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태양, 헬리크리섬(이모르뗄)의 역사

헬리크리섬에 담긴 인류의 불멸에 대한 동경과 치유의 믿음

by 이지현

지중해 연안의 건조하고 척박한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헬리크리섬(Helichrysum)은 그 이름처럼 태양의 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식물이다. 강렬한 황금빛 꽃은 꺾인 후에도 색과 모양이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는 특성을 지녀, 사람들에게 불멸과 영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모르뗄(Immortelle) 또는 에버라스팅(Everlasting)이라는 별칭은 이 꽃이 지닌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대변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꽃을 신에게 바치는 화관으로 사용했고, 로마의 의사들은 전사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재로 활용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악령을 쫓고 영원한 기억을 약속하는 민속적인 도구로도 쓰였다. 이번 글에서는 헬리크리섬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언어학적 기원을 추적하고, 신화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황금빛 꽃이 인류에게 어떠한 치유와 상징의 의미로 다가왔는지 그 발자취를 상세히 알아본다.




태양의 황금

그리스어 헬리오스(Helios)와 크리소스(Chrysos)

식물학적 속명인 헬리크리섬(Helichrysum)은 고대 그리스어 헬리오스(Helios, 태양)와 크리소스(Chrysos, 황금)가 결합된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는 꽃의 머리 부분이 마치 작게 빛나는 태양처럼 밝은 황금색을 띠고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황금색은 신성함과 권위, 그리고 불변성을 상징하는 색채였다.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 아래서도 타지 않고 오히려 그 빛을 반사해내는 듯한 헬리크리섬의 모습은, 지상에 내려온 태양의 조각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이름은 식물이 가진 시각적 강렬함과 더불어, 태양신 아폴론과 연결되는 신화적 배경을 암시하기도 한다.


프랑스어 이모르뗄(Immortelle): 불멸의 꽃

프랑스어권과 향수 산업에서 널리 쓰이는 이름인 이모르뗄(Immortelle)은 라틴어 임모르탈리스(Immortalis)에서 파생된 말로, 문자 그대로 죽지 않는 혹은 불멸의라는 뜻을 지닌다. 헬리크리섬 꽃은 수분이 적고 바삭바삭한 질감을 가지고 있어, 꽃을 꺾어 건조하더라도 그 선명한 노란색과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고 수년 동안 유지된다. 이러한 시들지 않음은 고대부터 인간이 갈망해 온 영원한 젊음이나 생명력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에버라스팅(Everlasting)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이 꽃의 독특한 보존성을 강조한다.


식물학적 특성: 건조한 땅의 생명력

헬리크리섬은 국화과(Asteraceae)에 속하는 다년생 허브로,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 섬, 크로아티아 등 지중해 연안의 바위가 많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생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은 은회색 털로 덮여 수분 증발을 막고, 꽃은 기름진 성분을 함유하여 강한 향기를 내뿜는다. 이 향기는 꿀처럼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흙내음과 카레를 연상시키는 스파이시함이 섞인 복합적인 향취를 지닌다. 고대인들은 이 강렬한 향기가 식물의 생명력을 담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약용이나 향료로 추출하여 사용했다. 헬리크리섬의 생태적 강인함은 그 자체로 치유력의 원천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신들의 장식

오디세이아의 치유: 나우시카와 오디세우스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y)』에는 헬리크리섬으로 추정되는 식물이 등장하여 영웅을 치유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난파되어 파이아키아 해안에 떠밀려온 오디세우스를 발견한 나우시카 공주는, 그에게 귀한 오일을 주어 몸을 씻고 바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 오일은 오디세우스의 지친 몸에 활력을 되찾아주고, 상처를 치유하며, 그의 외모를 신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비록 텍스트 상에서 식물의 이름이 명확히 헬리크리섬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나, 많은 허브 역사학자들은 금빛의 불멸의 꽃이라는 후대의 묘사를 통해 이것이 헬리크리섬 오일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폴론 신의 화관: 태양을 닮은 머리카락

태양의 신이자 의술의 신인 아폴론은 헬리크리섬과 깊은 연관이 있다. 신화적 상상력 속에서 아폴론의 황금빛 이미지는 종종 헬리크리섬과 연결되곤 했다. 꽃의 황금색이 태양의 빛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아폴론이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관장하기 전, 그가 사랑했던 님프들이 이 꽃을 바쳤다는 전설과도 연결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조각상이나 신전을 장식할 때 시들지 않는 헬리크리섬을 사용하여 신성의 영원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헬리크리섬의 노란 꽃은 아폴론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시인들은 이 꽃을 통해 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도 했다.


테오프라스투스의 식물지 기록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는 그의 저서 『식물지(Historia Plantarum)』에서 헬리크리섬 혹은 이와 유사한 식물을 언급했다. 그는 이를 헬리오크리소(Heliochryso)라 칭하며, 꽃이 금색이고 잎이 좁으며 줄기가 하얗다고 묘사했다. 테오프라스투스는 이 식물이 화환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며, 꿀벌들이 좋아하는 밀원 식물이라고 기록했다. 또한, 이를 꿀과 섞어 화상이나 피부 질환에 바르는 민간요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는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이 식물이 관상용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치료 목적으로도 널리 쓰였음을 보여주는 문헌적 증거이다.



고대 로마의 의학과 생활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지식을 이어받아 헬리크리섬을 더욱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의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로마 군단의 군의관들과 박물학자들은 이 식물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전파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약용 가치의 기록

로마의 박물학자 대(大) 플리니우스는 그의 방대한 저서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헬리크리섬의 다양한 약용 가치를 서술했다. 그는 이 식물이 소변 배출을 돕고(이뇨 작용), 뱀에 물린 상처를 치료하며, 좌골 신경통이나 탈장 증상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헬리크리섬을 와인과 함께 복용하면 굳은 피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현대 아로마테라피에서 헬리크리섬 오일이 혈종(멍) 제거와 혈액 순환에 탁월하다고 알려진 것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플리니우스의 기록은 로마인들이 이 식물의 생리 활성 작용을 경험적으로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디오스코리데스의 약물지: 뱀 물린 상처와 화상

로마 시대 최고의 약리학자였던 디오스코리데스 역시 『약물지(De Materia Medica)』에서 헬리크리섬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는 헬리크리섬의 꽃과 잎을 달인 물이 독사에 물린 사람의 독을 해독하고 통증을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화상을 입었을 때 이 식물을 으깨어 바르면 흉터 없이 낫게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헬리크리섬이 가진 강력한 항염 및 조직 재생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디오스코리데스는 이 식물의 향기가 옷 좀나방을 쫓는 데도 유용하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헬리크리섬이 의약품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방충제로도 활용되었음을 알려준다.


로마인의 화환과 축제 장식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헬리크리섬을 화환(Garland)이나 화관(Chaplet)을 만드는 데 애용했다. 로마의 축제나 연회에서 사람들은 헬리크리섬으로 짠 화환을 머리에 쓰거나 목에 걸었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인 목적을 넘어, 이 꽃이 가진 영원함의 속성을 빌려 축제의 기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었다. 또한, 겨울철에는 생화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건조해도 색이 변하지 않는 헬리크리섬은 겨울 축제인 사투르날리아 등을 장식하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헬리크리섬의 황금빛은 겨울의 어둠을 밝히는 태양의 대리자로서 로마인들의 일상과 축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법과 치유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로 접어들면서, 헬리크리섬에 대한 지식은 수도원 의학과 민간 전승을 통해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의학적 효능과 더불어 마법적인 보호 능력이 강조되었다.


수도원 의학의 계승

중세 수도원의 정원(Herbularium)에서는 고대 의학서에 기록된 약초들을 재배하고 연구했다. 헬리크리섬 역시 수도사들에 의해 약용 식물로 관리되었다. 그들은 헬리크리섬을 기름에 담가 우려낸 인퓨즈 오일을 만들어, 베인 상처, 멍든 곳, 관절염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전쟁이나 노동으로 인한 외상이 잦았던 중세 사회에서, 헬리크리섬의 지혈 및 상처 치유 능력은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다. 수도사들은 이 식물이 가진 치유력을 신의 은총으로 해석하며,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구휼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민간 신앙: 악령을 쫓는 건조화

중세 유럽의 민간 신앙에서 헬리크리섬은 악령이나 마녀의 저주로부터 집안을 보호하는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헬리크리섬 꽃다발을 말려서 현관문 위나 창가에 걸어두거나, 마구간에 두어 가축을 보호하려 했다. 시들지 않는 꽃의 생명력이 부정적인 기운을 물리치고, 집안에 건강과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헬리크리섬을 태운 연기를 집 안에 피워 공기를 정화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의식도 행해졌다. 이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향기 정화의 전통이 중세 민속 신앙과 결합하여 나타난 형태로 볼 수 있다.


성 요한의 허브와 관련된 전승

일부 지역의 전승에서는 헬리크리섬이 중세의 하지 축제(St. Johns Day)와 연관되어 성 요한의 허브 중 하나로 취급되기도 했다. 하지 무렵에 헬리크리섬을 수확하면 그 약효가 가장 강력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날 헬리크리섬을 꺾어 화환을 만들어 춤을 추거나,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다가올 일 년의 안녕을 기원했다. 태양의 힘이 가장 강한 하지에 피는 황금빛 꽃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가져오는 태양의 힘을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져 중세인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지중해의 문화와 상징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헬리크리섬은 지중해, 특히 코르시카와 같은 섬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꽃은 잊히지 않는 기억과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코르시카의 목동들과 마키(Maquis)의 향기

나폴레옹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은 헬리크리섬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코르시카의 거친 덤불 숲인 마키를 가득 채우는 헬리크리섬의 향기는, 바다 건너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눈을 감고도 향기만으로 내 고향 코르시카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코르시카의 목동들은 헬리크리섬을 이용해 양들의 상처를 치료하거나, 자신들의 타박상을 다스렸다. 그들에게 헬리크리섬은 척박한 환경을 함께 견뎌내는 동반자이자, 고향의 땅 냄새 그 자체였다. 이 지역에서 헬리크리섬은 단순한 식물을 넘어,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정체성을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장례와 추모의 상징: 변치 않는 기억

이모르뗄(Immortelle)이라는 이름처럼, 헬리크리섬은 죽은 자를 추모하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맹세의 상징으로 장례식에 사용되었다. 묘지에 헬리크리섬 화환을 바치는 것은, 고인의 영혼이 시들지 않는 꽃처럼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과,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었다. 생화는 금방 시들어버리지만, 헬리크리섬은 계절이 지나도 그 모습을 유지하기 때문에, 변치 않는 사랑과 추억을 상징하는 메멘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겨울을 이기는 꽃: 희망의 메타포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의 시와 예술 작품 속에서 헬리크리섬은 종종 희망과 인내의 메타포로 등장한다. 모든 꽃이 지고 난 겨울에도, 건조된 상태로 황금빛을 유지하는 헬리크리섬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상징했다. 연인들은 헬리크리섬을 주고받으며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했고, 예술가들은 이 꽃을 그림 속에 그려 넣어 영원한 명성이나 예술의 불멸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헬리크리섬은 덧없는 인생의 허무함에 대항하여,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영원한 가치에 대한 갈망을 투영하는 대상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속에서 태양신의 화관으로 빛나던 헬리크리섬은, 로마 전사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약초가 되었고, 중세 수도원의 정원과 민가의 처마 밑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초가 되었다. 헬리오스(태양)와 크리소스(황금)가 합쳐진 이름처럼, 이 꽃은 어두운 역사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빛을 발하며 인류의 곁을 지켜왔다. 물리적으로는 혈액을 순환시키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자였으며, 상징적으로는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넘어 영원한 기억을 약속하는 매개체였다. 오늘날 우리가 헬리크리섬 에센셜 오일 한 방울에서 느끼는 그 깊고 강렬한 향기 속에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인류가 이 작은 꽃에 의탁해 온 불멸에 대한 동경과 치유에 대한 믿음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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