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Aug 17. 2022

조카들과의 여름날

이번 방학은 폭우와 코로나때문에 발이 단단히 묶여서 유난히도 짧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중간 중간에 동화처럼 느껴졌던 날들이 있어서, 일기처럼 적어두려고 한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이번 여름 방학에 본 영화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정말 좋았다.


 어릴 적 할머니 집, 외가집, 친척 집에서 보냈던 수많은 날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향수 짙은 영화였다. 후덥지근한 열기와 선선한 선풍기 바람이 함께 공존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언니네 집에 가서 조카들을 만나고 싶었다.

영화에서는 고모와 조카들의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고모와 조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으면서도, 오랫만에 봐도 편안한 그 분위기가 너무 잘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나도 영화 속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어느 여름 , 시외 버스를 타고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조카 재유는 방학이었고, 언니는 일을 시작해서 재유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재유는 내가 이야기 들려주는 걸 정말 좋아해서 언니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지난 번에 들려 주다 만 악동 바이러스의 뒷 이야기를 계속 고민했다. 조카들이랑 잘 때면 밤마다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데 세헤라자드의 마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재밌는 이야기는 사랑 없인 절대 안 나오는데…


언니는 출근하고, 승유는 유치원에 가고, 언니네 집엔 재유랑 나랑 고양이 네네, 이렇게 셋만 남았다. 재유의 몇 개 없는 숙제를 봐주는 동안 선풍기 바람과 네네가 번갈아가며 우리 곁을 살랑살랑, 왔다갔다 했다.


재유는 혼자서도 책을 많이 읽고 이야기를 좋아해서, 방학 중에도 초등학교 도서관에 가서 매일 출석 도장을 찍었는데, 나는 지난 달 동화 창작 수업을 재밌게 듣기도 했고 그래서 재유네 초등학교 도서관에 같이 가기로 했다.


초등학교 도서관이다 보니 상급 학교의 도서관처럼 크지는 않았는데, 우리 집이랑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나도 매일 가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들이 잔뜩 꽂혀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은 <비밀을 들어주는 토끼>였다. 일러스트도, 담고 있는 이야기도, 인물들의 고민들도 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초등학교 3-5학년 정도의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게 될 경우 이 책을 정말 추천합니다.)


어릴 땐 책을 거의 안 읽었는데, 나도 재유처럼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 들락거렸으면 더 일찍 이야기와 소설에 빠지지 않았을까! 사실 이번 달엔 소설 창작 수업도 듣고 있는데 아직도 혼자 감을 못 잡겠어서 죽을 맛이다. 이야기가 소설이 되는 과정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1차 합평 이후 잔뜩 주눅들었지만 선생님께서 죽이되든 밥이되든 계속 써보라고 하셔서 내가 내 소설 속 주인공이다,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


우산을 쓰고 공원을 지나 도착한 재유네 도서관에서 한참이나 책을 구경하고, 또 책을 잔뜩 빌려서 집으로 왔다.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다 못 읽자 재유가 자기 이름으로 빌려줬는데 세상 든든한 도서관 친구였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재유가 좋아하는 베스킨라빈스의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을 포장해왔다. 비가 잔뜩 고인 후덥근한 여름날, 책과 시원한 바람, 아이스크림만 있으면 여기가 곧 낙원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승유까지 합세해서 아가들의 침대방에 들어가 악동 바이러스 이야기 2편을 들려줬다. 말로 들려주는 이야기의 맛은 아가들의 극적인 리액션 덕분에 잘 살아났다.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다음 번에는 바다로 떠난 하늘이 이야기(악동 바이러스 3탄)도 들려주기로 했다.


이야기까지 들려주니까 벌써 집에 돌아가야할 시간이라 나오는 길이 아쉬웠다. 하지만 즐겁게 놀다가 헤어질 때 느끼는 아쉬움은 그대로 아름다운 거니까,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하고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언니가 카톡으로 재유와 승유가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엄마, 이모는 어쩜 그렇게 재밌게 이야기를 할까요?”


엄청 힘이 되는 말이었다. 다음에 만나는 날까지 이모가 틈틈이 소설 창작도 열심히 해볼게!


이야기는 나의 힘!

언젠가 이 여름날의 기억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남을 것 같다. 재유, 승유에게도 이모와 함께 보낸 여름날이 좋은 추억으로 남길.



#동화 #비밀을들려주는토끼 #동화추천 #여름 #방학

#영화추천 #남매의여름밤 #이모 #조카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수상한 연락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