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긍지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김수영 시인의 작품를 감상하고 있다.
옹졸한 것에만 화를 내고, 정작 본질적이고 중요한 일에는 화내지 못하는 화자의 작은 모습에 대해 우리는 웃으며 말했지만, 정작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엔 김수영 작가보다 더 작고 옹졸한 우리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에도 나는 내 목소리를 잘 못낼 때가 많다.
간혹 용기내서 말할 때도 있지만, 화나고 억울한 순간이면 가늘게 떨리는 염소 목소리가 나버리는 바람에 나의 용기가 되려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많다.
얼마 전에는 어느 나이 많은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에게 신체적으로 모욕을 주는 말을 말해서, 우리 반 아이가 너무 속상해하는 일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도 아이의 마음 상태를 걱정하실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 그 선생님께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으니 따뜻하게 불러서 다시 이야기해주시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선생님은 나에게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 하는 거라, 따뜻한 말이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 말도 참 어이가 없었는데, 아이에게는 '미안은 한데, 왜 그랬는지는 생각해봐'라고 하셨다고 한다.
결국 아이에게 내가 그 선생님을 대신해 사과를 한다고 하였고, 아이가 괜찮다고 해서 넘어가게 되었다. 아이가 사람은 잘 변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 너무 씁쓸하게 느껴졌다.
학교는 단단해보이는 건물 구조와는 달리 매년 바뀌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곳이라, 누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내 마음과 내 생각이 언제나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동료들이,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로 인해 상처를 받는 순간들이 많아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화창한 날씨와 달리 겨울왕국처럼 얼어붙어있는 사람들을 모습을 보면 있던 힘도 빠지고 만다.
안그래도 번아웃이 와있는데, 이런 저런 흉흉한 이야기들로 자긍심을 잃어가는 나에게 오늘 무려 십 년 전의 제자부터 시작해, 내 덕분에 교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말해주는, 그리고 나보다 열심히, 훌륭히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스승의 날이란 이런 날인거구나.
잃어버린 열정을 두드려주는 고마운 아이들. 내가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따라 행동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내 모습을 닮게될까?
나보다는 크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작고 작은 나이지만
오늘은 왠지, 김수영 작가의 긍지의 날을 소리내어 읽고 싶은 날이다.
긍지의 날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 나의 몸은 항상
한 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어려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오늘도, 내일도 긍지를 가지고 하루를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