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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트립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포럼 코리아 (HFK포럼)에서 진행하는 '트렌드슈팅'이라는 트랙 안에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드트립'은 월 1회 일요일에 모여서 요즘 '트렌드'라고 정의되는 현상들에 대해서 함께 경험해 보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트렌드'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각과 옹호하는 시각을 함께 나눠보면서 균형감 있는 관점을 찾아가고자 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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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필드트립을 시작하기로 하고, 제일 처음 떠올린 주제가 바로 '전시'다. 작년에 디뮤지엄에서 진행한 'YOUTH'전을 보러 갔다가 여기저기서 하도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너무 화가 나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물론 나의 첫 번째 잘못은 마지막 날 전시를 보러 갔다는 것이었다. 거기서부터가 잘못. 다 내 잘못.
곳곳에서 볼을 빵빵하게 하며 셀피를 찍어대는 관람객들까지
10분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대들의 청춘이 이토록 위로받아야 하는 그 무엇이던가.
나도 알고 있다. 이 전시를 준비한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를 했으며, 시대를 읽는 인사이트를 가지고 준비한 것인지. 그래서 차마 해시태그에 #디뮤지엄을 달지 못했다. 혹시라도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게 될까 봐.
그 때 나는 화가 나면서도 도대체 왜 이렇게 본질도 느껴지지 않는 관람 문화가 생긴 것이며, 이것이 소위 '힙'하다고 규정되는 이유가 궁금했고,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필드트립을 맡은 순간 나는 '대림미술관/D뮤지엄과 전시문화'라는 주제를 맨 처음 떠올렸다.
첫 번째 필드트립의 날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긴장되는 법. 원래 모임이나 스터디에 자주 늦지만, 아침부터 바지런히 움직여 티켓팅을 하고, 대림미술관 옆에 있는 '미술관 옆 CAFE'에 12명의 자리를 40분 가량 맡아두는 몰지각한 행동까지 서슴치 않았다.
종이를 이용한 작품들의 전시. 'Paper, Present - 너를 위한 선물' 展.
사실 이 전시에 대한 감상평은 이번 필드트립의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3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던 계단과 이어진 4층의 공간(마음스튜디오)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 하고 싶다. 2층과 3층을 둘러보고 4층으로 올라갈 때, 계단에서부터 음악이 들려왔다. 뭔가 이번 전시를 마무리 짓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잔잔한 음악, 그리고 이어진 분홍빛의 공간. 분홍 갈대밭을 연상시킨 그 공간까지 큐레이터들이 연출한 피날레는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이 된 듯했다. 이번 필드트립의 주제가 사진(셀피)찍는 전시문화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원래 삐딱한 마음으로 전시를 보러 갔는데, 그 공간에서 나는 마음이 풀어져 버리고 말았다. 또 당했어.

전시 관람을 마치고 카페에 모여 내가 준비한 발표 자료를 설명한 후, 멤버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의 토론에서 기억에 남는 키워드를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전시 인증샷 / 전시의 대중화 / 예술가와 후원자
요새 전시는 '인증샷'을 찍기 위해 간다고들 한다. 그래서 전시를 준비할 때부터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팟'을 계획해야 한다고 한다. 전시는 아니었지만, 전에 의류 브랜드 마케팅 대행을 할 당시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사진을 예쁘게 찍어서 자신의 SNS에 올리기 좋아하니 매장 내에서도 그런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해시태그도 많이 달리고, SNS에서도 퍼지게 되어 있다고. 100%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왜 전시마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일까. 디뮤지엄의 'YOUTH' 전시 마지막 날은 마치 아직까지 인증샷을 찍지 못한 "힙스터" 따라쟁이들이 마지막 기회를 부여잡듯이 모두 모인 것만 같았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들은 과연 어떤 감상을 자신의 SNS에 남길까 해서 #디뮤지엄 해시태그를 검색해서 찾아보기까지 했었다. 슬프게도 제대로 된 감상평을 남긴 사람들은 찾지 못했다. 대부분 '예쁘다', '좋다' 정도의 짧은 형용사 정도. 간혹 자신을 위로하는 멘트 등이 있었고, 아마도 그것이 이 전시의 주제였겠지만, 20대를 예전에 지나 40대를 향해가가던 나는 '청춘 마케팅' 상술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획일화된 '취향'을 강요받는 "요새" 친구들이 안스럽기도 하고, 이게 또 트렌드라고 마케터로서 꼭 경험해 봐야 한다며 와서 화를 내고 있는 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출석도장과 같은 '방문 인증샷'을 통해 무엇을 채우고 싶은 것일까? '나는 전시도 보는 지성인이야!'라는 인증을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예쁘고 즐거웠으면 된 것인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지점에는 무엇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각박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임을 준비하면서 읽은 어떤 자료에서는 "요즘" 세대는 각박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고 설명한다. 과연 맞는 말일까? 이 또한 기성세대들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해석은 아닐까 생각한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들은 경험을 중시한다고 설명을 하는데, 어디를 가든 사진을 찍기 바쁜 사람들이 과연 온전하게 경험이란 걸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소유욕 때문이다.
멤버 중 한 분이 한 말이다.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SNS의 발전과는 별개로 인류 역사 상 대대로 내려오는 본능에 가까운 것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을 테니까.
대화를 나누고 나서도 결론이 내려졌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누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나의 이 성향도 그저 그렇게 몸에 배어 나를 가두고 있는 '모범생' 프레임은 아닌 것일까 생각했다.
대림미술관의 전시는 어렵지 않아서 좋다.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치를 늘려주었다.
이번 시즌 멤버 중에 '미술 전공자'가 있었다. 그 분은 대림미술관의 전시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치를 늘려주었다고 말했다. '아트'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치가 늘어나고 그 세대가 낮아지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었다. 대림미술관을 오는 사람들은 "그런" 전시들만 보러 다닌다. 이들의 예술에 대한 소양과 깊이가 얼마나 깊어질지 사실 알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실제로 몇몇 전시를 제외하면 여전히 많은 전시장들이 손님을 많이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보자.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다면 그 전시는 누구를 위한 전시인 것일까? 작가 자신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실체가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지켜나가기 위함일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좋아할 수 있는 무엇을 만드는 게 맞는 것이란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인기는 없지만, 꾸준히 해야 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 '다양성'이란 것이 생기니까.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콜라보레이션을 해야 하는 아티스트는 대중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보다는 '다양성'을 만들어 갈 아티스트가 아닐까? 그러나, 당장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 봐도 대중의 관심을 얻을 수 있고 덩달아 브랜드의 이미지도 좋아질 수 있는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상업적인 예술'이라는 규정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끼리도 "그 사람 너무 상업적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무슨 이미일까? 아티스트는 돈을 밝히면 안되는데, 너무 장사꾼처럼 군다는 의미일까? 굉장히 왜곡되고 폭력적인 정의가 아티스트들에게 전달되는 순간이다.
"그 사람이 무슨 아티스트야? 그냥 디자이너야. 돈주면 다 해준다니까."
또 하나의 왜곡되고 폭력적인 언행이다. 일타쌍피.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모두를 죽이는 한 마디. 생각해 보면 오늘 날 유명한 많은 예술가들이 당대의 최고 재력가들의 후원을 받았다.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인 '메디치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오늘 날 인기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앤디워홀은 대놓고 '상업적'인 작가였다.
얼마나 상업적이었는지 알고 싶다면...http://www.newspim.com/news/view/20180103000212
원래 예술과 자본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유독 지금 내가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존재가 예술에 조예가 깊은 누군가였거나 깊은 척 하고 싶은 그 누군가였는데, 지금은 그 재력이 개인이 아닌 기업으로 옮겨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업은 개인과 달리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 또한 자사의 브랜드나 제품의 홍보로 이용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일반 대중들을 걸려서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랫동안 궁금했고, 토론을 했지만, 명쾌한 결론을 정리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무엇인가 정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한 말들만 늘어놓게 되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동시대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상업적'인 게 뭐 어때서 이토록 불편하다고 생각하는지. 감상평 한 줄 없이 그냥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게 어때서 그토록 화를 냈는지. 이것은 지나치게 진지하려고 했던 나의 문제가 아니었는지.
2013년도에 뉴욕 여행을 가서 뉴욕 필하모닉의 베토벤의 9번 '합창'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1부는 Contemporary (동시대의) 아티스트들이 베토벤의 합창에 영감을 받은 곡을 연주를 했는데, 1부가 끝나고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내게 자기는 왜 이런 곡을 연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내게 어땠냐고 물으셨다. 솔직히 나 또한 1부가 굉장히 지루했다. 그리고 시작된 2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의 첫 소절이 연주되자마자 옆 자리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 이게 베토벤이지".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시간,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 어떤 나비의 몇 번째 날개짓이 이렇게 큰 파도를 일으켰는지 그 때는 도저히 알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의미를 찾으려 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가 오히려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조금 균형감을 찾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