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잘 하는 여성이 되기 싫어요!
친정엄마와 싸웠다. 친정엄마는 아이 둘을 데리고 독박육아 중인 나를 도와주시려 우리집에 오셨다. 분명히 집안일을 할 인력이 둘로 늘었는데, 일은 해도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본래 집안일이란 게 그런 것이지만 하다보니 화가 치밀었다. 할수록 일이 더 늘어나는 느낌. 평소에 혼자서는 못 하던 집안 구석구석 까지 닦아내다 보니, 일의 규모는 커질 수밖에. 일꾼이 둘이니, 이참에 더 제대로 해야한다는 엄마의 진두지휘에 따르다가, 나는 급기야는 빗자루를 집어던졌다.
"엄마, 저한테 집안일 가르치지 마세요. 집안일을 왜 이토록 잘 해야하는 건데요? 집안일은 적당히 하고, 저는 제 일을 하러 얼른 나가고 싶어요. 자꾸 집안일에 대해 제 마음에 부담을 가중시키지 말아주세요."
시어머니였다면, 하지 못했을 말이다. 거기다 세대차이도 더해졌다. 엄마에게는 최선이고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거북하고 화가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뭐가 힘드니? 너는 전업주부인데, 이걸 잘 하는 게 네 임무이고, 네가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일 아니니? 나는 회사 다니면서, 애 키우면서, 훨씬 바지런하게 해놓고 살았어. 정신을 바짝 차리면 다 할 수 있어!"
엄마가 오시면, 아이들을 뒤로 하고, 백팩을 메고 나가, 책도 맘껏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웬걸 집안일을 끝도 없이 해야하는 지경이 되고 보니, 눈물이 났다. 다름 아닌, 나를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엄마의 견고한 생각이라 더 야속했다. 내가 집을 뒤로 하고 나가버린 뒤, 내가 없는 집에서 집안일을 계속 할 엄마가 못내 마음이 쓰이니, 엄마 역시 집안일은 안 하시고, 아이들이랑 놀다만 가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결코 그럴 분이 못 되신다. 딸 집에 왔으면, 딸 대신에 집안일 하나라도 더 거들고 싶으신 분이다. 그러니 이 갈등이 봉합될 리 만무하다.
"엄만 내가 아깝지도 않아요? 엄마가 공들여 키워서, 잘 교육받게 해놓고, 이렇게 걸레질 열심히 하게 내모는 게 맘에 들어요? 엄마 와계시는 동안이라도, 마음 편히 책 한 권이라도 보고 오게 배려해주시면 얼마나 좋아요."
엄마 입장에서는 실컷 일 해주고, 욕먹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시어머니의 생각도 마찬가지시다.
"가방끈 긴 애들이 애도 잘 키워. 넌 다른 일할 생각 말고, 애둘 잘 키우며 사는, 이게 최고 복이야."
이 두 어머니에 대해 나는 "남편이랑 똑같이 대학 나와서, 혼자 집안에 남겨진 신세, 겪어보셨어요? 겪어보시지 않았으면 말씀을 마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들어간다.
나를 몹시도 아끼는 가족구성원 여성들의 말이다. 50년대에 태어나 남자 형제, 혹은 동생들 대학 보내는 데 우선순위가 밀려, 본인이 하고싶은 공부로 대학 공부를 끝마친다는 생각은 이기적이거나, 사치로 여기며 살아온 그녀들이다. 그러니, 한 평생 밥 굶지 않고 잘 살기 위해서는, 남의집의 잘 길러진 아들, 즉 남편 잘 만나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던 세대다. 그러니, 남편 잘 섬기고, 아이 잘 키우는 것. 좋은 학교를 다니고, 구김살 없는 친구들 가운데 지내다가, 고생을 덜 할 신랑감을 만나는 것이, 여성으로서 최고의 삶임을 확신하시는 두 분.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한편으로는 시어머니로서 아들 뒷바라지만 하는 순종형 며느리를 원하셔서 그런가도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아들 벌이가 시원찮거나, 부모인 우리가 너희한테 경제적으로 부담을 줘서, 너를 일터로 내모는 것 같아서, 너 일하는 거 별로 좋지 않아."
여성인력을 남성과 동일하게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일꾼으로 보기 보다, 어쩔 수 없는 궁핍에서만 하릴없이 일터로 내몰리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시어머니의 생각은 어쩌면 이 시대 여성인력을 바라보는 다수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정부모님의 고민은 또 다른 측면에 있다.
"네 일 하고싶으면 해! 그런데, 애 둘은 누가 돌보니? 애 아프면 곧장 달려올 사람도 없는데, 너가 일터로 나갈 일이니 지금! 우리도 노후가 길어서 계속 고향에 머물며 소일이라도 해야 해. 서울에 와서 너희들하고 같이 지내기엔 무리야."
"얘야, 나는 할머니를 돌봐야 해서 네 아이들 봐주기는 역부족이야." 시어머니 역시 조부모 부양이 큰 부담이다.
이렇듯 어머니 세대도, 우리 세대도 짊어져야 할 짐이 무거운 건 매한가지다. 아이하나 키우는데 온 동네가 다 도왔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농경사회에서는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 살며, 아이들은 조부모, 삼촌, 고모들 등 여러 어른들의 무릎 아래에서, 그들의 눈과 손을 빌어 커나갔을 것이다. 4050 어머니 세대에서는 온 마을이 아이를 함께 길러왔다고 하셨다. 오늘은 민수네서 같이 팥죽을 끓여 먹고, 내일은 지연이네 제사 음식에 밥을 비벼 먹이며,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기술의 혁혁한 발전으로 세탁기며, 빨래건조기, 식기세척기 까지 등장한 7080 세대의 육아가 왜 사상 최대치로 어려움에 봉착했을까. 역사상 고등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 가장 많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는 그만큼 공부만 하며 귀하게 자랐다. 그러다가 출산과 동시에 여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아와 가사노동의 세계로 갑작스레 홀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육아공동체도, 아이를 봐줄 가족공동체도 없이 홀홀단신 육아와 가사일에 어느날 내몰린 것이다. 고령화 사회로 인해, 부모세대도 계속 소일거리라도 지속해야 하고, 혹은 할머니 세대를 부양해야 하니, 손주를 봐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의 결혼과 출산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배려해야하는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모두 생략되었다.
"미국은 여성들이 출산 후 한달 만에 직장으로 나가요. 그게 가능한 건,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 아이 엄마건, 아빠건, 누구나 직장에서 아이에게 다녀오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요. 그건 대단한 배려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러니, 아이를 낳고, 여성이 계속 이전처럼 일할 수 있죠."
미국에서 워킹맘 생활을 했던 지인의 말이다. 한국사회가 출산한 여성을 남성과 동일하게 사회의 큰 일꾼으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친정엄마가 오셨을 때, 집안일을 더 정교하게 배우기 보다, 인생을 재정비할 독서와 글쓰기를 할 시간을 달라는 나의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투쟁의 대상이 엄마가 아닌 이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