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을 지웠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16
배달앱을 지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배달에만 의존해 삶을 이어나가던 내가 생존 수단 중 하나를 스스로 끊어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누차 얘기했듯이 원래 밥을 해 먹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더불어 설거지를 싫어했고, 주방이라는 공간 자체에도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배달앱에 의존하게 된 것이 밥 하기가 싫어서였는지, 설거지를 패스하기 위해서였는지, 주방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인지. 딱 하나만 꼽을 수는 없다. 이 셋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지 쓰지 않는 물건만 정리했을 뿐인데 주방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살림 유튜버들의 집처럼 생활감 없는 듯 완벽하게 깨끗한 주방이 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언저리 맨 끝쯤에 걸쳐 있을 수 있는 주방으로 탈바꿈되었다. 피할 수 있으면 들어가지 않으려고만 했던 주방에서 요즘 나는 하루 한두 끼를 직접 만들어 먹고 있다.
주방이 정리되니까, 밥 하는 일도 즐거워졌다. 정리된 주방이 좋아서 설거지는 밥을 먹고 바로 한다. 잘 말려진 그릇들은 곧바로 수납장에 넣으므로 주방은 늘 정리된 채로 있다.
전에는 어쩌다 기분이 내켜 밥을 해 먹으려고 해도 이미 쌓인 설거지를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 다음 끼니의 내가 하도록 미뤘으니까. 설거지를 하다가 만사가 귀찮아져서 포기하는 일도 많았고, 설거지를 건너뛰고 다른 그릇을 꺼내서 쓰고 다시 설거지거리를 만들어 방치하는 일을 반복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그릇이 싱크대 위에 제멋대로 전시되는 지경에 놓인 후 주방은 더 이상 주방일 수 없었다.
아주 달라진 나를 발견한 것은 냉장고에 이어 주방 정리를 마친 어느 날이었다. 밥때가 되면 언제나처럼 배달앱부터 찾던 내가, ‘냉장고에 뭐 있지?’를 먼저 떠올렸다. 하루 이틀...... 그렇게 두 달을 넘게 배달앱의 존재를 깡그리 잊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살아갔다. 그리고 대략 열흘 전 저녁, 더는 배달앱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저 크리스마스트리가 어울리는 정돈된 집에서 살고 싶었을 뿐, 배달앱을 끊을 마음은 전혀 없었다. 배달비를 줄여보자는 결심은 이미 여러 차례 했고, 시시때때로 부서졌으며, 점점 더 자제 불가능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며칠 있다가 다시 깔 줄 알았다. 근데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괜찮았다. 없으면 죽을 것 같고, 힘들 것만 같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살아졌다.
어떤 일이든 마음가짐이 먼저라고 생각했기에 줄곧 결심 후에 변화를 꿈꿨다. 달라진 나를 기대하며 마음먹기만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나는 마음을 다잡지 않았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자체를 거부했다. ‘못 한 나’보다는 ‘안 한 나’가 실패라는 결과에서 자유로우니까.
이번에 알았다. 어떤 변화는 대단한 결심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반드시 집밥을 해 먹겠다는 다짐도, 배달앱을 끊겠다는 각오도, 설거지를 쌓아두지 않겠다는 포부도, 정리 정돈이 된 집에서 살겠다는 욕심도, 내겐 없었다. 이런 결과들을 걸지 않고 그저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일생일대의 변화를 만들었다.
기대가 크면 시작이 두려워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내가 산 25cm의 크리스마스트리, 딱 그 정도 크기의 기대만으로도 변화는 출발했다. 저 멀리에서 점점 더 나에게로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