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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숙사 생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by 현쥴리

어릴 적 부모님에게 훈계를 듣다가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가 나오면 죽어도 나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는 오빠와는 달리 나는 정말로 짐을 싸러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조그마한 아이가 도대체 어딜 가겠다고 저리 당당하게 나오는지 너무 웃겼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오빠는 집을 떠나 자취생활을 했고 나는 지독하게도 집안에 붙어 있었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오빠와는 달리 나는 서른이 다되어 가면서도 12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신데렐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종종 집 밖을 벗어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길어 봤자 한 달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나는 처음으로 아주 오랫동안 집이 아닌 곳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빅토리아와 밴쿠버를 거쳐 휘슬러에 들어가기 전까지 게스트하우스와 에어비앤비를 전전긍긍했다. 일을 먼저 구해야 할지 방을 먼저 구해야 할지 방황하는 사이에 일이 먼저 구해졌다. 방보다 일이 먼저 선택되었다. 휘슬러에서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에 나의 다음 임무는 휘슬러에서 방을 찾아야 했다. 주위에 둘러싸인 산들이 모두 스키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겨울의 휘슬러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과 워홀러들이 찾아온다. 원래부터 물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성수기에는 그 가격은 더 치솟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면 만실이 된다. 방을 구하는 시기를 놓치면 빌리지를 벗어나 아주 먼 곳까지 가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을 겪어야 한다. 지역을 옮겨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또 무언가 찾아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스탭 하우징 들어올 거야?"


다행히도 호텔에는 직원들을 위한 숙소를 보유하고 있었다. 단체생활 특히 누군가 방을 같이 써야 한다는 것을 심하게 증오하는 나는 단번에 "물론이지"로 답했다. 가끔 혼자 하는 여행에서도 돈을 아낀다며 찾아간 도미토리에서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서는 다음에는 꼭 호텔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다. 그런데 내 발 스스로 몇 달 동안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곳으로 들어갔다.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가득 안고서 스탭 하우징으로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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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쪽 침대 아래칸을 배정 받았다. 다행히 커텐이 존재했었다.

스탭 하우징은 호텔 내부와 외부로 나뉘어 있고, 내부에서도 west와 east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호텔 내부 west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손님들이 머물고 있는 같은 호텔 건물 맨 아래층으로 바깥이 빼꼼히 보이는 반지하 비슷끄무리한 장소에 있다. 대략 200명의 아이들이 west에 머물게 된다고 했다. 25개의 유닛이 있고 한 유닛에는 8명이 배정받는다. 하나의 유닛 안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있고 방이 2개가 있다. 총 8명이 샤워실과 화장실을 나누어 쓰고 한 방에 4명씩 지낸다는 뜻이다. 공용 주방과 공용세탁실은 단 한 곳이 존재했다. 앞으로 들어올 인원수들에 비해서 모든 공간은 협소해 보였다. 기숙사로 기어들어온 선택이 후회로 바뀌어 버릴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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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의 공용공간. 조금만 관리를 하지 않으면 금방 지저분해 진다. 나름 깨끗한 상태.

스탭 하우징 첫인상은 끔찍 그 이상이었다.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 공간 곳곳은 조용했고 아직 자리가 비어져 있는 방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방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빌리지에 있는 마트로 달려 나갔다. 음식보다도 청소도구 용품을 먼저 카트에 담았다. 공용공간은 그렇다 쳐도 내가 앞으로 지낼 공간만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싶었다. 옷장과 수납공간 그리고 침대까지 모두 정리하는데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평소 비위가 약한 탓에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금니를 꽉 물고 청소에 집중을 했다.


유닛은 조용했다. 옆방은 비어있었고 배정받은 방에도 아무도 없었지만 침대 한 곳에 이미 짐들이 가득했고 생활을 하고 있는 흔적들로 가득했다. 침대 앞에는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너무나도 한국 이름이었다. 외국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한국식 이름이 영어로 적혀있는 종이를 보고는 설렘이 사라졌다. 어딜 가나 한국인이 있다고 하지만 '설마 여기에도?'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미 직원용 엘리베이터에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몇 명 보기도 했다. 한국인이 있으므로 인해서 안도감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움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 같이 지낼 사람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어떤 인종이 되든 잘 지내보기로 혼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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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의 공용 주방이자 모든 아이들의 만남의 광장. 제일 시끌벅적하고 절대로 깨끗한 날이 없다. 사진은 청소당번날 청소 후 인증용 사진.

청소를 끝마치고 3주 동안 제대로 풀어보지도 못했던 캐리어를 모두 비워내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틀 뒤 또 다른 한국 친구가 내 침대 위 자리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나면서 비어져 있던 유닛들은 점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스탭 하우징은 점점 북적북적 해졌고 이제 진짜 본격적인 나의 첫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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