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의 음식 문화 속에 담긴 이야기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면 금문교, 케이블카, 자욱한 바다 안개와 같은 엽서 속 풍경이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나 관광엽서에 담긴 모습 너머, 이 도시는 더욱 깊은 첫 번째 언어로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음식입니다. 이민의 물결과 혁신의 정신이 겹겹이 쌓인 샌프란시스코의 미식 풍경은, 문화와 공동체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 할 만합니다. 과연 한 도시는 맛으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모든 요리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샌프란시스코 음식이 문화적 표현 수단임을 잘 보여주는 예로, 셰프 안성재(Sung Anh)와 그의 레스토랑 모수(Mosu)의 여정을 들 수 있습니다. 13세에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이민자 1세대인 안성재 셰프는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 모수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뿌리와 기억을 캘리포니아 현지 재료와 접목해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였는데, 바삭한 김과 깻잎을 태평양산 해산물과 한 접시에 담아내는 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한 접시는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민자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담아낸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단순한 퓨전 음식을 넘어섰습니다. 이민자의 추억과 향수를 정교한 미식으로 승화시킨 모수의 코스 요리는 개업 첫 해에 미쉐린 1스타를 받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참고로 안 셰프는 이후 모수의 터전을 서울로 옮겼고, 그곳에서 모수는 현재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의 성공담은 이민자의 기억과 맛이 세계적 수준의 요리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의 인생과 대륙 간의 대화가 단 한 벌의 테이스팅 메뉴에 응축되어 전해지는 것이지요.
샌프란시스코에는 모수처럼 이민자 또는 이민 2세 셰프들이 이끄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여럿 있습니다. 각 레스토랑은 전통의 풍미를 캘리포니아의 재료로 재해석하여 도시의 미식 서사에 한 줄 한 줄을 더합니다. 모수의 한식 (캘리포니아풍 요리부터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유럽의 영향을 세련되게 녹여낸 다른 파인다이닝까지) 이 최고급 식당들의 메뉴는 샌프란시스코의 다문화 유산을 먹을 수 있는 식용(食用) 아카이브 역할을 합니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 접시는 혁신과 사치의 상징인 동시에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산물인 것입니다.
한편, 미식의 정반대 끝단에는 소박한 거리 음식이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Mission District)의 배고픈 노동자들을 든든하게 채워주던 미션 스타일 부리토(Mission-style burrito)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멕시코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창의성과 회복력을 상징하는 이 거대 부리토는, 밥과 콩, 고기와 살사를 가득 넣고 큼지막한 밀또띠야로 싼 다음 은박지로 돌돌 말아 냅니다. 이렇게 든든한 미션 부리토가 처음 선보인 곳도 바로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1960년대 미션 지구에서 등장한 이 부리토는 일반 부리토와 달리 큰 사이즈와 밥 등 다양한 재료를 넣는 스타일로 구별되었고, 등장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어 미국과 캐나다 전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미션 부리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라 큄브레(La Cumbre) 타케리아에서는 1969년 9월 29일에 자신들이 첫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엘 파로(El Faro) 델리에서 1961년 9월 26일 샌프란시스코 소방관들을 위해 지금의 스타일을 처음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사실은, 이 은박지에 감싼 한 손 음식이 이민 공동체의 역사와 긍지를 맛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따뜻한 미션 부리토를 한 입 베어 물면, 그 속에는 오랜 세월 이웃 공동체를 지탱해 온 유산과 자부심이 녹아 있습니다. 값싼 재료들로 배를 불리고자 했던 이민자들의 생존과 적응의 지혜가 은박지 속에 함께 말려 있는 것이지요. 이 스타일의 부리토는 샌프란시스코 전역은 물론 미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먹는 이로 하여금 그 근원지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맛보게 합니다. 돌로레스 공원 벤치에 앉아 포일에 싸인 부리토를 손에 들고 있노라면, 수십 년에 걸친 이민의 역사와 커뮤니티 형성기를 한 입에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시장과 건축물이 만나는 곳에는 도시의 정체성이 뚜렷이 드러나곤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페리 빌딩(Ferry Building)은 바로 그런 사례로, 19세기말(1898년) 페리 터미널로 지어진 이 보자르 양식 건물은 2003년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화려한 음식 시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현지인들이 이곳을 두고 “캘리포니아 요리의 대성당”이라 부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축구장 두 개 길이에 맞먹는 길게 뻗은 대형 홀 위로 다섯 층 높이의 거대한 철골 유리 천장이 햇빛을 쏟아붓고, 그 빛 아래에는 북캘리포니아 최고의 미식이 성찬처럼 펼쳐집니다. 신선한 태평양 굴과 던제니스 크랩, 인근 목장의 수제 치즈, 지역 농장의 유기농 채소, 그리고 이 도시를 상징하는 사워도우 빵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지요.
페리 빌딩의 아치와 철골 트러스 구조는 마치 유럽의 고풍스러운 아케이드를 걷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다만 제단 대신 자리한 것은 농가 직송 채소 가판대이고, 기차 플랫폼 대신 작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을 뿐입니다. 이 역사적인 공간이 2003년 음식 시장으로 재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도시 계획자들은 이곳을 베이 지역 음식문화와 지역 농부·장인들을 선보이는 장소로 의도적으로 꾸몄습니다. 즉, 샌프란시스코는 운송의 중심이었던 유산 건물을 지역 맛의 전당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도시의 미식 문화를 공유하는 시민적 의식으로 격상시킨 것입니다.
페리 빌딩을 거닐어 보면 건축과 음식이 어떻게 어우러져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체감하게 됩니다. 높은 돔 천장 아래, Acme Bread Company의 시큼한 사워도우 냄새가 풍기고 (골드러시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발효종을 사용한 빵집이지요), 건물 바깥 페리 플라자 광장에서는 매주 농부 시장(Ferry Plaza Farmers Market)이 열려 신선한 계절 농산물을 팝니다. 이처럼 역사적 건축 공간과 현대의 음식 문화가 접목된 페리 빌딩은, 도시 공간과 음식이 만날 때 얼마나 풍부한 공동체 경험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샌프란시스코는 이곳에서 맛을 통해 도시를 읽어보라고 우리를 초대하는 셈입니다.
2020년, COVID-19 팬데믹은 샌프란시스코로 하여금 도시 공간을 재구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 혁신적인 대응 중 하나가 파크렛(parklet) 현상이었습니다. 실내 식사가 중단되자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문자 그대로 거리에 식탁을 펼쳤습니다. 도로의 주차 공간을 나무 데크로 개조한 소형 야외 다이닝 공간, 일명 파크렛이 도시 전역의 인도 가장자리에 나타난 것입니다. 화분과 조명, 파라솔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나무 플랫폼들이 거리 곳곳을 채웠고, 이는 처음에는 임시방편이었지만 곧 도시의 진화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2021년 초까지 샌프란시스코 전역에 2,000개 이상의 야외 식사 파크렛이 생겼고, 추가로 1,000개가 더 승인 대기 중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몇몇 동네의 인도 끝 차량 주차 공간이 노천 카페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반긴 시 정부는 공유 공간 프로그램(Shared Spaces)을 도입해 많은 파크렛을 영구 설치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결국 팬데믹 이후에도 이 구조물들이 도시 경관의 일부로 남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임시 조치였던 파크렛이 영구적인 도시 자산으로 승격된 것입니다.
파크렛은 식당들을 생존케 한 것 이상을 해냈습니다. 한때 자동차가 차지했던 도심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 동네의 길모퉁이마다 작은 야외 거실이 생겨난 셈입니다. 이전에는 좁은 보도만 있던 거리에서 이제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즐기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심지어 팬데믹의 충격이 가신 후에도 노스비치에서 아우터 선셋에 이르기까지 파크렛이 남아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거리는 사람들의 사교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레스토랑과 이웃 사이 경계가 희미해졌습니다. 불가피한 필요(안전한 야외식사)가 사람 중심의 도시 디자인 기회로 승화된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도심 길가의 이러한 풍경은 이제 샌프란시스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부가 되었습니다. 각양각색의 파크렛들 덕분에 이 도시는 더욱 따뜻하고 인간적인 얼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도를 걷다 보면, 거리 주차 공간이던 곳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식사 풍경이 펼쳐지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도시가 음식을 통해 공간을 재분배하고 공동체 정신을 북돋운 한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1849년 골드 러시 시기에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Chinatown)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계 지역 공동체입니다. 24블록에 걸쳐 펼쳐진 이 번화한 중국인 거리에는 세대를 이어 내려온 음식 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은 차별과 역경 속에서도 음식으로 정체성을 지켜온 공간입니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시대의 고난부터 1906년 대지진으로 인한 피폐함까지, 이곳 중국계 공동체는 익숙한 요리를 만들고 나누는 것으로 마음의 안식을 찾고 경제적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가면 1920년에 문을 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딤섬 레스토랑인 항아 티하우스(Hang Ah Tea Room)를 비롯해, 100년 역사의 베이커리나 면요리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항아 티룸은 1920년 개업 이래 미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딤섬을 내온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거리 곳곳의 만두, 국수, 구운 오리 한 마리까지 모두가 그 오랜 손맛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Stockton 거리의 시장에서 연로한 주민들이 살아 있는 생선과 채소를 고르는 모습, 100년 된 베이커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슈 바오(돼지고기 번)를 사가는 동네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음식이야말로 이 공동체를 결속시킨 언어였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한입 베어 문 파인애플 번의 달콤함이나 오래된 딤섬 가게에서 나는 허브향 속에는, 낯선 신대륙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군상의 눈물과 웃음이 서려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주민들이 겪었던 차별과 어려움 속에서, 고향의 조리법을 재현하는 행위는 정체성 수호의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심지어 세대가 바뀌어 젊은 셰프들이 새로운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지금도, 전통 광둥식 딤섬집과 쓰촨 레스토랑들은 여전히 성황을 이루며 공동체의 닻(anchor)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바삭한 펑유 빙(파 향이 도는 전통 팬케이크)을 맛보거나 가족 스타일의 광둥식 만찬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역사를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곳은 음식이 소속감과 문화적 연속성을 지키는 강력한 언어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다문화 정신을 한 장면에 담아낸다면, 아마도 토요일 오후의 돌로레스 공원(Mission Dolores Park)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맑게 갠 주말이면 잔디 언덕에는 여기저기 돗자리가 펴지고, 모든 배경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태양 아래 식도락 축제를 즐깁니다. 이쪽에서는 친구들이 모여 베트남식 반미 샌드위치를 돌려 먹고, 저쪽에서는 어느 가족이 집에서 싸온 필리핀식 룸피아(만두롤)와 아도보를 나눕니다. 근처에는 노릇하게 구운 엘로테(멕시코식 길거리 옥수수)를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도 보이고, 다른 모임에서는 바삭한 한국식 후라이드 치킨이나 진한 인도 커리를 일회용 접시에 덜어 먹는 모습도 보입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는 누군가 나파 밸리 와인 한 병을 따서 페리 빌딩에서 산 치즈와 샤퀴테리 한 접시와 곁들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원 한가운데 즉흥적으로 마련된 세계 음식 뷔페는 베이 지역의 인구 구성만큼이나 다채롭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음식이 이 공공 공간의 경계를 순식간에 허문다는 점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거 맛있어 보이네요, 어디서 샀어요?”라며 말을 걸고, 어느새 새 친구가 되어 함께 먹을 것을 나눕니다. 각기 다른 요리의 향연이 한 공간에 자연스레 섞여 있지만, 공원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즐거운 소풍으로 어우러집니다. 국적의 경계도 이곳에서는 무의미합니다. 타코 옆에 아티장 사워도우 빵이 한 접시에 올라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멀리 야자수 너머로 시내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돌로레스 공원의 한낮 풍경은 샌프란시스코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도시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돗자리 위에서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며 삶을 즐기는 전통은, 음식을 통해 공동체를 구축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 일깨워 줍니다. 포멀한 자리가 아니어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공동체 의식이 싹트는 법입니다. 바쁜 일상 속 시민들이 공원에 모여 휴식하고 잔치를 벌이는 이 문화는, 샌프란시스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그리고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맛을 얘기하면서 두 가지 상징적 풍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사워도우 빵과 던지니스 크랩(Dungeness crab)입니다. 이 둘은 각각 도시의 역사와 지리와 맞닿아, 땅과 바다가 식탁으로 연결되는 맛의 서사를 이룹니다.
먼저, 사워도우(sourdough) 빵은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시절에 탄생한 전설적인 풍미입니다. 서부 개척시대 금광을 찾아 몰려든 광부들은 이곳에서 발효종을 이용해 빵을 구웠는데, 당시 상용 이스트를 구하기 어려웠던 국경 개척지에서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 효모로 반죽을 부풀렸습니다. 이렇게 만든 빵은 특유의 시큼한 맛으로 인해 당시 주류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달콤한 빵과 달랐고, 그래서 정착 초기에 “실패작” 취급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톡 쏘는 빵은 개척자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식품이 되었고, 그 결과 노련한 광부들은 아예 ‘사워도우(sourdough)’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알래스카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의 베테랑들에게도 이 별명이 이어졌지요.) 이렇게 49년의 금을 쫓던 사람들이 유럽 출신 제빵사들과 이 시큼한 빵을 나누며,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사워도우 빵 문화가 태동했습니다.
프랑스 출신 이민자 이시도어 부딘(Isidore Boudin)은 바로 이 황금 열풍 속에서 1849년 샌프란시스코에 부딘 베이커리(Boudin Bakery)를 열었습니다. 그는 고향에서 가져온 유럽식 발효 기법에 샌프란시스코의 야생 효모와 안개를 결합해 독특한 발효종 “마더 도우(mother dough)”를 길러냈습니다. 신기하게도 샌프란시스코의 토착 효모와 기후는 고향과 다른 예외적인 빵맛을 선사했습니다. 쫄깃하고 톡 쏘는 풍미의 이 빵은 당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까지도 “샌프란시스코 사워도우”의 명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딘 제과의 초창기 발효종의 계보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밀가루와 물을 더해가며 160년 넘게 활성 상태를 유지한 부딘의 발효균주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때 창업자의 아내 루이즈 부딘이 한 양동이에 담아 목숨처럼 지켜낸 덕분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덕분에 피셔맨스워프의 부딘 매장에서 사워도우 보울에 담긴 차우더 수프를 맛보는 관광객들은, 사실상 19세기 골드 러시 시대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먹거리를 접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다에서 온 풍미의 상징은 던지니스 크랩입니다. 매년 초겨울(통상 11월 중순) 샌프란시스코의 해안가에는 게잡이 시즌이 시작되는데, 이는 도시 전체의 축제나 다름없습니다.역사적으로 이 지역 어업을 이끈 것은 이탈리아 이민자 어부들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피셔맨스워프에는 식당 하나 없던 시절부터 이탈리아 출신 어부들은 부둣가에 커다란 솥을 걸어 갓 잡은 게를 즉석에서 삶아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팔았습니다. 커다란 게 다리를 껍질째 삶아 하얀 일회용 컵에 담아 내는 즉석 크랩 칵테일은 당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모습은 오늘날 사진으로도 남아 있는데, 거대한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앞치마를 두른 남정네들이 국자로 갓 삶은 게살을 퍼 담아 손님들에게 건네는 장면입니다. 바로 이 장면 (바닷바람과 게 삶는 내음, 서민과 여행자들의 북적임) 이 던지니스 크랩을 샌프란시스코 미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 피셔맨스워프의 해산물 식당들은 그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많은 식당들 입구에는 여전히 끓는 게 냄비가 놓여 있고, 직원들은 하얀 작업복 차림으로 손님들에게 김이 나는 게살 칵테일이나 삶은 게 한 마리를 건네주곤 합니다. 또한 이들 레스토랑의 간판 메뉴 상당수는 초창기 이민 어부들의 가정 요리에서 유래했습니다. 이탈리아 해안가 마을 출신 어부들의 부모, 조부모로부터 내려온 해산물 조리법이, 세대를 거쳐 식당의 인기 메뉴로 자리잡은 것이지요. 그러니 샌프란시스코에서 던지니스 크랩을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신선한 해산물을 먹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다의 축복과 이민자들의 개척정신이 어우러져 이뤄낸 도시의 맛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자연 자원과 이민자의 노력이 결합해 도시의 입맛을 길러낸 대표적 사례라 하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도시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끔 음식이 도시 변모의 주연을 맡기도 합니다. 그 생생한 예가 헤이스 밸리(Hayes Valley)의 부흥 이야기입니다. 한때 고가 고속도로(Central Freeway)가 그늘을 드리우던 이 동네는, 고속도로가 철거된 후 커다란 흉터를 남긴 빈 공간으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슬럼화되어 있던 이 자리를 치유하기 위해 도시 계획가들과 지역 공동체가 머리를 맞댔고, 뜻밖의 해결책이 떠올랐습니다. 프록시(PROXY)라 불린 이 실험적 프로젝트는, 영구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임시로 운송 컨테이너 박스들을 모아 팝업 상점, 음식 키오스크, 공공 공간으로 꾸미는 아이디어였습니다.
2010년 후반, PROXY 프로젝트는 컨테이너 마을의 형태로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는 독립 로컬 비즈니스들이 하나둘 입주했는데, 대표적으로 인근 독일 맥주집이 야외 지점을 낸 비어가르텐(Biergarten), 로컬 명소 리추얼 커피(Ritual Coffee)의 에스프레소 스탠드가 그 시초입니다s. 또한 40피트짜리 대형 컨테이너 3개를 쌓아 만든 아웃도어 의류점(AETHER)이라든지, 주문 즉시 액체질소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는 혁신적 아이스크림 가게 같은 업장들도 속속 문을 열었습니다. PROXY 중앙 광장에는 야외 영화 스크린이 설치되어 주말마다 무료 영화 상영회가 열렸고, 낮에는 피트니스 수업이나 수공예 시장 같은 이벤트들이 펼쳐졌습니다. 그전까지 잿빛 콘크리트 공터에 불과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붐비는 활기찬 커뮤니티 허브로 변신한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이 성공 덕분에, PROXY는 “임시” 꼬리표를 떼고 훨씬 오래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 몇 년 내 그 자리에 저렴 주택을 짓기로 한 계획이었지만, 시 자금난 등으로 지연되자 2013년 시의회는 PROXY의 존속 기간을 8년 더 연장해 주었습니다. 당시 런던 브리드 현 시장이 “프록시는 헤이스 밸리에 진정한 자산이며… 주차장으로 방치되었던 이전 모습보다 지역 사회에 훨씬 더 풍요롭고 재미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로부터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PROXY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임시 3년 실험으로 시작된 것이 20년 가까이 계속될 소매·문화 중심지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헤이스 밸리에서 음식과 공동체 공간이 이루어낸 이 놀라운 재생은, 도시 혁신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실험적 정신 – 이는 기술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도시 디자인과 식문화 영역에서도 발휘되었습니다. 한때 고가도로 아래 우울했던 빈터가, 잠깐의 아이디어로 시작해 도시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사회적인 장소 중 하나로 탈바꿈했습니다. 오늘날 해질녘 헤이스 밸리를 지나며 컨테이너로 만든 비어가르텐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영화 소리를 듣는다면, 음식 한 접시와 한 잔의 맥주, 그리고 약간의 창의성이 도시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이민자 커뮤니티는 음식으로 기억과 정체성을 간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일상의 편안함 속에 녹아 있곤 하지요. 이탈리아계의 중심지였던 노스비치(North Beach)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고풍스러운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하우스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집니다. 사실 미국 서부 해안에 최초로 에스프레소 카페를 연 것이 바로 노스비치였습니다. 시칠리아 출신 이민자인 지오반니 “Papa Gianni” 죠타가 1956년 개업한 카페 트리에스테(Caffe Trieste)가 그 주인공으로, 이곳에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처음으로 이탈리아식 진한 에스프레소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트리에스테 카페는 금세 예술가, 작가, 이웃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오페라를 부르는 전통까지 생겼습니다. 지금도 노스비치에는 가족 경영의 아담한 카페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크림을 풍성히 올린 카푸치노 한 잔을 카운터에 기대어 홀짝이는 노인들, 바에서 카드놀이를 즐기는 이탈리아 출신 노인들… 이 풍경과 커피 향기 속에는 이 동네를 일구었던 이탈리아 어부와 노동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은 이민자들의 향수를 달래주었고, 카페는 그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고 정을 쌓는 커뮤니티의 심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 한잔의 커피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카페 문화의 유산과 새로운 땅에서 쌓은 공동체의 추억이 함께 녹아 있는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일본계 미국인들의 동네인 재팬타운(Japantown, 일본말로 니혼마치)에도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재팬타운은 20세기 초 형성되어, 현재 미국에 남은 단 3개의 Japantown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곳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이주의 아픔을 겪으며 거의 붕괴될 뻔했습니다. 1942년의 일본인 강제 수용으로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전쟁 후 돌아온 사람들은 황폐해진 거리를 다시 일구어야 했습니다. 음식점과 식료품 가게 등 음식 관련 사업체들은 전후 재건의 선봉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재팬타운에는 전쟁 전인 1906년에 설립된 벤쿄도(Benkyodo)라는 떡집(모찌 가게)이 있는데, 이 가게는 2차대전 동안 문을 닫았다가 가족들이 돌아와 다시 영업을 재개했고 이후 세대를 이어 115년 넘게 운영되었습니다. (벤쿄도는 2022년에 은퇴로 문을 닫았지만, 한 세기 넘게 이웃들의 삶에 함께 했지요.) 이런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많다 보니, 재팬타운에는 “이 가게 역사가 곧 이 동네 역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전쟁 전 5천 명 넘게 모여 살고 200여 개의 일본인 가게가 성업했던 이곳은 한때 일본 외에서 가장 큰 일본인 커뮤니티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수용소로 공동체가 한 번 무너졌지만, 주민들은 돌아와 옛 교회와 상점을 복원하고, 새로운 쇼핑몰과 문화센터를 세우며 자신들의 니혼마치를 지켜냈습니다.
오늘날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을 거닐다 보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나란히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906년 창업한 벤쿄도 같은 노포의 모찌와 만주를 사기 위해 길게 줄 선 젊은이들을 볼 수 있고, 바로 옆에서는 최신 유행 라멘집에 입장하려고 서 있는 또 다른 줄이 보입니다. 현대적인 일본식 카페에서 말차 라테를 즐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몇 블록 건너에는 100년 전통 스시 레스토랑이 여전히 가족 행사를 위한 단골집 노릇을 합니다. 이처럼 오래된 맛과 새로운 맛이 공존하는 재팬타운의 풍경은, 공동체가 어떻게 역경을 딛고도 문화를 이어가는지 보여줍니다. 이웃들에게 라멘 한 그릇, 우동 한 사발, 다과용 모찌 한 상자는 그저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는 공동체의 선언입니다. 음식이 실체화된 기억이고, 지속되는 문화의 증거인 것이지요. 한편으로 재팬타운의 변화는,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현재에 맞춰 적응해가는 공동체의 탄력성(resilience)을 보여줍니다. 음식은 바로 그 적응과 기억의 매개체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듯 샌프란시스코의 미식은 풍요롭고 다양하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현실의 맛도 존재합니다. 음식은 문화적 다양성뿐 아니라, 이 도시의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그대로 비춥니다. 한쪽에서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틀리에 크렌(Atelier Crenn)처럼 12코스 테이스팅 메뉴에 1인당 약 445달러를 소비하는 미식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는 하루 한 끼를 해결하고자 무료 급식소(Soup Kitchen) 줄에 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도시 안에 극과 극의 식사 풍경이 공존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배고픔과 식량 불안정은 여전히 현실입니다. 2010년대 경제 호황기와 IT 붐으로 물가는 치솟았고, 특히 주거비 폭등은 많은 이들의 삶을 압박했습니다. 이 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생활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2018년 경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중간 수준 임대료가 월 $4,550 (약 600만원)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2020년대 중반 현재 원룸 평균 임대료도 3천 달러를 훌쩍 넘습니다.) 6자리 연봉을 받는 기술업 종사자들마저 “생활이 빠듯하다”고 호소할 정도이니,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비싼 물가와 임대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식료품비 등을 줄여야 했고, 궁극적으로 도시의 음식 불평등은 심화되었습니다. COVID-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는 한때 샌프란시스코 주민 4명 중 1명이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였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미식의 도시에서 4분의 1이 굶주릴 위험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 속에서도 희망적인 연대의 움직임이 솟아났습니다. 팬데믹 시기,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셰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빛나는 솔선수범을 보였습니다.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자신의 레스토랑 주방을 일시적으로 무료 급식소로 전환하고, 남는 식재료로 도시 취약계층을 위한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 나눴습니다. 예컨대 도미니크 크렌 셰프는 자신의 식당을 커뮤니티 키친으로 사용하여 의료진과 노숙인들을 위해 요리했고, 다른 유명 식당 셰프들도 동참했습니다. 파밍 호프(Farming Hope)나 Refettorio San Francisco 같은 지역 비영리단체들은 기업과 농장에서 남는 식자재를 기부받아 수만 인분의 식사를 준비해 저소득 가정과 노숙인에게 배달했습니다. Massimo Bottura 셰프가 전 세계에 세운 Refettorio 프로젝트의 샌프란시스코 지점은 이러한 노력의 구심점 중 하나였지요. 이렇게 푸드 뱅크와 셰프, 자원봉사자들의 협업으로 하루 수천 끼의 무료 식사가 제공되었고, 이를 통해 도시는 불평등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색했습니다. 한 끼의 식사는 누군가에게는 300달러 짜리 사치일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해주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맛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이러한 이중적인 서사까지 마주해야 합니다. 한쪽에는 농민시장과 크래프트 칵테일,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의 고급 사내식당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빈곤지역의 식료품 사막(food desert)과 Glide 기념교회 무료 급식소 앞의 긴 줄이 있습니다. 도시의 찬란한 풍미 뒤에는, 어떤 이는 풍족함을 누리고 어떤 이는 굶주린 채 밤을 보내는 현실의 단면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식당 주방과 지역사회 부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요리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연대의 식탁을 차리며 모두를 위한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미식의 진짜 감동은, 모두가 한 상에 둘러앉을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서 오는지도 모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풍미는 그저 미각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 도시 역사와 희망의 언어 그 자체입니다. 음식 한 입, 사랑받는 한 가지 요리에는 샌프란시스코 이야기의 한 조각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도시의 음식은 원주민 오우롱(Ohlone)의 땅과 태평양의 선물, 골드 러시 모험가들과 철도 노동자들, 전 세계 모든 모퉁이에서 모여든 이민자들과 이곳 토박이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려줍니다. 역경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탱해 준 할머니의 레시피가 있고, 음식을 통해 사회적 선을 이루고 도시를 활력 있게 만드는 비전 있는 이들의 노력도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다채로운 맛들은 그 자체로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걸으며 식욕을 돋운다는 것은, 일련의 작은 기적들을 경험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완벽한 타코 한 개에는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여정이 녹아 있고, 사워도우 볼에 담긴 크램 차우더 수프에는 항해자 이탈리아인들과 진취적 제빵사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비건 김치 부리토 하나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도시의 정신이 스며 있습니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음식은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먼저 사용하는 언어가 되어, 수많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어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쓴맛도 함께합니다. 맛있는 한 접시 뒤에는 불평등의 현실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찬란한 풍미의 이면에는 젠트리피케이션과 홈리스 문제 같은 도시의 상처도 끓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맛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공동체 정신과 혁신의 향기를 음미하는 동시에, 그 밑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도전 과제들까지도 삼켜 내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맛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함께 빵을 떼며 문화와 계층을 넘어 연결되자는 초대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리해 내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이 도시를 맛보고 알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여기서는 모든 식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입니다. 금문교 그늘 아래 포장마차의 부리토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든, 그 사이사이에 담긴 이야기를 곱씹어 보면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때로는 복잡한 한 입 한 입이 모여, 샌프란시스코는 오늘도 자신의 다음 장(chapter)을 쓰고 있습니다. 전통의 풍미에서 푸드테크를 향한 미래의 맛에 이르기까지, 그 이야기는 다음 Chapter 에 양보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이 도시를 진정으로 알려면, 직접 맛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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