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김과장 May 25. 2024

24. 머리카락을 잘랐다.

편두통에서 벗어나고자 커피를 끊고, 

일찌감치 술을 끊고, 

얼마 전 밀가루까지 끊은 나는 삶의 의욕을 조금 잃었다.


몸은 가볍고 두통은 사라졌다.

위도 더부룩하지 않았고, 위염도 사라졌다. 

나의 식습관은 22일 동안 많이 바뀌어 있었다.

흰밥, 빵, 떡, 피자, 치킨, 매운 것을 좋아하던 나는 22일 사이 없어져 버렸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샐러드를 먹고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닭가슴살을 데우고 있는 내가 지금도 낯설다.

확실한 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낙을 잃었다.

먹는 행복이 내 인생에서 제법 컸던 것 같다.


며칠 전 머리카락을 잘랐다.

육아를 하며 머리가 긴 게 힘들어서 아이를 낳고는 한동안 기르지 못했었다. 아이가 조금 크면서 다시 한번 긴 머리에 웨이브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제법 참으며 길렀었는데 단발로 잘라 버렸다. 

머리가 길어지니 무겁다고 느껴졌다. 두피가 아픈 것 같았다. 왜 나이가 들면 머리를 기르기 힘든지 깨달았다. 단발로 자르고 나니 너무도 가벼웠다. 머리를 감을 때도 편하고 말리기도 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아리 뿐이구나.

그마저도 내 말을 듣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원래 첫 딸은 아빠를 많이 닮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니 칼로리가 높은 것들을 안주로 먹게 되고, 이런 식습관이 40살이 된 지금에서야 몸에서 그만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당뇨가 심해져서 샐러드와 현미밥을 드신다. 술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고 먹는 걸 좋아하던 아빠가 샐러드만 드시는 걸 보며 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지금이라도 멈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샐러드를 먹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젊을 때 다 당겨 쓴 거야. 술도, 맛있는 것도 그때 다 먹은 거지."


내 친구도, 남편도 어쩜 그렇게 같은 말을 하는지. 

20년을 자제하지 않고 즐겼고, 이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때가 온 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인생 끝난 것처럼 글을 썼지만, 나름 괜찮다.

기름기 가득한 대창과 곱창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금요일 밤이었지만,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 23. 침투적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