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준의 살리에리, 조정석의 아마데우스.
대학 시절, 다른 공부는 열심히 안했지만 희곡 수업은 열심히 들었었다.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Peter Shaffer라는 극작가의 1973년작 'Equus'를 배울 때였는데 같은 작가의 1979년작 'Amadeus'와 비교하는 부분이었다. 바로 '천재성' 또는 '비범함'을 지닌 극 속의 인물과 '평범함'과 '교육받은 교양'을 갖춘 인물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그 'Abnormal'한 존재를 바라보는 극작가의 시각의 변화였다.
천재성 Vs. 평범함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Equus'에 나오는 Alan은 극 안에서 'Abnormal'존재로 규정되어진다. 그는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교육을 거부하고 말과의 교감을 통해서 자신만의 '종교의식'을 만들어 가고, 결국 키우던 말의 눈을 찌르는 소위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Alan은 교사인 어머니, 인쇄공인 아버지로부터 '교화'가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지고, 그 심리치료를 맡게 된 정신과 의사 Dysart는 처음에 그를 치료하기 위해 등장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점점 Alan이 가지고 있는 그 자유로운 의식을 부러워하게 되고, 더 나아가 질투하게 된다.
이 극 속에서 Alan과 여자친구 Jill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물들은 이 사회의 질서, 규범, 규칙, 교육 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아주 잘 교육받아 사회에 잘 적응한 인물들인 것이다. 모두가 Alan이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Dysart만은 그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이해를 넘어 질투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Dysart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지는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해야만 했던 '그 사람'으로 남게 된다. (적어도 내가 읽었던 느낌에는)
이런 점에서 1979년도에 쓰여진 Amadeus에 등장하는 Salieri는 Dysart와 비교될 수 있는 인물이다. 1985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Salieri는 자신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대표라고 말한다. Salieri도 Mozart의 천재성을 질투했다. '에쿠스'의 Dysart가 마지막까지 점잖은 척을 했다면 Salieri는 그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행동에 옮겼다. 물론 관객에게 드러낸 것이지만 말이다. 그 지독한 질투심에 자신도 함께 망가져 가는 것에 괴로워했고, 신에게 '이제 당신은 나의 적이다'라고 외쳤지만, 그러는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간다. 그리고, Peter Shaffer의 극 속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이는 극작가가 '천재'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로도 볼 수 있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위의 내용이 내가 대학교 졸업논문으로 썼던 내용이다. 물론 저 얘기를 엄청 만연체로 20장 정도 썼던 것 같지만. 그리고, 여기까지가 지금 이 글의 서론.

본론은 지금부터.
대학 졸업논문의 주제라는 이유로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아마데우스'가 올라오면 거의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2년 전쯤인, 2016년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아마데우스'를 한다길래 친구를 꼬셔서 같이 보러 간 적이 있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 나는 몹시 화가 났었다. 이 작품이 단지 Mozart를 Salieri가 죽였나...를 놓고 스캔들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나의 'Salieri'를 이렇게 밖에 해석해내지 못했음에 분노했던 것 같다.
'Amadeus'의 주인공은 'Salieri'여야만 한다. 관객은 흔히 '영웅'이나 '천재'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쉽고, 감정이입을 하기 쉽다. 하지만, 이 극을 보는 관객이 'Salieri'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가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연극 'Amadeus'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그리고 Salieri역을 맡은 '지현준'이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나는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예매를 바로 했다. 하다보니 Mozart는 조정석. 게다가 무려 첫공!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지현준'이라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얼마나 힘싸움을 할지.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Salieri를 이 극의 온전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나는 그의 그런 에너지가 너무나 반갑고 좋았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Salieri와 같은 존재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 Salieri 정도의 재능을 갖고 살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죽어라고 노력을 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죽어라고 노력해도 뛰어넘지 못하는 내 안의 한계를 맞딱뜨렸을 때 우리는 쉽게 포기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그래야 덜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Salieri는 그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외면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망가뜨리더라도 그는 온전히 그리고 충분히 Mozart를 질투했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였다. 그 절실함과 고통을 잘 표현해줘서 지현준의 Salieri가 나는 참 좋았다.
모차르트가 죽은 후에 내가 받은 벌은 모차르트의 음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내 음악에 대한 칭송과 존경을 들으면서 살아야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폭발적인 에너지. 개인적으로는 사실 아무런 관심이 없이 만나게 되었던 조정석의 Mozart. 초반의 그는 그저 등장인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줬다. 조정석의 팬들은 아쉬웠겠지만, 사실은 그게 맞는 거니까.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조정석이 만들어낸 Mozart는 마치 "사실, 이 연극의 제목이 Amadeus야"라고 증명하듯이 지현준의 Salieri와 무대 위에서 힘싸움을 했다. 마치 "나도 알아. 이 작품이 원래는 Salieri가 주인공인걸, 하지만 내가 그냥 갈 줄 알았니?"라고 말하듯이. 조정석의 Mozart가 표현해준 그 불편한 애절함은 급기야 주책맞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어느 한 쪽에만 마음을 줄 수 없는 그 완벽한 팽팽함.
내 작품도 아닌데, 그냥 논문 주제였단 이유로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두 배우에게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충실하게 표현해 주고, 힘을 겨줘준 것에 대해서.
첫공은 실수도 있기 마련이고, 호흡도 안맞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였으니 나는 꼭 이 두 조합의 마지막 공연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