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해외 미디어들이 2021-22년에 걸쳐 일명 '광란의 20년대'가 트렌드에 강하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갑자기 왠 20년대냐고? 1920년대의 상황을 조금만 살펴보면 지금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우선, 지금의 우리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키고 있는 코로나 19라는 팬데믹 상황.
놀랍게도 과거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전설의 '스페인독감'이 바로 100여년 전,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18년에 대유행을 시작해, 1920년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일제 강점기 조선에서도 '무오년 독감'으로 조선인의 절반 가까이가 감염되어 14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기침을 할 때 손수건이나 옷소매로 막는 관행이 이 당시 유래했다고 하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다양한 캠페인이 만들어졌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도록 하는 조치도 취했었다.
1918년 독감유행기간동안 마스크를 쓴 시민들 @history.com
전쟁과 전염병이 종식된 직후인 1920년대는 자유와 혁신으로 가득했던 시대였다.
특히, 기술의 발전은 생활모습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는데, 자동차를 비롯해 세탁기, 진공청소기와 같은 가전기기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어 일상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20년대였다. 1869년에 손잡이로 돌리는 형태로 등장했던 세탁기는 1920년대에 이르러 전동모터가 달린 세탁기로 대량 보급되었고, 1908년에 첫선을 보인 진공 청소기는 1920년대 중반 이미 미국 대도시 중산층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
왼쪽부터 포드의 model T, 세탁기 광고, 진공청소기
이렇게 세탁기부터 냉장고에 이르는 가전제품이 1920년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1930년대 완전히 대중화되었다.
이쯤에서 지금의 2021년을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후 급작스럽게 화두가 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T)이 떠오른다. 1920년대 그랬듯 디지털 전환도 이미 시작은 오래됐지만 10년 이내 우리의 생활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되지 않을까?
1920년대로 다시 돌아가서, 대중적으로 보급된 가전기기들은 여성들의 육체적인 노동을 혁신적으로 줄여주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여성들의 가정 생활만은 아니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백만의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고 급성장하는 소비경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사회적인 활동도 활발해졌다. 영국에서는 1918년, 미국에서는 1920년에 헌법으로 여성들의 투표 권리가 보장됐다. (물론 남부, 특히 흑인 여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까지는 이후로도 수십 년이 더 걸렸지만.)
여성들의 몸을 옥죄던 패션도 변화했다. 스커트가 무릎길이로 짧아졌고, 몸을 조이는 코르셋으로부터 탈피했으며, 짧은 머리가 인기를 끌었다. 재즈음악과 파티가 유행하면서 디테일과 장신구는 화려해졌지만 이전처럼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풍성하고 거추장스러운 패션은 사라졌다. 젊은 여성들은 술을 마시거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재즈음악을 즐기는 등 이전보다 성 정체성에서도 한층 자유로워졌다. 이런 대담하고 자유로운 여성들을 플래퍼(Flapper)라고 불렀고, 이들로부터 유행한 스타일이 20년대의 대표적인 패션 스타일인 플래퍼 룩이다. (2013년에 제작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플래퍼 룩의 진수를 볼 수 있다.) 플래퍼 룩은 저지소재와 심플한 컬러가 활용되면서 한층 더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룩으로 완성됐다. 이런 혁신적인 패션으로 시대를 앞서갔던 디자이너가 바로 그 유명한 코코 샤넬이다.
1,2. 영화 위대한 게츠비 3. 본인이 플래퍼이기도 했던 코코샤넬의 룩 4. 플래퍼를 묘사한 John Held Jr.의 일러스트레이트
한편, 관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 시대를 풍미했던 것은 재즈밴드였다. 기성세대는 재즈 음악이 저속하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부추긴다고 여기며 반대했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재즈는 자유의 대명사였고 뉴욕의 Savoy Club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플래퍼와 재즈의 시대인 1920년대(1920년~1933년)는 놀랍게도 금주령이 내려져 있었다. 아주 정확히는 1919년에 미국 수정헌법 18조에서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고 1920년이 되면서 미국의 모든 술집이 폐쇄되었다. 하지만 이제 막 전쟁과 전염병이 종식되고 혁신이 가득하던 시대에 사람들의 열망까지 단속할 수는 없었다. 금주령을 피해 술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비밀 주류 클럽인 일명 '스피크이지(Speakeasy)'가 크게 성행했고, 그 비밀스러움과 인기만큼 일부는 조직범죄그룹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스피크이지가 미국 문화의 다양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금주령으로 인해 많은 뉴욕의 스피크이지에 부자와 평범한 사람들이 한데 모였고, 다양한 인종의 고객들 때문에 스픽이지를 “흑인과 황갈색 클럽(Black and tan club)”이라고 불렀을만큼, 당시 인종차별이 문화적 규범이었던 미국에 전례가 없던 다양성의 공간이었고 오래된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했다. 플래퍼 여성들도 스피크이지 클럽의 주요 고객들로서 다양성이 넘쳐나는 광란의 20년대를 즐겼다.
1,2. 1920년대 성행했던 비밀 클럽(Speakeasy), 3.금주법 기간동안 운영되었던 애리조나 빌트모어 호텔의 미스테리룸
그런데 사실 금주령의 이면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로 몰려드는 이민자들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1924년에는 국적법(National Origins Act of 1924)이 통과되어 동유럽인과 아시아인 등을 배제하는 이민 할당량이 설정되기도 했다. 산업화로 인해 유색인종의 이주가 늘면서 급격한 사회적 장벽의 붕괴를 경계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미국 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백인 비밀단체, 일명 KKK(Ku Klux Klan)의 회원이 급증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를 막으려는 이 법령을 피해 생겨난 음성적인 불법 주점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싹튼 것을 보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자유와 변혁의 흐름을 '금지'로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을 역사가 꾸준히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최근 코로나가 델타, 람다 등으로 변이를 양산하면서 재확산 우려를 낳고 있는 가운데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7월 코로나19 확진자 집계와 감염자 추적 같은 방역조치를 중단하고 여행과 모임 제한을 풀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절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하면서, 종식을 기약없이 기다리기보다는 독감처럼 조심하고 공존하면서 일상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실험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 이전처럼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자유도가 어느정도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그 시기가 22년 어디쯤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팬데믹 이후 최대의 호황기를 누렸던 100년 전처럼 2020년대도 새로운 혁신과 문화가 꽃피우게 될까? 그렇다면 그 발현점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앞으로의 스피크이지는 무엇이 될 것이며, 새로운 플래퍼는 누가 될까? 지금으로부터의 3-5년을 상상해 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