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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an 31. 2024

아무도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나 마주하는 일

renewal.6 내일에는 내 일이 되는 일

- 우리는 언젠간 장애를 맞이한다.

장애는 언제나 내 일이 될 수도,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남의 일은 될 수 없다. 내일의 나를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 내일의 우리를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이제야 생각해 보면, 누가 먼저 얻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지는 크고 작은 불편함을 어느 시기에 얻고, 어떤 방법으로 익숙해지게 만드느냐를 통해 삶을 영위해나간다. 그러므로, 모두가 장애를 피할 수 없으므로 약자에 대해, 복지에 대해, 배려에 대해, 도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고려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장애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니까.

결국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내가 장애인이 된다는 것과 내 사람이 장애인이 된다는 것. 어느 것이 더 힘들까? 당연히 전자가 더 고통스럽고, 힘든 일 일 거라 생각했다. 그 어떤 불행한 일도, 주변보다 당사자가 제일 힘든 법이니까. 설사 그것이 부모-자식 관계여도. 그리고 이미 나는 전자의 상태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었다. 힘들고, 힘들 미래도 너무 뻔히 보였다. 그런 것들이 지칠 만큼. 신은 내게 아직 더 큰 고난이 남았다고 말하는 듯이, 어느 날 아빠가 장애를 얻게 되는 일까지 주셨다. 그렇게 나는 장애인이자 장애인 가족 구성원을 두게 되었다.            


- 장애를 가진 아빠는 낯설고 어색했다.

장애를 가진 나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아빠와 다른 아빠가 되어 내 눈앞에 있으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항상 나에게 도움을 주던 사람이, 이제는 몇 안 되는 나의 도움이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일상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있는 아빠를 보면 마음이 복잡했다. 처음에는 숨 쉬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앉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정말 하나하나 모든 것에 타인의 도움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솔직하게, 무능함을 넘어서서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아빠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건 다른 말로 말하면, 도움이 필요한 아빠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나를 보는 일이기도 했다.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분노가 일어났다.             


나 역시도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는 모습이 똑같아 보였기에. 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수 없어 나는 꾸준히 도피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도. 더욱이 아빠를 보면 마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에 꼼짝없이 누워만 있던 나를 다시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경 회복이 되지 않아 말린 내 손가락들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아빠의 손가락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 듯 고통스러웠다. 그 누구도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내가 사랑했던 아빠가 나로 인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죽고 싶었다. 이 마음을 심리 상담 때 살펴보고, 또 알아보고 나니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나의 장애를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남아있다는 것을. 여전히 나는 내 팔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빠를 바라보는 것을 이렇게까지 힘들어한다는 것이었다.            


- 모두가 변해버렸다.

신체장애로 아빠는 많이 달라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기억상실로 인하여 교통사고 이전 나의 모습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지만 분명한 것은 사고 이후 나는 내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달라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장애가 남을 정도의 사고라면 큰 사건이니까. 아빠 역시 달라졌다. 그렇게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이고, 모든 걸 힘으로 몰아붙이던 아빠는 힘을 잃었고, 이기적일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아빠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렸던 갓난 아기 시절처럼 변한 것 같았다. 너무나도 변해버린 아빠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는 아직도 과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젠 아빠를 떠올리면 항상 두 가지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다치기 이전의 아빠와 다친 이후의 아빠 모습.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채로 괴리를 느낀다. 거기서 오는 혼란을 나는 아직도 감내하지 못한다. 언제나 폭력을 행사하던 아빠가 더 이상 나를 때릴 수 없게 되어서, 강할 줄만 알았는데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아빠를 보아도 나는 똑같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 장애가, 모든 인식을 바꾸게 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돕고 싶었다. 나는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 도움을 받지 못해서, 돕고 싶었다. 아빠라서라기보다는, 다친 사람이라서라는 마음이 컸다.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아빠에게는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도 한쪽 팔을 못 쓰면서 말이다. 편마비가 있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어려웠다. 더군다나 의사소통에 어려움까지 있다 보니, 나 스스로 생각 봐야 하는 것들이 컸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다고 해도, 워낙 말을 잘 하던 아빠가 아니었기에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다 꽉 막힌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내 장애도 감당 못하면서?

우선 가장 첫 번째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내 사고 때 경험과 지식을 아빠를 간병하는 엄마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어떤 증상들이 올 수 있고, 이런 점이 아빠나 엄마에게 힘들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나의 상황을 이번에도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다. 즉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나는.            


그다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와의 대화뿐이었다. 다른 타인이라면, 하다못해 엄마라면 나는 듣기를 가장 먼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내가 아는 아빠는 절대 자기의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술이 있어야 조금 털어놓지만, 이제는 술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친 이후로 단 한 번의 마음을 털어둔 적이 없다. 그럼 결국, 내가 이야기해야 한다. 무슨 이야기이든, 먼저.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아빠에게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장애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힘들어도 재활을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걷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 나는 잘 모르겠기에. 전자는 결국 미래보다는 현재를 살아가자는 말이고, 후자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자는 말이다. 사실 둘 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것을 적어도 나는 안다. 둘 다 경험해 보았고, 무엇을 해도 후회가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어떤 말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 어떤 말도 아빠의 고통에 답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대화하는 것부터 나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 사실 나는 아빠가 낫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너무 잔인한가? 흔히 말하는 내가 T라고 생각하나? 아니,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팔도 낫지 못하리라 생각하는데, 하물며 아빠의 장애가 쉽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정확히는 아빠가 다시 걸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바라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걷는 아빠가 상상되지 않는다. 지금의 건강 상태로 걷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더 많은 재활을 견뎌야만 가능한 미래라서. 남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빠를 보며 나는 더 의문이 늘어간다. 재활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서.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빠는 재활 치료를 하고 싶을까? 아빠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치료를 하고 싶다'와 ‘걷고 싶다’와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팔을 쓰고 싶지만, 재활 치료는 작년에서야 겨우 조금씩 다시 시작했다. 사고 직후의 나도,  작년의 나도 재활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아질 미래의 나보다 힘들어하는 현재의 내가 더 우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 나아도 괜찮은 삶을 살고 싶었다. 아빠는 무엇을 바랄까?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예전과 다르기에, 가장 큰 문제는 아빠가 솔직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답을 듣지 못한다. 약하면 무너진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서, 어떤 것을 약하다 여겼는지 뻔히 알기에, 나는 이제 묻지 않는다. 이 물음이 아빠에게 더 고통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침묵으로 대신 답하고 있기에.            


- 여전히 나는 장애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때로는 사회가 장애를 규정함으로써 비장애인들이, 가족들이 낫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장애를 인정하거나 극복하는 선택지 밖에 없을까? '장애'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꿈을 꾸는 것은 비현실적인가? 그렇다면 왜 장애를 분류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는가? 왜 사람들은 여전히 장애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분리해야 하는 건가?            


장애는 당신의 에도, 에도, 에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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