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전날 아침에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
뭔가 시작 멘트가 보이스 피싱스러웠는데 카톡을 보내보니 정말 연락이 안 될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보낸 거였다.
다시 보면 시작 멘트는 보이스피싱스럽지만 마지막 멘트가 다르다. 보통은 액정이 깨져서 전화를 못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 반 학생은 전화도 문자도 안 된다고 했으니 정말 본인의 연락 두절을 걱정한 거였다.
내 이름과 프로필을 도용해서 보이스피싱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어서 수상한 연락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얼마 전에는 집에 걸려온 낯선 전화를 받았다.
일요일 밤 아홉 시 쯤이었는데 다급하고 울먹이는 목소리의 중년 아저씨가 우리 아빠를 찾았다. 아빠가 그때 지방에 계시기도 했고, 며칠 전에 10년 지기 친구에게 마약을 먹이고 내기 골프를 해서 5천만원을 뜯어간 뉴스가 떠올라서 굉장히 마음이 찝찝했다.
“@@@ 씨 댁 아닙니까? 쉬시는 시간에 연락 드려가꼬 죄송합니데이. 지는 같은 동향 출신 @@@인데, 십 년 전까지는 연락이 되었는데 핸드폰 번호가 바꼈는지 얼마 전에 너무 보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없는 번호라고 뜨더라구예. 지는 아버지께서 @@@@에 근무할 때 @@@@에 근무하면서 몇번 봤습니데이. 정말 보고 싶어서 수첩을 뒤지 보니까 다행히 집 전화 번호가 남아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데이. 집에 @@@ 있습니꺼?”
사투리때문에 말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말투도, 우리 아빠의 근무지도 맞았다. 하지만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누구시라고요? 저희 아버지랑 언제 때 친구분이시라구요? 지금 아빠가 집에 안 계시는데.”
사투리 가득한 말투로 다시 한번 본인의 이름과 신상을 들려주었지만 정확히 들리지 않아 난처했다. 게다가 친구라면서 10년 동안 연락을 한 번도 안 한 것도 의심스러웠다.
“그라믄예 제가 제 연락처를 알려드려도 되겠십니꺼?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아버지께 전해주실 수 있으시겠십니꺼?”
아저씨의 말투가 작게 떨렸다. 우리 아빠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 어쩌지? 예전 번호는 뭘로 가지고 있는 확인하고 알려줘야하나 하고 있었는데, 먼저 본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감사합니데이. 꼭 좀 전해주십시오. 고향 친구가 너무 보고싶어한다고.”
고향이라는 말이 무색해져버린 요즘에, 고향 친구라는 말을 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니까 이 사람이 진짜 아빠의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바로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하고 요즘에 10년 지기가 마약을 먹이고 돈도 뜯는 세상이니까 조심하라고 한참을 신신당부한 뒤에, 아빠 친구의 이름과 예전 근무지를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아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방금 나에게 전화했던 그 아저씨의 목소리와 똑같아졌다.
“@@@한테 전화가 왔다고? 진짜 착하고 좋은 친구데이. 내 중학교 동기 아이가. 안 그래도 연락이 끊어져서 궁금했는데 걱정 마라. 가는 진짜 좋은 애다.”
“응 그래도 아빠 사람들 조심해야해. 돈 빌려달라하면 없다라고, 보험 가입해달라하면 이미 다 가입돼있다고 하고.”
난 또 마음 여린 아빠가 걱정되었다. 아빠에게 친구랑 통화하고 나서 꼭 다시 전화 달라고 했다.
“아빠. 친구가 뭐래?”
“응 인자 퇴직하고 나서 다른 데 가서 사는데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돈 더 벌어야한다고 작은 일도 하고 있다더라고. 한번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했어. 진짜 좋은 친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이 나이 되서도 일하는 게 쉽나? 진짜 착하고 열심히 사는 친구데이.”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정말 순수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의심을 하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 씁쓸했지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아빠가 그 친구를 만나고서도, 그리고 한참 뒤에도 그 친구와 아빠의 우정이 지금처럼 맑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그러지 못하지만 사람 사이의 믿음이 조금 더 견고해져서,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보다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이 더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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