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정점의 일이 이미 일어났으니까요.
초등 입학을 앞두고, 아무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어머님들,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제제의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저도 그랬으니까요. 무언가 크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일이 나의 어깨를 잡고 확 밀쳐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안절부절 못했던 시간을 저도 기억합니다. 아이 역시도, 학교라는 사회에 새롭게 던져진다는 두려움이 클 것 같아요. 제제도, 입학해서 얼마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언어틱을 경험했구요. 그때 얼마간 저는 어미로서 아이에게, 혹은 반 친구들, 교사와 학교에 죄인이라는 마음이 들어, 모든 순간이 감옥같이 답답한 마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시절이었습니다.
어제 어느 모임에서 제 옆에 우연히 앉은 한 어머니는 남성이었다면, 제가 곧장 반해버렸을 지 모를, 차분한 음성으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하시는데, 저 어머니에게 있는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이들은 얼마나 잘 키우시는 분이시겠는가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을 가득하게 하시는 그런 분이셨어요. 얼굴 가득 은은한 미소가 퍼지셨던 어머니. 이 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을까, 이 분의 자녀들은 어떤 어떨까, 궁금해지고 설렐 뻔 했을 정도였어요
3학년이 되는 제제가 불안해 하지 않냐 물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제제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훨씬 본인이 안정이 되었던 기억이 있기에, 두려움이 적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한 해 더 자라서 제제의 곁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2학년 3월 말 즈음, 공개수업에 가서, 1학년 때와 확연히 달라진 제제와 친구들을 보며 무척 든든했습니다. 교사 입장에서 제제라는 관심을 더 기울여야할 학생이 있으니, 나머지 학급 친구들을 보다 착실한 친구들로 구성하게끔 학교에서 배려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제제반은 학년이 끝날 때까지 전학생을 받지 않게끔 배려해 주셨습니다.
저는, 제제가 3학년 때에도 제제를 제제 특성 그대로 이해해 주시고, 잘 격려해주실 수 있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제제에게 필요하다면, 학교에서 좋은 보조 선생님을 제제 곁에 모셔주실 것을 믿어요. 그렇게 제제에 대해 짧게나마 소개를 했어요. 그런데, 제 곁의 그 어머니께서는 꽤 위중한 병을 앓고있는 어린 자녀를 기르고 계셨어요.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선물이에요. 좋은 일, 기적같은 일이 그 아이를 통해 정말 많이 생겼어요." 라고 하시는데, 그 마음이 진심인 것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인생의 고통의 무게에 대해 경중을 쉬이 말할 수 없지만, 우리 자녀 앞에 이미 와버린 어떤 일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엄마 자신과 아이에게 더 좋을 지, 그분은 제게 몸소 보여주시는 것 같았어요. "저한테 온 아가인데, 잘 보살펴야지, 반품해 주세요, 할 수가 없더라구요." 선선히 웃으시며, 말씀하시는데, 인간적인 감정들, 한탄, 억울함, 서러움 등으로 반응하며, 인생을 허비하기 보다, 아이와 가족이 더 사랑하는데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오셨음이 느껴졌어요.
약속한 것도 아닌데, 저의 다른쪽 곁에는 제제와 같이 자폐스펙트럼과 ADHD 진단을 막 받고서, 초등 입학을 앞둔 어머니가 계셨어요. 그 어머니와 어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많이 두렵고, 걱정도 되시겠지만, 교실에서 착석이 잘 안 된다면, 소아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꼭 약도 먹여 보시고, 보조 선생님도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시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단 한번 뿐인 인생의 시간이,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쓰는 데 더 많이 쓰여버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지금이나 그때나 제제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배워오고, 즐거이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제일 중요했던 것 같아요.
진단은 이미 받은 것이니, 거기에서 주저앉지 말기로 해요.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제제는 1학년 내내, 점심시간마다 교사가 처음 가르쳐준 동요 노래가사를 담박에 외워서, 친구들이 밥 먹을 동안, 열심히 불러주어서, 친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우리는 누구나 다 다르기에, 멋지게 바이올린을 켜고, 개다리 춤을 잘 춰서 인기몰이를 해야하는 건 아니니까요. 제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매력포인트로 발산해 갈때, 친구들이 제제에 대해 놀라워하고, 발견의 기쁨에 말을 더 걸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인생을 살다보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잖아요. 괜찮아요, 이 이상의 나쁜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남의 말, 남의 시선도 결국 우리 아이들 곁을 잠시 스치고 지나갈 거에요. 그것을 내가 굳이 붙들어, 엄마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이 남았던 입학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특수교육 대상자 라든가, 장애 아이라는 이름 앞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초등 입학을 앞둔 아이들과 어머님들이 모두 이 시간을 더 의미있게 잘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괜찮아요. 우린 이제 잘 지나갈 시간만 남았으니까요. 우리는 오히려 아주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구요, 어려움의 정점을 찍었으니, 나아지거나 좋아질 일들이 올 차례에요. 하이 파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