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나에겐 친구들이 많지는 않다만 특이한 친구들이 많다. 그 중에 오늘은 우연히도 친구중에 나이가 많은 친구를 만났다. 중2때부터 고3까지 나의 학창시절을 다 보신 분이시다. 그녀의 결혼식을 위해 처음으로 아빠의 모교를 처음 갔던 때가 (엊그제 같진 않지만) 여전히 생생한데 벌써 그녀의 딸이 초등학교를 입학한단다. 시간이 정말 쏜 화살과 같다.
잠깐 마주치는 것인데도 그녀의 거침없는 입담에 나는 웃겨 죽는다. 분명 선생님이셨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었다. 만나면 다자고짜 '왜 또 만나' 라며 서로를 지겨워한다. 자신에 대한 자조와 상대에 대한 디스가 거침이 없는 이 사이는 사제지간과 친구사이 그 경계 어딘가일 것이다. 경어체를 쓰긴 하는데 내용은 친구들과 하는 얘기랑 크게 다르지 않다. ‘화상으로 수업을 해야할 판인데 턱에 보톡스라도 맞아야지, 애들한테 이 얼굴은 민폐가 아니니?’라는 그녀의 말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웃겨서 길거리에서 한참을 웃었다. ‘요즘도 테니스 나가니? 요즘에 기업은 공채가 떠?’뭐 이런 말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녀가 하기에 나도 답하기가 굉장히 가벼워지는 것이다. 츄리닝 입고 만나게 되는 것을 보니 맞다, 동네 친구가 따로 없다.
그녀의 입장으로 잠시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중학교때부터 안 아이가 대학생이 넘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오며 가며 동네에서 마주치기 일쑤라니. 역지사지를 해도 조금 웃길 거 같다. 아니려나, 오히려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서 좋은 대학을 갔다고 해도 끝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시려나?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친구일수도-
누군가의 삶의 서사를 오랜 기간 관찰하게 된다는 것. 사실 자의에 의해서는 아닐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그녀 또한 나의 주변인으로 충분히 오랜 시간을 머무르고 있으며 그녀는 나를 잘 간파하고 있다. "너 동생이야 원래 똑부러졌지, 너가 물렀지"와 같은 말들은 그녀가 나의 성질을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편한 것 같다. 중학교때부터 본 아이인데 오죽하겠는가. 학창시절만 5년을 보았으니 그걸로 그녀는 나의 성질을 이해할만하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시간이 친밀도와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지만, 더욱이 나라는 사람은 접촉의 빈도가 친밀도나 관심도와 비례하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의 축적을 나의 삶 안에 품게 되는 것.
참 축복스러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