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연재 〈Appetite〉에서 도시의 미식이 이민과 공동체, 자연과 기억의 언어로 쓰였음을 살폈다면, 이번 장은 그 실험 정신이 식탁을 넘어 실험실로 이동하는 이야기입니다. 기후 위기와 동물 복지, 건강과 공급망이라는 복합적인 과제가 도시의 상상력을 자극하자, 베이 에어리어는 “먹을거리”를 다시 설계하는 거대한 스튜디오로 변모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공 재료는 가짜가 아닙니다. 생명공학과 발효, 데이터 감각이 빚어낸 새로운 재료의 언어입니다. 고기를 먹되 도축은 피하고, 치즈를 만들되 소를 거치지 않으며, 레시피는 셰프와 알고리즘이 함께 디자인합니다. 1970년대의 팜 투 테이블이 ‘농장에서 식탁까지’를 선언했다면, 2020년대 샌프란시스코는 랩 투 테이블(lab to table)이라는 다른 경로를 도시 지도에 그려 넣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음식 혁신은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의 등장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실리콘밸리 푸드테크 기업은 육류의 풍미를 결정짓는 핵심 성분이 헴 분자(heme)에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놀랍게도 콩과식물 뿌리에 존재하는 레그헤모글로빈에서도 헴을 얻을 수 있었고, 임파서블 푸드는 이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효모를 이용한 발효 공정을 개발하였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임파서블 버거는 겉모습과 맛, 육즙까지 실제 소고기 버거에 버금가는 혁신적 대체육으로, “피가 나는 식물성 버거”라는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임파서블 버거의 등장은 샌프란시스코의 식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과거에도 베이 에어리어에는 중국식 채식 요리나 두부 전문점처럼 대체 육류의 전통이 존재했지만, 이는 주로 특정 문화권이나 채식주의자들에게 한정된 세계였습니다. 임파서블 푸드는 이 대체육을 미식의 주류 무대로 끌어올렸습니다. 2016년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레스토랑 자르디니에르(Jardinière)에서 임파서블 버거가 처음 선보였을 때, 미식가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임파서블은 버거킹과의 파트너십으로 패스트푸드 시장에 진출하며 대중화에 성공하였고, 이제는 미션 디스트릭트의 델리부터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까지 어디서나 식물성 고기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윤리적 소비와 도시의 음식 문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촉발합니다. 임파서블 푸드는 “맛과 영양은 그대로이지만 환경 부담은 적은 고기”를 내세우며, 육식 위주의 식단이 초래하는 기후변화와 윤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실제로 임파서블 버거는 전통적인 소고기 패티 대비 물 사용량을 87% 줄이고, 토지 이용은 96%나 적으며, 온실가스 배출도 89%나 덜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런 수치는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고기 맛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립니다. 더불어 “고기를 먹되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개념은 윤리적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일반 식육 소비자들까지도 대체육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진보적 음식 문화는 이렇게 기술 혁신과 윤리 의식이 접목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UC 버클리 캠퍼스에서는 미래 음식 혁신의 산실이라 할 얼터너티브 미트 랩(Alternative Meat Lab)이 문을 엽니다. 이 랩은 전통적인 학술 연구실과 달리, 디자인 스튜디오처럼 운영되는 푸드랩입니다. 학생들은 최신 식품공학 장비와 부엌을 접목한 실험 공간에서 창의적인 식물성 고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목표는 “고기의 맛과 영양에 버금가지만 꼭 고기와 똑같을 필요는 없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공대 엔지니어, 생물학자,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한데 모여 스튜디오 수업을 듣듯 아이디어를 내고 시제품을 만들며,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까지 고민하는 창의적 실험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터너티브 미트 랩이 특별한 이유는 대학과 스타트업, 산업계가 삼각 협력을 이루는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개설한 버클리 슈타르트업 센터(SCET)는 벤처 투자자와 업계 멘토 네트워크를 랩과 연결하였습니다. 학생들이 발명한 아이디어가 사업성이 있다면 곧바로 스타트업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른바 “비건 마피아”라 불리는 녹색 투자가들과 업계 전문가들이 후원에 나서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향료 기업 기바단(Givaudan)이나 대체육 비영리단체 GFI(Good Food Institute) 등이 파트너로 참여하여, 학생들이 맛과 향미 개선에 필요한 지식, 시장 진입 전략 등을 든든하게 지원받습니다. 도시–대학–산업이 한 팀이 되어 새로운 푸드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랩의 철학은 ‘오픈 푸드 혁신’으로 요약됩니다. 기존 식품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비밀에 부치고 경쟁했다면, 버클리의 대체육 랩은 연구 결과를 공개해 전 세계 혁신가들이 활용하도록 독려합니다. “대체 단백질 분야의 큰 난제들을 함께 풀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임파서블 푸드 같은 기업도 이 랩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지식을 나눕니다. 이런 투명한 협력 모델은 학계의 이상주의와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정신이 만나 이루는 독특한 풍경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혁신 문화는 음식 분야에서 대학 랩 형태로 구현되어, 캠퍼스가 곧 푸드테크 디자인 스튜디오가 되고, 실험실에서 나온 프로토타입이 바로 도시의 레스토랑 메뉴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UPSIDE Foods(옛 Memphis Meats)는 세계 최초로 배양육(cultivated meat)의 상업화를 현실로 만든 주인공입니다. 시험관에서 자란 닭고기라니,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식 세계가 설레며 지켜봅니다. 2022년 미국 FDA가 UPSIDE의 배양 닭고기에 대해 “안전성에 문제 없음”이라는 긍정 평가를 내리고, 이어 2023년 미 농무부(USDA) 승인까지 얻어내면서 미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실험실에서 키운 고기 판매를 허용한 두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과학 실험 같던 배양육이 진짜 식탁에 오를 채비를 마친 것입니다.
UPSIDE Foods는 규제 장벽을 넘자마자 샌프란시스코의 미슐랭 3스타 셰프 도미니크 크렌과 협업을 발표하였습니다. 2023년 여름, 샌프란시스코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Bar Crenn에서 UPSIDE의 배양 치킨 요리가 역사상 최초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제공되었는데, 이는 배양육의 화려한 미식 데뷔라 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식가들은 “닭 한 마리 죽이지 않고도 이 맛이 가능하다니!”라고 놀라워했고, 음식 평론가들은 지속가능 미식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UPSIDE Foods의 혁신은 비단 접시 위의 고기만이 아닙니다. 이들이 에머리빌에 세운 EPIC(Engineering, Production, and Innovation Center)이라는 이름의 생산 시설은 배양육 시대의 건축적 아이콘이라 할 만합니다. 도시 한복판, 식당과 주택이 혼재한 지역에 들어선 이 5,300㎡ 규모 시설은 겉보기엔 세련된 오피스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거대한 바이오리액터로 가득한 수직농장형 육가공 공장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 설계에 미식 경험과 교육의 요소를 접목했다는 사실입니다. 건물 입구를 들어서면 마치 양조장 투어를 온 듯한 투명한 창 너머로 스테인리스 배양 탱크들이 보이고, 바로 옆에는 모던한 오픈 키친 형태의 시식 공간이 자리합니다. 실제로 EPIC 시설 로비 뒤편에는 넓은 테스트 키친이 꾸며져 있어 연구원들과 방문객들이 막 생산된 배양육을 바로 조리해 맛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생산 라인과 시식 공간을 한데 결합한 이 배치는 “랩 투 테이블(lab to table)”이라는 신조어처럼 실험실과 식당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시도입니다.
또한 UPSIDE의 시설은 투명성과 신뢰를 고려한 건축으로도 주목받습니다. 전통적인 도축장은 접근이 통제되고 벽으로 가려진 비밀 공간이지만, UPSIDE의 배양육 공장은 큰 창문과 공개 투어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COO 에이미 천은 “한복판 주거 지역에 정육 공장이 들어섰다는 아이러니가 좋다”고 말하는데, 실상 이곳에는 소음과 악취를 동반한 도살은 없고, 깨끗한 실험실만 존재하기에 가능한 풍경입니다.
주민들은 거리 산책을 하다가 유리창 너머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배양조를 점검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고, 학생과 시민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개방성은 새로운 음식 기술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쌓는 전략입니다. 낯선 “실험실 고기”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철학이 공간 설계에 담겨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혁신가들은 이렇게 음식 생산 현장마저 미리 공개하고 공유하며, 도시 주민들을 혁신의 참여자로 끌어들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도그패치(Dogpatch) 지역의 한 개조된 옛 양조장 건물에서는 신선한 연어 회가 탄생합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와일드타입(Wildtype)은 어류의 세포를 길러 만든 배양 연어 살코기를 개발하며, 미래 해산물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선택한 도그패치라는 입지는 우연이 아닙니다. 도그패치는 샌프란시스코 항만의 산업 유산이 살아 있는 동네로, 예전에는 조선소와 공장이 있던 곳입니다. 전통적인 어업과 산업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에서 첨단 식품 실험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성을 띱니다. 실제로 와일드타입의 공동창업자들은 “샌프란시스코가 한때 어업으로 번성했던 도시였듯, 이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그 유산을 잇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합니다. 바닷가 근처 도그패치의 한 창고를 개조해 미래형 어장을 만든 모습은, 마치 과거의 통조림 공장 자리에 생태친화적 수족관이 들어선 듯한 인상을 줍니다.
와일드타입의 배양 연어는 겉모습부터 식욕을 자극합니다. 주황빛 살과 하얀 마블링이 선명한 연어 회가 초밥 위에 올려지면, 그것이 물고기 대신 실험실의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나온 것이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와일드타입이 배양한 연어로 만든 스시 니기리는 색감과 질감이 자연산 연어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그럴듯하며, 맛과 풍미도 “진짜 연어 회와 거의 똑같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1년 와일드타입은 이 배양 연어 스시를 공개 시연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이후 고급 일식당 셰프들과 협업해 미각을 더욱 개선시키는 실험을 거듭합니다. 도그패치에 자리한 그들의 파일럿 플랜트는 연간 약 5만 파운드의 배양 연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향후 20만 파운드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전체 스시 소비량을 상회하는 양으로, “한 도시의 생선을 한 건물에서 키워내는”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이 배양 해산물 실험실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보이는 실험실’이라는 문화적 기획 덕분입니다. 와일드타입은 공장 안에 직접 만든 연어를 맛볼 수 있는 스시 바를 설치하였습니다. 방문자는 ‘The Dock’이라 불리는 시식 공간에 앉아 셰프가 즉석에서 배양 연어 초밥을 쥐어주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공간에는 계단식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음식 다큐멘터리 상영이나 학교 과학 수업 견학 등을 진행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한쪽 벽의 유리문 너머로는 은빛 배양조들과 연구 장비들이 한눈에 보이는데, 이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와일드타입의 철학을 구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도축장이나 생선 가공 공장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과 달리, 와일드타입은 유리문 하나만 두고 생산 현장을 공개합니다. 이 투명한 실험실은 호기심 많은 대중에게 미래 식품 생산을 교육하는 박물관이자, 신뢰를 쌓는 쇼룸의 역할을 합니다. 소비자들은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들이 세포로 ‘물고기’를 기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놓고 그 결과물을 맛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어업 유산은 이제 이렇게 하이테크 도시 양식장의 형태로 계승되어,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한번 재료 혁신의 중심지로 부각시킵니다.
캘리포니아가 자랑하는 낙농 문화도 혁신의 바람을 맞이합니다. 바로 정밀 발효(precision fermentation) 기술을 이용한 동물 없는 유제품의 등장입니다. 베이 에어리어 기반의 퍼펙트 데이(Perfect Day)와 뉴 컬처(New Culture)는 우유를 생산하는 소 대신, 미생물을 이용해 우유 단백질을 만들어냅니다. 퍼펙트 데이는 효모를 활용해 실제 우유에 함유된 유청 단백질(베타-락토글로불린)을 발효 탱크에서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를 활용한 아이스크림, 치즈, 요거트 등이 이미 시중에 출시됩니다. 예를 들어 퍼펙트 데이가 만든 동물 없는 유단백으로 제조된 브레이브 로봇(Brave Robot) 아이스크림은 부드러운 풍미와 식감 면에서 기존 유제품 아이스크림과 구분이 어려워 큰 호평을 받습니다.
뉴 컬처는 한발 더 나아가 카제인 단백질까지도 미생물 발효로 합성해, 이를 재료로 실제 모차렐라 치즈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차렐라는 피자에 올려 구웠을 때 늘어나는 식감까지 재현해내며 “진짜 우유로 만든 치즈와 거의 구별이 안 된다”는 평가를 얻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기존의 아몬드·코코넛 같은 식물성 치즈 대용품들이 넘지 못했던 맛과 기능의 장벽을 깨뜨린 것으로, 치즈 애호가들과 환경 운동가들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습니다.
퍼펙트 데이의 미생물 발효로 만든 유청 단백질로 제조된 아이스크림은 실제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동일한 풍미와 식감을 구현하면서도, 젖소 사육에 따르는 환경 부담이 없습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최대의 우유 생산지로 유명하지만, 이러한 동물 없는 유제품 기술은 낙농업의 풍경을 서서히 바꾸어 놓습니다.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소가 필요 없는 우유”라는 개념에 열광하고, 스타트업들은 지역 유가공업체 및 식품 대기업들과 손잡고 기술 상용화를 가속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곡물 기업 ADM은 뉴 컬처와 제휴하여 대규모 발효 시설에서 동물 없는 모차렐라 치즈를 양산할 계획을 밝힙니다. 또한 퍼펙트 데이의 동물-유래-동일 단백질은 제너럴 밀즈, 마스(Mars) 등 거대 식품사의 아이스크림, 초콜릿, 단백질 보충제 등에 원료로 공급되며 이미 우리 식탁에 일부 오릅니다. 이는 첨단 푸드테크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실험을 넘어 주류 식품 산업과 결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밀 발효 유제품은 캘리포니아 낙농 문화의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한 세기 넘게 이어진 “캘리포니아 우유” 산업은 풍요로웠지만 동시에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과 토지·수자원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제 미생물 발효로 같은 단백질을 얻으면서 환경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낙농의 방식이 목장에서 발효조로 변화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실험실에서 만든 우유로도 미식의 영역을 충분히 확장할 수 있음이 증명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이러한 동물 해방형 미식 혁명의 선두 기지로 부상합니다. 일례로 3D 프린터와 발효 기술로 치즈를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몰려들고, 유명 셰프들도 동물 성분 없이 만든 치즈와 버터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기술과 접목된 새로운 낙농은 캘리포니아의 전통 식품 산업 지형을 바꾸며, 샌프란시스코를 지속가능한 미식의 실험장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은 단순한 음식 혁신을 넘어, 공간의 혁신으로도 이어집니다. 베이 에어리어의 푸드테크 기업들은 하나같이 실험실과 레스토랑이 혼합된 이색적 공간을 설계하여 소비자와 만납니다. 이들 공간의 키워드는 투명성과 소통입니다. 전통적으로 식품 공장은 외부에 숨겨져 있었지만, 대체식품 스타트업들은 생산 현장을 도시 한복판의 공개 무대로 끌어냈습니다.
UPSIDE Foods의 EPIC 시설은 에머리빌의 보행자 거리와 상점들에 둘러싸인 공공 공간에 자리하며, 커다란 유리창으로 바이오리액터가 들여다보이게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기술을 쇼윈도에 전시하여 사람들의 의구심을 투명하게 해소하자”는 의도로, 배양육 생산 공정을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합니다. 내부에는 직원 업무 공간과 연구실, 레스토랑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위한 관람형 원형극장(amphitheater)까지 갖추어져 있어, 투자자나 셰프들이 직접 와서 생산 현장을 보며 토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첨단 생명공학과 외식 산업이 한 지붕 아래 어우러진 풍경을 연출하며, 음식에 대한 대화와 이해를 증진시킵니다.
와일드타입의 도그패치 시설 역시 공개형 푸드랩의 선구적 모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건물의 일부를 시식 공간과 교육장으로 꾸며, 방문객들이 실험실 한쪽 끝에서 초밥을 먹으며 다른 쪽 끝의 배양 탱크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다”는 경험은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신뢰를 심어줍니다. 음식 안전과 기술에 대한 불안이 투명한 유리문 하나로 상당 부분 해소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건축적 개방감은 푸드테크 업계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합니다. 실제로 여러 스타트업 사옥 인테리어를 맡은 디자인 회사들은 “가능한 한 실험실을 공개하라”는 주문을 받습니다. 스탠텍(Stantec)이 디자인한 UPSIDE의 공간은 사무실과 생산 시설을 조화롭게 융합하면서, 곳곳에 창과 오픈 공간을 배치해 과학을 일상 풍경으로 스며들게 하였습니다. 와일드타입은 파일럿 공장을 설계하면서 “단순한 유리문 이상의 투명성을 보여주자”라며 내부 투어 동선을 아예 건물 구조에 통합했습니다.
이처럼 맛의 실험실화는 곧 공간의 혁신으로 이어져, 소비자가 새로운 재료의 탄생을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즐기는 시대를 엽니다. 결국 이러한 공간 디자인의 지향점은 소비자 신뢰의 설계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 실험으로 만들어진 음식에 대해 사람들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랩을 하나의 쇼룸으로 바꾸었습니다. 투명한 제조 과정 공개,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 미식 체험을 결합한 공간들은 미래 음식이 신뢰와 흥미를 함께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그러한 혁신 공간들이 도시 직물에 녹아든, 세계에서 보기 드문 “오픈 푸드랩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어떻게 문화와 혁신, 도시와 음식, 건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쓰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과거 〈Appetite〉 편에서 논했듯, 샌프란시스코는 오래전부터 남다른 식욕과 실험 정신으로 미국의 음식 트렌드를 이끌어온 도시였습니다. 50여 년 전 NorCal에서 시작된 계절식 재료 중심의 팜 투 테이블 혁명도, 유기농과 슬로푸드 운동도 모두 샌프란시스코의 식탁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런 도시가 이제는 랩 투 테이블(Lab-to-Table)의 시대를 열며 재료 혁신의 중심에 섭니다. 셰프의 주방에서 이루어지던 실험 정신은 이제 실험실의 배양조와 발효 탱크로 옮겨왔고, 셰프와 과학자는 협업하여 새로운 인공 재료를 창조합니다. 이 변화는 도시 문화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한편으로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맛있는 것을 탐하는 미식의 도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미식의 기반이 되는 재료 자체를 발명해내는 혁신의 도시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환이 일순간에 대중 모두의 식생활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 배양육은 특별한 이벤트에서나 맛볼 수 있고, 발효 우유로 만든 치즈도 제한된 파트너 식당에서만 선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질문이 던져졌다는 사실입니다. “고기는 꼭 자연에서만 얻어야 하는가?”, “우유를 얻자고 거대한 젖소 농장을 유지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들이 샌프란시스코의 실험실들에서 제기되고, 그 가능성 있는 답들을 향해 나아갑니다. 도전적인 스타트업들과 이를 응원하는 지역 사회, 그리고 열린 마음의 소비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문화 현상입니다.
혁신을 향한 식욕(appetite)이 실험실로 옮겨진 지금, 샌프란시스코는 기술과 인본주의, 지속가능성과 미식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재료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가 던진 질문들은 전 세계의 식탁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담론을 제공할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렇게, 모두가 주목하는 한 끼의 미래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NEXT. ‘인큐베이터(Incubator)’ - 차고에서 시작된 혁신이 은하까지 뻗어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