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반, 외국인 반. 다국적 기숙사 생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by 현쥴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 각방을 쓰지 않는 이상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그리고 국적 불문한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곳은 커튼 하나 걸쳐진 매트리스 한 칸 정도의 공간뿐이다. 그 외에는 모두 오픈되어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었던 나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무슨 생활을 해야 하는지 나의 움직임에 고장이 온 듯 어색함이 느껴졌다.


집단생활은 언제나 어렵다. 남과 싸우느니 내가 불편을 감수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더 힘이 들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배려를 상대방이 알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한 번씩 뒤집어엎고 싶은 분노가 차오르기도 한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표출보다는 쌓아두는 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 유닛에 들어온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정상인 친구들이 들어왔다. 다시 말하면 정상인 친구들로 갈아 엎어졌다. 제일 먼저 생활을 하고 있었던 사람, 그다음으로 들어온 나, 그리고 이틀 뒤 들어온 내 침대 윗자리 친구, 이렇게 셋 을 제외하고 남은 다섯 자리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친구들이 지나쳐 갔다.


눈길 조차 주지 않았던 호주 친구, 꽤나 상냥했지만 매일 다른 방으로 사라지는 영국 친구, 한국인이 많아 싫다는 한국 친구들 등등 여럿 아이들이 들어왔다가 자신들만의 불만을 표출하고 다른 방으로 옮겼다. 입소 소식을 들었지만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진 친구도 있었다. 우선 우리의 유닛의 가장 큰 단점은 '한국인 3명'이라는 것이었던 것 같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인사팀의 배려라고 생각이 들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인종차별인 듯싶기도 했다. 방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까지 와서 한국 사람들과 지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을 방을 옮길 생각을 하며 다른 방을 탐색하러 다녔지만 결국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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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 우리 유닛

다른 유닛은 항상 시끌벅적하고 지저분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유닛은 비교적 조용했고 깨끗했다. 한국, 캐나다, 독일, 아일랜드, 홍콩. 우리의 유닛은 총 5개의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모였다. 한국인이 반을 차지했지만 다행히도 다른 국적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 잘 지내주었다. 잘 지내주었다는 말은 우리가 방안에 밥솥을 들여놓고 라면을 끓여먹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성의 출입이 자유로운 다른 유닛과 달리 암묵적으로 우리 유닛에는 남자의 출입이 금지로 여겨졌다. 스탭 하우징 유닛 청결 검사 날에는 언제나 우리 유닛은 1등을 했다. (1등 유닛에게는 상점이 주어진다.) 그것을 질투한 사람들 사이에서 'So Asian' 같은 방이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유닛 친구들은 우리가 Asian이라는 것에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집을 벗어나 살다 보면 생필품에 대한 지출이 꽤나 아깝다고 느껴진다. 휴지, 치약, 샴푸, 세제 등 분명 엊그제 사다둔 것 같았던 것들이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나를 다시 마트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든다. 다행히도 우리 유닛에는 나를 포함해서 하우스키퍼만 총 네 명이 존재했다. 우리는 퇴근할 때면 항상 비닐봉지 한가득 무언가 가득 채워 들어온다. 객실 화장실 휴지는 반으로 줄어들면 다 쓰지 않아도 새것으로 교체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반으로 줄어든 휴지는 모두 우리 유닛의 화장실로 채워진다. 가끔 손님이 놓고 간 손 세정제, 애매하게 쓴 에머니티 들은 우리 들것으로 돌아온다. 하우스 키퍼가 없는 유닛은 개인적으로 구비해야 하고 또 휴지로 인한 트러블 이슈가 간간히 일어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유닛은 생필품만큼은 풍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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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휴지 부자

하우스 키퍼들이 생필품을 채워 놓는 반면 베이킹 파트에서 파티시에로 일을 하는 캐나다 친구,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을 하는 아일랜드 친구, 룸서비스 파트에서 일을 하는 한국 친구는 가끔 공용공간 선반에 맛있는 쿠키와 빵 등 각종 다과와 음식들을 'help yourself'라는 쪽지와 함께 놓는다. 우리는 왔다 갔다 하며 하나씩 집어먹는다. 가끔 초코빵이 먹고 싶다는 말에 아일랜드 친구가 초코빵을 한가득 가져와 선반 위에 올려놓았을 때는 그 친구가 휴지를 너무 헤프게 써서 부지런히 휴지를 챙겨 와야 한다는 귀찮음을 잠시 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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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랑 호텔에서 나눠준 쿠키 만들기 세트로 쿠키 만들기와 유럽에서 겨울에 만들어 먹는다는 뱅쇼를 만들었다.


한국의 뷰티 시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열심히 일을 해주는 한국 아이돌들과 배우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뷰티도 꽤나 인기가 있어진 것인가. 잠시 머물다 간 영국 친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Korean 3.3.3 sikincare 비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아일랜드 친구는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얼굴에 바르는 스킨케어 제품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일랜드 친구가 캐나다를 떠나는 날 내가 가지고 있던 팩을 몇 개 선물해주었다. 너무 좋아했고 아일랜드로 돌아가 팩을 하는 모습을 인증숏으로 보내왔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한국 부심이 생긴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화목한 유닛처럼 보였겠지만 당연히 문제도 존재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서로 조심하려 했다.


딱 한 명 빼고.


유난히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탓에 처음에는 우리 모두 다 맞춰주려 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자 여기저기서 불평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고 각기 다른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방은 언제나 어수선했다. 이곳에는 유럽과 호주에서 워홀로 떠나온 20대 초반 아이들로 가득했다. 혈기왕성하고 자유분방한 아이들은 흥을 주체하지 못한 체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유닛에서도 가끔 그 무리들에 끼어 놀다 들어온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자주는 아니었고 종종이었지만 그 종종도 탐탁해하지 않았다.


또한, 문 닫는 소리, 문틈 사이로 비치는 불빛, 이른 아침의 샤워, 늦은 시간의 귀가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불만을 삼는 일이 많아지자 다른 친구들도 그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온갖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반면 본인의 행동이 더하면 더 했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는 듯했다. 다른 외국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대상이 나보다 나이 많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신경 쓰였고 어려웠다. 살아온 환경과 아주 다른 외국 친구들과의 생활이 더 어려웠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같은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며 서로의 문화에 대해 할 수 있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주장하지 않았고 배려하려 했다. 하지만 같은 한국인으로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바뀌는 부분이 없자 한국인이 아닌 친구들은 우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큰 싸움은 없었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으면 무슨 일이 있었을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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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객실에 쓰이고 버려진 것들은 우리의 파티 용품으로 재활용 된다.


나는 능숙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은 외국 친구들과 대화할 때 조금 더 편한 느낌을 가진다. 가끔은 친한 친구보다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속마음을 더욱 편히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느낌과 같다. 서툴고 느린 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같이 공감해주고 충고를 해주는 고마운 외국인 룸메들이었다. 그리고 몇몇은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한국인 룸메들이 있어서 한식을 먹을 수 있었고 외국인 룸메들이 있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인 반, 외국인 반. 나에게는 딱 알맞은 비율의 국적이었다. 기대보다는 큰 걱정을 가지고 들어온 이 방에서 나는 이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때가 그립고 그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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