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어유치원의 첫 관문,
강남의 7세 고시를 돌아보며

육아 난이도가 높은 둘 아이 엄마의 단기간 합격선을 살폿 넘어본 이야기

by Joy Kim


어느 가정이나, 자녀교육은 딜레마다. 나 역시 정보와 교육 서비스가 넘쳐나는 강남 한복판에서, 첫째 제제를 공부로 달릴 수 없다는 사실이 속아픈 일이었을까. 그래서 제제 대신 둘째 수수에게로 공부 달릴 몫이 가게 되어 수수는 얼마간 무거웠을까. 어쩌면 두 아이 이상을 기르는 가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고민일 것이다. 형아보다 동생을 더 공부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코로나 종식 이후, 영어유치원(이하 영유)을 5세에 시작해, 3년을 제대로 다닌 어린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강남은 영유 3년차들이 매년 차고 넘치게 되었고, 예비 초등 영어학원의 경쟁률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이들이 맞이하는 '강남의 7세 고시' 매년 그 준비기간과 강도가 심해지며, 대치동 학원가에서 10월이면 첫 채점을 마친 후, 늘 탄성이 터져 나온다고 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4대 영역에서 아이들의 수준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평 말이다. 그러니, 우리 아이를 더 빠르게, 더 단단하게 준비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조바심도 나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입시는 언제나 비슷한 뜨거움이었겠지만, 그 연령이 자꾸만 더 낮아지고 있나보다.


2023년은 제제를 1학년에 입학 시키며, 적응의 어려움으로,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마음에 멍이 가득했던 나였기에, 수수의 이 첫 관문이 더 엄중한 일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제제 대신 보란듯이(지나고 보니 도대체 누구에게?) 잘 키워보고 싶었을 수수를, 어떤 뚜렷한 결과 앞에 세우는, '나의 과업'으로 여겼을 사건!


1년이 정말 후다닥 지나갔고, 어느새 맞은 이 겨울은, 그래서 어느 겨울보다 의미심장하다. 엄마도 자녀교육 10년을 선행한 느낌이랄까. 지난 봄, 프렙학원을 다니는 아이들 틈에서, 과외를 짜기 시작하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칠 때, 나는 내가 '제제를 기르는 엄마라는 사실'을 마음에 깊게 새겼다. '절대로 휩쓸려 가지 않겠다!' '필요한 순간이 온다 해도, 마지막까지 버텨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마음은 꽤나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한 선택이 제제에게는 최선이지만, 수수에게는 최선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마음의 줄다리기가 자주 팽팽해지곤 했기에.


그렇게, 수수의 7세고시를 엄마로서 제대로 써포트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포기의 마음에서 출발했었는데. "엄마, 유치원에서 하는 방과후 프렙 수업은 정규수업보다 쉬운 책으로 해. 돈 아까워. 유치원 말고, 다른 데 알아봐줘. 나한테 필요한 것만 엄마랑 준비를 해보거나, 다른 학원을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수수가 제안했고, 여름을 넘어 서면서는, 할 수 있는 한, 시험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최소한의 힘과 비용으로, 수수와 합격선을 넘기 위해 함께 뛰게 되었다. 일정량의 단어를 외우고, 시간을 정해서 독해를 하는 정도로만 했다. (여담이지만, 비강남지역 나의 절친한 친구들, 특히 고등학교 영어교사 친구들은 가치관에 따라서는 말도 안 되는 일, 의미없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이러한 세태에 대해 목소리를 높혀준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 중심으로 쑥 들어가서,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지는 좀 제대로 살펴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어 왔다.)


7세 고시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같았다. Top3, 즉 난이도가 높은 학원부터 시험을 치기 때문에, 준비가 많이된 아이들부터 먼저 합격이라는 스푼에 떠져서 구분되어 확정된다는 비유적 의미에서 그렇다. 우리 수수는 대치 Top3 학원은 아예 목표하지도 않았지만,(지나고 보니, 시험을 다 볼껄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제제 엄마 이기도 하기에, 너무 높은 수준의 목표는 잡지 않으려 한다. 이유는 수수가 허덕이지 않고,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곳이려면, 가까스로 합격하는 곳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Top5 정도부터는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독해 점수는 칠수록 높아졌다. 아이가 시험에 적응을 하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작문 점수는 때마다 달랐고, 유치원에서는 수수가 작문을 탁월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프렙에서 훈련되지 않아서 였는 지, 작문 점수 과락으로 탈락 소식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시험은 무엇이 부족한 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바로미터였다. 탈락을 했기 때문에, 수수가 작문을 좋아하지만,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수수는 애초에 글쓰기를 좋아했다. 한글과 영어로 한바닥씩 매일 글을 쓰는 아이였으니. 그러니 기왕이면, 좋은 글은 어떤 것인지, 수수와 충분히 연습해보고, 다른 사람들도 좋은 글로 여기는 지 보여보는 검증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는 글, 질문에 맞는 답을 하는 것(오프 토픽 하지 않기)예시를 들고, 결론에서 한 번 더 주장을 강조하는, 누가봐도 산뜻하게 이해되는 글쓰기를 익히는 훈련은 이때 다음어진 것이고, 합격점의 작문 만들기에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수수는 엄마와 언니없이 단둘이 시간을 확보해 목표있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시험 초반의 '불합격' 사실에 대해 단 한번도 불합격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이의 어깨를 내가 나서 꺾지 않아야 함을 이때 알게 됐다. 수수도 가고싶은 학원이 있나 살펴볼 기회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제제가 있기에, 거리가 되도록 가까운 곳을 선호했고, 여러모로 수수에게 딱 맞는 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수수에게도 나에게도 지난 여름 끝자락과 가을무렵은 특별했다. 3개월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지만, 합격소식은 없었는데, 가장 가고싶어했던 곳에서 할아버지 장례식 중에 수수의 진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수수는 앞선 모든 시험에 합격한 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제서야 진실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석달 정도 수수와 이런저런 롤러코스터의 시간을 보냈던 것을 나는 아동학대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수수는 인터뷰의 매너를 익혔고 매력적인 인터뷰이가 되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시간 안에 형식에 맞는 글쓰기를 배웠고, 시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파와 한몸이 되어 영어 챕터북 시리즈들을 읽는 즐거움에 빠질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와 수수는 돈독해졌다. 엄마는 제제 언니만 쫓아다니는 편이라고 늘 생각해왔던 수수였는데,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던 때같다.



둘이 데이트하듯 카공족으로 나란히 앉아 공부하며 느낀 여러 감정들을, 일지들로 써놓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내용들이 지금은 오래전 일같이 생경하다. tvN 방송 <유퀴즈>에서 배우 송혜교의 인터뷰를 보는데, 말마다 밑줄을 긋고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다름 아닌, '일상의 무탈함에 대한 감사함' 이었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려와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 그 마음이 되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던 지난 3년 동안은 우리 아이가 친구들이 많이 가는 하와이에, 혹은 영어권 그 어디에 방학마다는 아니어도, 툭 함께 떠나지 않거나, 못 감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던 때도 있었다. 수수의 말마따나, "엄마, 나 만으로 겨우 여섯 살이야. 공항만 길게 걸어도 아직 힘들어. 친구들이 전세계를 다 다녀와서 브리핑을 해주는데, 어디가 어떻게 좋은 지, 다 들어보고 좀 커서 가도 돼."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며, 도리어 휩쓸려 가버리고 싶기도한 어미 마음을 다잡아주는 수수에게 고맙고 고개가 숙여진다.


대한민국의 압축성장 만큼이나, 아이들이나 육아하는 엄마들이 겪는 고단함의 스피도도 비슷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달리니까, 우리 아이도 일단 달려볼까. 하는 불안이 이끄는 레이스에서 우리가 이제는 용기있게 각자 조금만 느슨하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레이스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건 다 틀렸어요! 라고 반기를 들 일도 아니고, 아주 조금씩 자신의 페이스로 가보는 일을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내 아이에게 맞게 그 정도의 스케줄을 잘 조정해 보았다고 감히 긍정해 본다.


지난 한해, 남편은 사랑하는 외할머니와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제제를 키우느라, 아니 연년생을 키우느라, 아니 너무 빠르게 많은 걸 요구하는 이 생을 집약적으로 통과해 살아내느라, 우리에게 애도의 시간이 너무 생략되었음을 새해가 되어서야, 여러 슬픔들이 조금씩 나의 것으로 서서히 스며 온다. 나는 두 아이를 기르기 위해 매일 늦은 진료에, 원고와 씨름해 온 남편을 돌아봐줄 틈이 없었다. 진료실에 오는 수많은 마음 아픈 분들의 삶을 다독여오며, 병마와 싸워오신 아버님의 마지막 호흡을 바라볼 여력조차 없이, 자신의 호흡도 고르지 못했을 남편을, 아내인 나는 챙겨봐줄 여력이 없었음을. 각자가 자기만 겨우겨우 살아내기에도 고단했을 지난해를 돌아본다.


7세 고시라는 둘째 아이의 어떤 생의 이벤트를 통해 우리 가족의 입체적인 나날들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러니 그 무엇이든 우리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 맞는 중심잡기에 대해 다시 곰곰히 생각하며 사는 새해를 살아내면 좋을 일이다. 꼭 올라가기만 하지 않아도, 남들 눈의 저 높은 곳에 내 아이를 꼭 올려놓는 것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최선으로 살아내고 있었음을 긍정하면서.


3월에 서울대를 보낼 것 같았던 7세 아이의 영어실력이, 12월에는 시험에 대해서는 전략적 갈무리가 덜 되어 당장은 아이 실력에 맞게 갈 학원이 없어 모두 탈락하였다 하더라도, 아직은 희망할 인생이 너무나 길기에, 나는 무척이나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깨가 꺾일 일도, 다음 날을 못 살아갈 일도,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수수는 4세 고시에서 몇차례 미끌어진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일이 되려 수수에게는 무척 잘맞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마다 발휘하는 나이나 타이밍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복수로 여러 곳에 합격했다가 취소하는 어린이들의 자리가 비게 되므로, 1학년 내내 기회도 많다고 느껴진다. 영어가 끝났으니, 닥수(닥치고 수학 달리기) 분위기 라는데, 쉬엄쉬엄 나는 언제나 제제를 생각하며, 수수가 스스로 슬슬 욕심을 내는 박자에 맞추어 가보려 한다.


수수는 다행히도, 대치 Top10의 끝자락에 해당할만한 초등 영어학원들에 합격선을 잘 넘겼다. (제제를 두고 대치 라이드를 할 수 없으니, 대치 Top10의 끝자락이자, 서초 목동 분당 등 비대치 지역에 지점을 둔, 해당지역 top 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


1초만에 광클릭으로 좌우되는 시험 신청도 엄마는 능숙하게 하지 못했는데, 그 역시도 광클릭 업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넉넉히 합격하고 남은 수수의 친구 엄마들이 품앗이로 건네준 자리에 시험을 친 결과였기에, 참 감사했다. 아이를 모국어 환경이 아닌 곳에서 3년 동안 고생시키기만 한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그 3년을 함께 보내고 나니, 남의 아이도 함께 잘 커주길 바라는, 성실하고 성품 좋은 엄마 친구들도 고스란히 남아서 곁이 돼주었다. 결과라고 한다면, 같은 유치원에서도 준비 기간과 정도, 아이의 역량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나오기도 했지만, 서로가 열심을 기울인 그 시간에 대해 알아주므로, 진심을 다해, 아이들이 가진 강점이, 누수없이 잘 평가되기를 서로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니, 이것은 어떤 시작도 끝도,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어떠한 삶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 시간을 잘 통과해준 수수에게, 또 나에게, 제제에게,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의 시간에, 이 시간이 어떤 길을 내줄 지 잘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지금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잘 담아 기록해보기로 한다.




(사족: 이런 글은 아이를 대치 Top3 정도 거뜬히 합격시킨 엄마들이 써야, 읽을 맛도, 정보도 풍부한 글이 될 터인데, 그저 7세 3년차 학습식 영어유치원 평균 정도의 아이가, 보통의 엄마와 아주 짧은 기간 어떻게 겨우겨우 잘 마무리 하였는 지에 대한 참고 정도로만 보아주기를 부탁드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진정 살고 싶은 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