위생, 그리고 질병 예방을 아우르는 매우 효과적인 '전통 아로마 헤드 스파'였던 셈이다.




부정을 태우는 굳건한 향, 쑥(艾)

창포가 개인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향기였다면, 쑥은 집과 마을 전체를 나쁜 기운으로부터 지키는 굳건한 방패의 향기였다.

201680_201592_1413.jpg

문 앞에 걸고, 연기를 피우다

단오날이 되면,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쑥과 익모초를 뜯어와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거나 다발로 묶어 대문 옆에 걸어두었다. 쑥의 강하고 쌉쌀한 향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액운과 역병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에는 마당에 쑥을 태워 연기를 피웠는데, 이 연기가 집안 구석구석을 소독하고 모기와 같은 해충을 쫓아낸다고 생각했다.


아르테미시아, 동서고금의 약초

쑥(학명: Artemisia princeps)은 서양의 '머그워트'와 같은 아르테미시아 속에 속하는 식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강력한 약효를 지닌 식물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단군 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먹었던 식물이기도 한 쑥은, 그 강인한 생명력만큼이나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녔다.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관점에서 보면, 쑥을 활용한 단오의 풍습 역시 매우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시네올(Cineole)의 방충 및 살균 효과

쑥의 주성분 중 하나인 '시네올'은 유칼립투스에도 풍부한 성분으로, 특유의 화한 향기를 낸다. 이 성분은 모기나 파리가 매우 싫어하는 천연 기피제 역할을 하며, 강력한 항균 및 항바이러스 효과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병원균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쑥 연기를 피우는 것은, 말 그대로 공간 전체를 천연 살충, 살균하는 '스머징(Smudging)' 행위였던 것이다. 쑥의 따뜻한 성질은 예로부터 여성의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쑥뜸이나 쑥 좌훈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각종 부인과 질환을 다스리는 데 사용되었다. 쑥의 향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어, 쑥을 태우는 행위는 공간의 정화와 함께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창포의 맑은 향기로 부정을 씻어내고, 쑥의 강인한 향기로 액운을 막아냈던 단오의 풍습. 그것은 결코 비과학적인 미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식물이 가진 힘을 경험적으로 터득하여 삶에 지혜롭게 적용한 '생활 아로마테라피'의 원형이었다.

비록 오늘날 우리는 버튼 하나로 해충을 쫓고, 샴푸 한 번으로 머리를 감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잊혀 가는 이 향기로운 전통 속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스스로의 건강을 지켜냈던 조상들의 지혜와 넉넉한 마음이 담겨있다. 다가오는 여름, 창포와 쑥의 향기를 다시 한번 우리 곁으로 불러내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우리 문화의 가치와 함께, 자연이 건네는 가장 한국적인 위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센셜 오일은 어떻게 피부 속으로 들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