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스키 패스를 공짜로 얻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적응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들이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출퇴근하는 낯선 즐거움이 있었지만 근무시간은 늘 고통이 함께 했다. 살면서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특히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선 언어로 일을 할 때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은 자주 찾아온다. 그런 상황들을 즐기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만 그저 체념하기로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어리바리하는 순간들, 알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바보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모두 받아 드리기로 했다.
“정신 차려, 쫄지 말라고!”
모르면 물어보고 실수하면 사과했다. 은근한 무시에도 기죽지 않기로 했다. 쉽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상황들에 익숙해졌는지 다행히도 모든 상황들에 대한 감정이 무뎌졌다. 적응이 되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스케줄이 ‘On Call’(당일 연락이 오면 출근)로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출근의 여부를 당일 아침에 알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짜증 나는 일이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아침 일찍 눈을 떠야 하는 일에 짜증이 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을 하고 싶은 날에는 불려 가지 않았고, 오늘만큼은 불러주지 않았으면 하는 날에는 불려 나갔다. 가끔 출근 시간이 늦은 시간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직원들보다 1~2시간 늦게 출근할 때는 여유 있게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남들보다 적은 스케줄을 받게 되면 레스토랑에서의 나의 위치를 생각하게 된다. 낮은 자존감이 더 낮아지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어느새 적응이 되었다 싶었을 때, 나의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마음 졸이던 오스트리아 친구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나는 다른 동료 직원들보다 먼저 나와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고 마감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매니저가 나를 부려먹을 만한 노동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억울함 보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레스토랑에서 나의 포지션은 ‘Food Runner’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으로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손님에게 가져다주는 일이다. 직접적인 주문을 받지는 않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테이블 세팅은 기본이고 접시, 포크, 나이프, 유리잔, 케첩, 소금, 후츠 등 음식 주문 외 부수적인 주문들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빈 접시가 보이면 얼른 치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수행하다 보면 수많은 손님들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손님들은 항상 내 이름을 불러주며 고맙다고 한다.
“땡큐, 쥴리”
손님에게 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흠칫 놀랬다. 마치 내 이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불러준다. 나의 앞치마에 달려있는 명찰을 보고 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동안 어딜 가도 직원의 명찰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굳이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앞치마에 덜렁 달려있는 이름을 보고 환한 미소로 불러준다. 단순히 이름 하나 불러주었을 뿐인데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서비스직으로서 서비스를 주는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받는 사람의 작은 행동이 나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하우스키핑으로 일을 하고 있는 호텔에서도 손님이 머물고 있는 객실에 들어갈 때는 손님 이름을 꼭 불러주라는 지침이 있었지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들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는 어색함에 그 지침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지키지 않는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와 이름을 직접 불러주었을 때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호텔에서도 이름을 부르려고 노력했다.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손님들이 던진 농담에 대한 반응이었다.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서양인들은 접시를 내려놓는 찰나의 순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 혹은 음식 이야기들 등등. 그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농담이었다. 손님들은 넌지시 농담을 던질 때가 많다. 그저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영어 구사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도무지 그 농담들을 알아들 수 없었다. 농담들의 맥락을 파악하여 추론하기에는 그 어떠한 힌트도 없었다. 아 딱 한번 제대로 알아들었다.
“쥴리! 너는 어디서 왔어?”
“나 한국에서 왔어.”
“나 서울 가봤어!”
“아 정말? 나 서울에서 왔어!”
“오~ 너 서울(Seoul)에서 왔으면 소울(Soul)이 많겠다!”
이런 개그에 절대 웃어주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웃었다. 가끔 더 오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손님들과 나의 대답이 필요한 농담이었을 경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저 따라 웃거나 바쁜 척하며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수많은 영어 강의 중에 ‘농담 알아듣기’라는 수업은 왜 없을까.
나름 휘슬러에서 몇 안 되는 고급 레스토랑 중 하나인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비싼 음식들을 쉽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끔 주문이 잘못 들어오거나 주방 분위기에 따라 그날의 재료 양에 따라 여유 있게 조리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요리사들은 우리들이 들어가는 주방 입구 쪽에 음식들을 올려놓는다. 서버들과 푸드 러너들은 주방과 플로워를 지나다니면서 하나씩 집어 먹게 된다. 스테이크나 햄버거가 올려져 있을 때는 하나같이 다들 주방에 몰려들어 입에 넣기 바쁘다. 급하게 음식을 들고나가야 하는 순간에는 얼른 입에 쑤셔 넣고 나가기도 한다. 마감을 하면서 남은 재료들 혹은 남은 음식들은 먼저 챙겨가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주로 빵이 많이 남아 항상 빵을 가져왔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밥, 카레를 싸오기도 한다.
어느 날은 셰프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연어를 보여주었다. 해산물을 찾기 어려운 휘슬러에서 귀하디 귀한 연어였다.
“쥴리, 너 요리할 줄 알아?”
연어 반마리가 남았다며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반마리를 통째로 들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 주방에서 (다른 외국 친구들의 신기한 눈초리들 속에서) 회를 뜨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해물탕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마감시간이 되면 주방을 기웃거렸고 퇴근할 때 나의 가방은 두둑했다.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은 먹거리로 잔뜩 채워져 있는 가방을 메고 곤돌라를 타고 산을 내려올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