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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Sep 21. 2020

고유한 나의 삶

너의 이름은

 밤늦게 야자를 끝내고 돌아온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지혜야, 외삼촌이 네 이름 보내줬어. 방에 있으니까 한번 봐봐.”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내 손에 개명할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들어왔던 그날은.

 ‘철수’나 ‘영희’처럼 각 시대마다 많이 불리는 이름들이 있다. 십 칠년 정도를 나와 함께했던 지혜라는 이름도 그런 이름이었다. 나의 경우 성이라도 독특했으면 좋았을텐데, 하필이면 성도 흔하디 흔한 성씨였다. ‘지혜’라는 이름은 부모님께서 밤새 옥편을 들여다보며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이기는 했지만, 수없이 마주치는 지혜들 속에서 나는 그 이름에 대한 애정이 점차 옅어졌다. 유치원 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각반엔 ‘지혜’가 있었고, 심지어 어느 해에는 같은 반 안에 또 다른 ‘지혜’가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지혜야!”라고 부르면, 나를 부르는 건지, 다른 지혜를 부르는 건지 몰라서 돌아봐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나만의 고유함을 갈망하던 그 때에, 나는 상대가 찾는 것이 내가 아니면 어쩌나하는 염려를 달고 살아야했다.


 “제발 성까지 붙여서 불러줘!”라는 우리 지혜들의 부탁에 친구들은 애칭을 만들어 불러주기도 했지만, 늘 새로운 지혜가 내 앞에 등장하는 바람에 나만의 영역을 침해당하는 듯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십여 년 간 꾹 눌러왔던 나의 속상함이 확 터져버린 하루가 있었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학교 축제날이었다. 한창 공부를 해야했던 그 시절에, 조용히 짝사랑했던 오빠가 있었다. 학생회 회의에서 한 번씩 보던 그 오빠는 답답한 회의 속 이온 음료같은 쿨한 존재였다. 그 오빤 당시에 인기가 꽤 많았다. 앞 반의 또 다른 지혜도 그 오빠를 좋아했는데, 나보다 더욱 적극적이었던 그 지혜는 급기야 축제날 그 오빠에게 공개 고백을 했다. 전교생이 다 모여 있는 강당에서, 사회자는 용감한 그녀의 사연을 쭉 읊었다.


 “OO오빠 (앞 반의 지혜는 그 오빠랑 같은 동아리여서 앞부분에 에피소드가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뒷부분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앞부분에선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 오빠한테 딸기우유도 주고 싶고, 초코우유도 주고 싶은데, 지금 이 순간 가장 주고 싶은 우유는 아이러브유에요!. - 오빠를 너무 좋아하는 지혜가”


 ‘아, 좀 느끼한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꽂혔다. 젠장. 내가 그 오빠를 좋아하는 걸 아는 절친한 몇몇의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내 이름을 아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웃으며, 박수를 쳤다. ‘뭐지?’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처음엔 내가 그런 사연을 보낸 적이 있었나하고 벙쪄있었다. 그러다 나에게 꽂히는 수많은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나 아니야!”라고 외치며 손사레를 쳤지만, 사람들은 흥미진진하다는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야속한 사회자는 어떤 지혜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다음 무대를 안내했고, 조명이 암전되고서야 사람들의 시선은 흩어졌다. ‘아, 정말 내가 아닌데!’ 속이 터져서 공연을 보다말고 나와버렸다. 아니, 고백할 거면 당당하게 자기 이름 석 자를 다 밝히고 하지, 왜 성을 안 붙이냔 말이야. 다행히 앞 반 지혜가 그 오빠에게 축제가 끝나고 직접 고백을 하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는데, 나는 그 날 집에 와서 엄마 아빠한테 이젠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내가 이름이 흔해서 속상했던 이야기들을 자주 했던 터라 엄마는 곧바로 둘째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다.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던 둘째 외삼촌은 풍수지리, 사주, 역학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벌써 사촌오빠들의 이름이나 한자를 한 번씩 바꾼 상태였다. ‘이름을 대충 지은 건 아니었는데, 흔한 이름을 지어줘서 미안해’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십여년 간 참아온 설움이 왈칵 쏟아졌다. 괜찮아,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고, 그냥 ‘지혜’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니까.


 그로부터 몇 달이 흘러 나는 새로운 이름 리스트를 받게 되었다. 일 년에 한 두번만 속세에 내려오는 지리산 도사님으로부터 둘째 외삼촌은 이름 후보들을 받아, 우리 집으로 등기를 부쳐주었다.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서 어떤 이름들이 있었는지 전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종이 위에는 세로쓰기로 적힌 여섯 개 정도의 이름 후보가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이름에는 각각의 운명이 담겨 있었다. 마치 신비로운 시약 샘플을 받아든 느낌이었다. ‘이 안에 너의 운명이 담겨 있어. 이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는데 넌 뭘 고를래?’


 둘째 외삼촌은 내 사주를 고려해서 만든 조합 중에 ‘현진’이라는 이름이 가장 좋다고 하셨다. 얼핏 기억나기로 ‘가영’이라는 이름도 후보에 있었는데, 이 이름을 선택하면 아름다움과 인기를 누리는 것이었고, ‘현진’이라는 이름을 고르면 탄탄대로를 걸으며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둘 다 매력적인 운명의 시약 샘플이었지만 초등학교 때 이미 가영이라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 낯선 한자로 새겨진 ‘현진’이라는 이름에 난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 뒤로 내 인생에는 ‘류현진, 서현진’이라는 쟁쟁한 현진이들이 나타났고, 심지어는 내가 직전에 있던 학교에 또 다른 동명의 국어교사가 전입해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예전의 이름만큼 흔하게 들려오는 이름은 아닐 뿐더러, 나와 같은 이름에 나의 고유함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던 때는 지난 것 같다. 아직 지혜로 살아온 세월보다 현진으로 살아온 세월이 더 짧아서, 탄탄대로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삶을 따뜻한 것들로 풍요롭게 일구기 위해 노력 중인 것은 맞다. 앞으로 살면서 또 수많은 현진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중에 나는 어떤 현진으로 기억될까, 고민하며, 이름 값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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