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먼지_취준기록1

언어영역 1교시

by 깊은 연못


언어영역은 항상 1교시다. 수능을 보면서도 수리영역이 차라리 1교시로 오고, 언어가 2교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수리는 생각에 잠기면 시간이 크게 상관없어지는 반면, 언어는 내가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속도와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긴장감이 큰 1교시에 굳이 언어를 배치하는 사악한 의도를 나는 알 수 없으나, 이 나라에서는 관습적으로 언어가 항상 1교시다.


나는 원래부터 언어(국어)를 잘 하던 학생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느라 책은 읽지 않았던 탓일까. 수능공부를 하면서 언어 점수를 올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왜 한국말인데도 틀리는 것이냐며 스스로를 꽤나 맹렬히 몰아세우며 공부한 끝에야 원하는 성적을 받아낼 수 있었다.

직무 적성의 언어영역도 수능의 하위 버전이다. 하지만 요새는 점점 수능을 닮아가는 추세다. 결국 변별력을 위한 것이겠지만, 이유야 뭐든 수능을 두 번 볼 생각을 하면 누구든 그리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언어영역, 첫 시간의 공포와 막막함 앞에 서면, 나는 한 사람이 꼭 생각이 난다.


고3때 좋아했던 언어 선생님이다. 그 분은 마음에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이었다. 그에겐 선생님이란 단어에 흔히 어울리는 따뜻함이나 아버지같은 인자함이라던가 따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작가 같았다. 매일 학생을 대하는 일을 하시는데도 관계를 맺는 방식이 독립적이었다. 그래서 분명 차갑게 느껴지는 면도 있고, 틀림없이 냉소적인 것 같지만 또 때때로 세상을 보는 시선은 날카롭기보다 섬세하고 따뜻했다. 또 남에게 많은 관심을 두지는 않지만 어딘가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 분의 작품설명을 듣고 종종 책 위에 눈물이 떨궈지기도 했었고, 비문학을 해체하는 그의 실력은 해부하는 의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낱낱이 드러나는 글의 구조랄까-) 나는 그의 언어세계와 그의 말을 몹시도 사랑했다.


그래서 이 취준의 기간, 바야흐로 8년이 지난 이 시기에도, 언어영역을 공부할 때면 그가 이따금씩 생각나는 것이었다. 마음은 어디에 안가고 그대로라서 여전히 그 과외의 시간으로, 그 책상 앞에 앉아 좋아하는 선생님을 기다리는 소녀로 나는 순간순간 돌아가버리곤 한다.

그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과 함께 이 시간이 끝나고는 꼭 얼굴을 뵈러 가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마치 그의 후배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시간들처럼. 내가 맛난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리는 어느 날에는 전례없는 전염병이 도는 와중에 부디 건강하시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어쩌면 그분에 대한 기억들과 추억이 고3이든 지금이든 가장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시간에 큰 힘이 되어주시는 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고맙고 따뜻한 고양이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가을엔 꼭 그 고양이를 만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