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우리 아이의 새로운 유치원 적응기
"이게 뭐에요? 하고 원을 쏘다니며 계속 질문하는 아이. 네 살에 처음 간 원에서는 화장실 물을 계속 틀어놓고 물장난으로 옷을 다 버려 왔었다. 여섯 살이 된 올해 3월에도 아이는 새로운 원에 가서 그런지, 첫날 원을 탐색하느라 무척 분주했다고. 수업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는 다른 반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또 하루 지나니, 자리는 지키고 있으나, 자주 엎드려 있기도 했다고. 보육 위주였던 어린이집에서, 보고싶은 책 실컷 보고, 주는 밥 먹고, 착석도 필요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앉아서 연필 잡고 쓰는 것도 하고,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수업도 들어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닐테다.
자유분방한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하는 건 어떤 것일까. 조화롭게 지내는 것과 아이 자신의 고유한 성향에서 멀리가지 않게하는 것, 그 어느 중간쯤에 좋은 방법은 없을까. 엄마는 머릿속이 복잡한데, 막상 아이한테 물어보니 오늘 유치원 가서 본인은 정말 즐거웠다고. 배움이 쉽진 않지만, 배워온 노래, 한글 자음과 모음, 영어 알파벳과 파닉스를 중얼중얼 복습하는 듯한 읊조림이 괴로워 보이진 않았다. 어깨를 들썩들썩, 노래도 흥얼흥얼, 즐거운 아이. 엄마의 감으로, 아이가 거기서 배움이 즐거웠다기 보다는, 그곳 사람들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그곳에서의 기억을 집에서도 이어가는 것이다.
아이의 발달 속도를 마냥 존중하는 데에서만 그칠 수 없음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규칙이란 게 엄연히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되도록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선이고. 말하자면 사회 속에서 아이가 살아가야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에 미치니,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그런 감각에 둔감하다면 도와줘야 할 것이다.
일단, 많이 공감해주기로 했다. 사회생활을 갑자기 해야하면, 어른도 힘들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오늘 정말 힘들었지? 그래도 너무 너무 잘 하고 왔어. 칭찬해. 너는 정말 멋진 여섯 살이 되는 중이야." 엉덩이도 톡톡 두드려 주었다. 거기에 더해, 많이 안아주고, 뽀뽀해줬다. 번쩍 들어서 빙그르르 돌려주기도 하고. 너는 정말 소중하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의 배움의 시간, 노는 시간도 모두 소중한 거라는 건 슬쩍 흘리듯 여러번 말해주었다.
아이가 조금은 느리지만, 애써 적응해가고있는 것에 대한 격려섞인 담은 담임선생님의 전화에 대한 나의 태도도 작년에 비해 바뀌었다. 아이가 통화를 다 듣고있을 시간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되)최대한 존중해주는 선에서, 선생님께서 잘 이끌고 계신 것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아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정하게 여러번 알려주시고, 기다려주시면서 아이에게 계속 기회를 주고 계셨다. 감사했다.
"아이가 아마도 최선을 다하고는 있을 거에요. 그런데, 아마 생일도 늦다보니, 늘 누군가 도와줬던 습관이 있을 거에요. 그래서 아직은 막내같이 해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잘 할 수 있다고 계속 집에서도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가 원에서 배 고프거나, 졸리지 않도록 해서 등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차적 욕구가 충족되면, 덜 예민해지고, 관대해지는 게 인간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선생님께서 교육하신 내용을 집에서도 반복적으로 열 번, 스무 번 다정하게 하지만 힘주어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했다. 수업시간이나 밥 먹을 때는 앉아 있어야 하고, 갑자기 소리 높여 말하거나, 너무 신이 나도 혼자 어디론가 도망가서는 안 된다. 라고 반복적으로 ‘warm and firm'의 규칙 안에서 아이에게 말할 뿐이다. 절대로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기로 다짐한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말해주지 않아도, 조용히 있어야 할 때와, 돌아다니지 않고 앉아 있어야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수월하고, 능숙한 아이도 꽤 많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한테 당장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들, 아이가 그걸 할 수 있느냐 하면 단호히 아니다. 그러니, 기다려주고, 잘했을 때, 격하게 칭찬해줄 수밖에는 무슨 뾰족한 방법이 없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말이다.) 다른 친구들도, 세상에는 나와는 조금 다른 속도의 친구들이 있음을 배워나간다는 마음을 가져주면 감사하겠지만, 거기까지는 너무 과한 욕심일테다. 그러니 우리 아이가 하루 빨리 '세상 속의 나'를 배워가도록 격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생님께 우리 아이의 상태에 대해 머리숙여 사과하지 않겠다.'라는 내 나름의 원칙도 지키기로 했다. 아이가 죄책감이 아닌, 배려를 배워나갔으면 한다. 아이가 타인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미안해서 어떤 원칙을 지키기 보다는, 세상안에 있는 나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이 다같이 온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다정한 배려를 배워나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가 누군가를 때리거나, 하면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엄마도 더 굳게 믿어주기로 해본다.
아이: 수업시간에 돌아다녀서, 친구들이 나를 싫어해요?
아이는 다 알고 있다. 선생님이랑 입학 후에 매일 통화를 하니, 나에게로 와서 아이는 급하지 않은 요구사항을 말하면서 계속 통화를 방해한다. 민망해 죽겠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자기도 보다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답답할 것 같다. 그러니, 그런 아이 마음도 십분 이해해주는 모양새를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나서 단호하고 따뜻하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기로. 그리고 잘했을 때에는 반복적으로 칭찬해주기로 할 뿐이다. 그것만이 아이를 성장과 배려 쪽으로 움직일 것임에는 의심이 없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이와 정이 쌓인 친구들이 아이를 조금은 도울 것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수업시간에도 선생님한테 안아달라고 한다거나,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려 하는 아이의 태도에 대한 가정에서의 노력은? 집에서 영상을 되도록 보여주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지루하고, 아무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는 시간에 대해 스스로 잘 컨트롤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사실, 두 아이를 밥 먹이려다 보면, 자연히 큰 아이에게는 (굳이 영상이 아니더라도) 책을 펼쳐서 음성펜으로 들려주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리를 지키고 밥을 먹게 하는 손쉬운 방법을 쓰곤 하는데, 이건 미봉책일 뿐이니 말이다.
돌아보니, 첫째는 3세, 4세, 5세, 6세 모두 다른 원을 다녔다. 이사로, 코로나로 이유는 있었지만, 제 나름 힘들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웬만하면 아이가 올해 이 유치원에 원만하게 잘 적응해서, 일곱 살에는 다른 원으로 옮기지 않도록 하는 편이 최선일 것이다. 조바심은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것임을 지난 몇 년간 배워왔던 것을 기억하자. 선생님도, 아이도, 엄마도 힘내자, 파이팅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