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 <moonlight>에 대한 베토벤의 온전한 목적과 해석을 우린 알 수가 없다. 또한 이 곡의 초연을 우린 들어 본 적이 없다. 즉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의 그 의도에 대한 100% 정답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베토벤의 곡을 듣되 연주자의 해석을 감상하게 된다.
<연주>란 창작자와 작품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연주자 자신의 음악관을 전제로 하고, 더 나아가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나의 문화적 테두리 속에서 행해진다. 음악작품은 -작곡가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인정되었고, 이 때문에 작품의 의미를 다양하게 재구성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즉 베토벤의 월광이란 주제를 각각의 연주자들 마다 이해하고 해석한 다양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시대를 초월하고, 여러 연주자들에 연행될 수 있는 것은 클래식이 뛰어난 걸작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옴니버스(omnibus)로 듣기
옴니버스(omnibus)는 라틴어 ommis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탈 수 있는 자동차' 즉 버스를 말한다. 같은 목적지로 가는 버스에 다양한 사람들이 올라탄 것처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묶여있는 형식이다.
'버스'를 베토벤의 월광으로, '다양한 많은 사람들'은 연주자들로 대입하면 옴니버스 형식의 감상이 이해될 수 있다. 임동혁 버전, 손열음 버전, 랑랑 버전 뭐 이런 식으로.
예술이란 객관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의 세계와는 다르게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음악에 대해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에 따라 자신의 고유의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 각각의 생각은 정답이 될 수 있다.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방법이나 규칙이 있다기보다는 다만 정보를 알고 감상할 때
직관적인 감상을 넘어서 예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감정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