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아래 Aug 27. 2021

유튜브 중독 수준으로 보다가 각성하는 글

반성문 쓰는 삶

사실 이건 반성문은 아닌데, 그간 스스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사는 제1의 원인으로 ‘멍청하게 핸드폰 붙들고 지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들어왔던 터라, 안 하고 안 보면 될 것을 굳이 볼 거 안 봐도 될 거 다 보다가 보다가 중독을 넘어선 기분에 이르렀기에, 멍청한 시간을 늘 반성하던 나는 이 글을 반성문 쓰는 삶 카테고리에 얹는 중이라는 것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 문장으로 밝히며 글쓰기를 시작해 본다.


내 직업은 음식과 관련된 것이다. 과거에는 손님들이 들고나는 카페를 운영하다가 점차 비중이 높아진 단체 주문, 외부 출장의 장점을 발견하고, 또한 미술학 석사학위라는 뭔가 쓸데없는 고학력의 예술적 능력을 음식을 만들고 담아내는 것으로 발현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작업실 형태의 공간을 꾸려 이 일을 n년차 운영 중이다. n년 전 이러저러한 철학적 사유로 작품 활동을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절필하고 현재 일을 전업하고 있는데, 작품 작업하듯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음식들이 먹어 사라지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껴 단 한순간도 절필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음식이라는 주제와 재료가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의뢰 주문을 받는 순간부터 행사 종료까지 부담과 압박감에 스트레스 지수가 점점 더 커지면서 지난 4, 5, 6월 역대급 스케줄을 마친 이후 급 우울에 빠져 꽤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의해 반성문 쓰는 삶 카테고리가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아 이건 인간답지 않다고 느낀 핸드폰 붙들고 들여다보고 앉았는 (사실 누워있는 시간이 더 길지만) 시간은 인스타와 유튜빙이 대부분인데, 주로 웃기고 재미있는 휘발성 주제 위주의 영상들에서 우울감 떨쳐내기, 마음 돌보기, 나를 다스리는 명상, 잠자는 동안 치유하는 주파수, 김경일 교수님 심리 강좌 영상 이런 제목만 봐도 더 우울해지는 영상으로, 그리고 참내 우연찮게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본방으로 본 이후 일본은 왜 그럴까, 국뽕 넘치게 우리나라 만만세 영상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난 너무 금융을 몰라 그러니까 은행 예금이란 무엇인가부터 소상공인지원 어쩌구 새마을금고에 적금 드는 법 어쩌구 이 루틴을 2주 정도 진짜 미친 사람처럼 딥 디깅 하다 보니 마침내 유튜브 영상 편집하는 방법, 그리고 브랜드 채널 만드는 법, 버벅거리던 프로크리에이터에 궁금했던 부분의 기능 사용 법, 여러 주제의 책 리뷰들로 살짝 긍정적 방향으로 매우 천천히 옮겨지다가 오늘 방금 전 진짜 나의 실무인 “케이터링”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차근차근 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너무 깜짝 놀라 말도 안 되는 만연체의 한 문장의 연속인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다. 나는 케이터러이다. 그러고 보니 이 일을 시작하던 초창기 케이터링합니다 라고 내 일을 소개하면 케이터링이 뭔가요?에 설명까지 이어야 하는 대화가 기본이었는데, 유튜브를 보다 보니 어느새 사단법인으로 케이터링 자격증을 주는 기관도 생겨있고, 손 빠르고 실력 좋은 젊은 (나도 아직 젊어! 웅앵웅) 멋진 케이터러들의 영상이 많아 사뭇 놀라는 중이다. 나는 극심한 직업울렁증으로 내 일을 자신감 있게 나서서 소개한 적이 없고 그 와중에 부족하다고 느끼고 내가 하는 일을 속속들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을 지양했는데 그 이유는 부끄럽지만 동시에 내재된 자만심 때문이기도 했다. 나름  수년간 살아남아 거래처라고 부를 만한 고정 고객사가 있고 내게서 음식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소개로 이어진 개인 고객들이 있기도 하기에 나름의 노하우들을 조건 없이 드러내어 나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써놓고 다시 봐도 참으로 어디서 기인한 기고만장인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글 서두에 사실 이건 반성문을 아니라고 시작했지만 이것은 진정한 반성이다. 그러하니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영상을 만들어 공개해둔 케이터러 및 관련 유튜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었나 보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흥미롭고 멋진 일이기에 그 정신없는 케이터링을 준비하는 와중에 촬영에 후작업까지 해서 열심히들 올려놓은 게야. 참으로 자존감 높은 사람들.


혼자 모든 것을 꾸려오면서 해야 할 수 만 가지 일 중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바로 블로그 글쓰기이다. 네이버 블로그. 운영에 필요한 식재료며 부자재부터 기물 등등 구입을 위해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도 처음엔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순간 멀미가 날 정도로 굉장히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일이었다. 시스템이 좋아진 것인지, 내가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최소 멀미가 날 정도는 벗어나 착착 필요한 것들 재빨리 파악하고 구매하게 되었는데, 아 블로그 글쓰기는 진짜… 어휴… 극복이 안 된다. 네이버 블로그 글쓰기 편집기의 인터페이스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뇌가 마비되는 기분이 들어 솔직히 손을 놓은 상태이다. 그런 와중에 요즘 친구들은 검색을 유튜브에서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엔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디지털 아날로그 인간인 나로서는 아직은 같은 내용이면 글로 후다닥 읽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내는 게 더 편했기에 영상으로 학습 또는 정보를 취합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멀미 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런. 데. 앞서 길게 설명했던 바로 그 인간답지 않은 ‘핸드폰 붙들고 2주 넘게 바보 같은 주제 루틴 반복’ 생활과 그 이후의 과정이 지나고 유튜브 검색창에 내 일에 직관련한 키워드를 입력하고 자연스럽게(짜짜로니 스타일로) 영상을 스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글로 남기어 기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일 다시 이 격앙된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새로 동굴을 파고 자발적 은둔생활에 빠져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 수동적으로 멍청함을 증진시키는 것에 아랑곳없이 또다시 인간답지 못한 삶으로 돌아갈지언정 (아 여전히 길고 만연한 나의 문장) 그간 직시하며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내 생업을 조금은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유튜브 덕분인 것만 같기에 오늘따라 유난히 길고 긴 문장으로 가득한 글을 남겨보는 바이다. 덕분에 조금은 일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뭐든 해도 괜찮은 48시간이 남아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