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는 삶
최근에는 랩탑 pc와 OS에 깔아 두고 십수 년간 방치상태로 있던 에버노트 앱을 삭제했다. 뒤가 둥근 아이폰3를 처음 썼을 때, 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이 베타 버전이거나 프리웨어로 보급되던 시절 무료로 깔아 두고 가끔 몇 년에 한 번 꺼내어 반성문을 썼었고, 베트남 여행기로 몇 페이지 남겨두고, 요리 레시피도 서너 개 적어두었더라. 오랜만에 접속하니 자동으로 실행되던 앱이 로그인을 필요로 하는 구독 서비스로 유료화되어 있었다. 저장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렇게 장시간 방치된 기억은 없는 기억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미련 없이 삭제하였다. 딱히 에버노트가 아니어도 쓴다는 것에 대한 미련을 늘 안고 살고 있기에 비는 시간이 생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면 뭐라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도 늘 있는데, 정작 그 부담에 제대로 된 실속 있는(?) 글 자락 한 자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정말 한 일 년 사이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 유투브를 보고 인스타그램에 빠져 소중한 여유시간을 온통 보고 듣는 것에 허비했다. 마냥 허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늘 갈망하는 좀 더 생산적인 삶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생활이었다. 그나마 차곡차곡 뭐라도 쓰고 있는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하나하나 모은 반성문 뭉치들을 보니 이따위 우울한 단상이라도 이만큼 모은 게 대견할 지경이네.
근간에는 책 한 권 값으로 여러 책을 후루루룩 볼 수 있는 도서 구독 서비스로 밀리의 서재 앱을 깔고 전보다는 쬐꼼 더 자주 책을 읽고 듣고 있는데 그중 참 주제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내가 나이를 먹으니 젊은 작가들의 생각을 읽는 게 참 힘이 들 때가 왕왕 생기더라. 우울함을 극복하거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 노하우나 마음가짐을 나누는 내용을 읽다가 ‘나도 그땐 그랬어, 작가 양반 당신도 시간 지나 내 나이쯤 되면 당신 글을 읽고 손발이 오그라들 거야.’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 책 고를 때 작가 소개를 먼저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당최 작가들은 왜 자신의 출생 연도나 간단한 실제적인 소개를 밝히지 않는 것일까. 뭉뚱그려 작가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 미사여구로 자신을 소개한 한 문장이 전부인 작가 소개가 너무 많더라. 책을 통해 조언과 위로를 구하려는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어떤 배경의 인물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돌아보는데 더 큰 영향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꼰대가 되었기 때문이려나. 소설도 어느새 진부하고 올드한 전개와 표현을 그대로 안고 있는 것만 같아 몇 줄 읽다 덮게 되니 아 나도 참 건방지다.
현학적이면 현학적이라고, 가벼우면 가볍다고 표현이 대해 꼬투리나 잡는 것은 전시를 접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전시정보를 검색하다가 어떤 현대미술-특히나 설치나 미디어 아트에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라던가 “가상과 현존하는 어쩌고..”하는 류의 제목과 그에 상응하는 알쏭달쏭한 개요를 읽다 보면 미술 하는 사람들 글 쓰는 거 그렇기 싫어하고 어려워하면서 말은 이렇게도 어렵게 쓰는가 싶다. 불만 아닌 이런 불만을 해결할 방법은 ->직접 하는 거지 뭐. 또한 공감력을 더 끌어올리고 더 똑똑해 지거나 반대로 뇌를 순수하게 비워내어 처음 말 배우듯 하나씩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겠지.
나의 꼰대력은 아마 앞으로도 늘 최대치를 갱신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꾸 다른 상황과 내가 처한 상황을 비교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지적질하다가 깊은 괴리감에 빠져 반성문 쓰는 삶으로 다시 돌아오고 또 성에 차지 않는 지적 욕구를 채워줄 무엇인가를 찾고 실망하고 무한히 반복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마지막일 것 같지도 않지만 이번을 마지막 반성문으로 하고 나는 앞으로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보다 내 안의 것을 꺼내 보이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여 글을 쓰려고 한다. 이제는 습득하기보다 이미 포화된 내재 지식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2012,13,14 그 어느 해였나 나는 2004년 첫 사업자로 구멍가게 사장이 된 이후 10년을 기념하고 싶어 “숲-10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 비스므레하게 잘난 척으로 점철된 책을 완성해내고 싶었다. 구구절절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앞으로의 비전이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몇 꼭지 쓰다가 흐지부지 되었었지.
2022년 햇수로 19년 이제 사장질 20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거창하게 뭐 그 뭐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자영업에 대한 무용담도 아니고 허세를 버리고 담백하게, 첫사랑 이야기해주는 교생 선생님처럼, 하나 둘 메뉴에 대한 이야기나, 출장을 준비하며 느낀 점 등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반성문 몇 장 모으는데 수년이 걸린 것처럼 이 글쓰기가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일기와 함께 한 발 물러서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갈 앞으로의 글 자락들을 마중하고 싶으다.
그래 반성문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