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시한부 보호자’의 운명을 받았습니다.

by 현진

평범한 날들은 다만 평범하게 지나갈 뿐이라서 ‘평범하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를 그저 잊어도 된다는 듯 흘러간다. 그리고 철저히 잊고 지낸 의미의 대가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묻는다. 이젠 잃어버릴 차례라고.

-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안돼. 아직은 아니야.

- 하지만 이미 여러 번의 기회를 주었는걸?


도대체 언제냐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 그 기회를 놓치는 걸 마다하지 않고 지내왔다. 어제가 그랬듯, 오늘이 그럴 것이고, 당연히 내일도 오늘과 같을 거라고 말이다.


- 이제는 아니야. 여기가 끝이면 어때?

- 이렇게 갑자기? 설마... 아니지...?


‘보호자 분 잠깐 나와주실까요?’


병실에서 나를 조심히 불러낸 건 호흡기 내과 의사였다.

‘아버님은 응급실로 두통 때문에 오셨고,

일단 축농증으로 인한 염증이 심각하다고

판단되어 이비인후과와 안과 응급 수술을

진행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염증이 폐에도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에요.

폐 전체가 하얗게 되어서

기능을 못 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이비인후과에서 호흡기 내과로 전과해서,

앞으로는 저희 쪽에서 볼 거고...’


의사는 여태 내가 만난 혹은 내가 알고 있는 대학병원 의사 중 가장 친절했고 몹시 조심스러웠으며, 진심을 다해 나에게 현재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이렇게 친절한 대학병원 의사가 있을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버님의 나이와 체력, 그리고 전력으로 봤을 때

하루 이틀 사이에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질 수 있어요.’


따듯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차가운 현실. 그는 이미 ‘급성 폐렴’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중환자실로 가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고, 그 이후 상황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도 했다.


- 선생님 그렇게 다정하게

최악을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낮은 확률은 아니에요. 50퍼센트 이상...’


지금 시점에서 보호자인 내가 향후 연명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틀 안에 지금의 치료가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혹시 더 질문이 있냐고 그가 물어봐 왔지만 ‘48시간 시한부 보호자’의 운명을 방금 부여받은 나로서는 ‘지금은’이라는 말밖에 더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중에’라는 말을 덧붙이고 그와 헤어진 후 병실에 돌아왔다. 잠에 빠져있는 아빠의 얼굴은 그저 평화로웠다. 아니다. 그렇다고 믿고 싶었을 뿐 분명 이전의 수술과 입원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난 것 같기도, 혹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은 것도 같다. 기억하는 것은 아빠의 부재에 대한 나의 슬픔이 아닌 그제야 아빠의 얼굴에서 보인 억척스럽게만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아빠가 너무 불쌍했다. 그와 동시에 비로소 불효녀의 삶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살았던 나를 인정함과 동시에 평범하게 주어진 시간을 사치스럽게 써버린 대가를 이제는 치러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그러자 울컥 눈물이 나왔다. 어쩌면 아빠와의 마지막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뿐이었다. 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보잘것없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48시간 중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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