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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INSIK Dec 02. 2019

토카렙스키 등대

여행자의 간격

블라디보스톡 / 2019 / Nikon Z6

많은 한국인 여행객으로 번잡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 머리를 식힐 목적으로 블라디보스톡을 선택한 이유는 토카렙스키 등대를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1월말이 되어가는 블라디보스톡은 영하와 영상을 오르락내리락거리는 아직은 아주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지는 않은 시점이었는데 실제 도착한 그곳은 예상보다는 조금 더 추웠다. 매서운 바람 때문이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에도 매서운 바람으로 머플러를 꼭꼭 동여매고 다녔는데 이곳에 온 목적인 토카렙스키 등대를 가려니 조금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등대가 있는 블라디보스톡의 남쪽 끄트머리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강풍과 눈보라였다. 등대 입구에서 양쪽으로 파도가 몰아치는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눈보라 속에 토카렙스키 등대가 있었다.


나는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여행지가 바다와 접해있으면 조용하고 한적한 바닷가를 꼭 들렀다 오는 습관이 있다. 아직까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바다는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다. 깊은 바다 속에 갇힌다면 난 꼼짝없이 이 세상과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다는 먼저 나에게 덤비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바다와 한참을 대면한다. 바다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나에게 어떤 신호를 계속 보낸다. 바람과 파도와 빛과 온도를 통해. 하지만 그 순간 특별한 어떤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이 토카렙스키 등대처럼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는다. 그냥 좋다. 나도 모르게 계속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내 표정을 느끼고는 역시 이번에도 바다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잔뜩 얼어버린 몸을 택시에 싣고 블라디보스톡 시내로 돌아가며 차창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겨울을 만지작거렸다. 이제 나는 올해의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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