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인사팀의 뛰어난 업무 수행 덕분에 출근 메일을 받고서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직원카드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스키장에서 프리패스 격인 직원카드를 손에 받아 들고서야 이제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구나의 기쁨 (사실은 보드를 탈 수 있다는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출근 준비물 : 직원카드, 검정 바지, 검정 신발, 흰 와이셔츠, 넥타이
따로 유니폼은 따로 제공해주지는 않았지만 격식에 맞는 복장이 필요했다. 검정 바지와 검정 신발은 다행히 밴쿠버에 잠시 머무를 때 사두었던 것이 있었다. 그리고 흰 와이셔츠는 룸메이트 동생에게 빌렸다. 문제는 넥타이. 캐주얼 패션 브랜드보다는 아웃도어 브랜드 스토어들이 즐비한 휘슬러에서 과연 넥타이를 구할 수 있을까. 아무리 빌리지를 돌아봐도 넥타이를 팔 것 같이 생긴 옷가게가 존재하지 않았다. 급하게 호텔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스키복을 입고 다니는 이곳에서 누가 넥타이를 하고 다닌단 말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 직원 의상실에 침투해 다른 부서의 유니폼을 살펴보았지만 호텔에서는 일반 넥타이가 아닌 어여쁜 나비넥타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넥타이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던 때에 같이 넥타이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봐 주던 룸메 중 한 명이 어디선가 주워온 에코백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손잡이를 목에 감고 몸통을 잘라내는 거야. 그리고 다림질을 해서 모양을 잡은 다음 바느질을 하는 거지!”
비좁은 기숙사 방 한가운데에 그렇게 룸메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넥타이 만들기에 돌입했다.
룸메 1 - 자르기
룸메 2 - 다림질
룸메 3 - 바느질
그 어떤 조별과제 보다 빠르고 강한 조직력을 보였다. 그렇게 에코백으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넥타이를 갖게 되었다.
언제나 ‘처음’ 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함께 한다. ‘잘하지는 못해도 못난 짓만은 하지 말자’ 다짐을 하고 첫 출근길을 나섰다. 스키장 정상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곤돌라를 타야만 했다. 호텔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베이스캠프가 위치해 있지만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조금 일찍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다. 보통 곤돌라 안에서 15~20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30분이 걸리기도 한다. 가끔 거센 눈보라에 곤돌라가 끊어져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날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극적인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주 심한 날에는 곤돌라 운행이 금지가 되어 출근을 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일당이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스키와 보드를 들고 곤돌라 앞에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나는 노동이라는 타당한 이유로 그 모든 줄을 제치고 제일 먼저 곤돌라를 탈 수 있었다. 가끔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곤돌라에서 마주칠 때도 있었다. (마치 버스 안에서 마주치듯) 그들은 휴일을 즐기기 위해서 산 위로 향하지만 나는 휴일에 일을 하러 산 위로 향하고 있었다. 스키 패스를 공짜로 얻었다며 자랑을 했었지만 그럴 때면 내가 진 느낌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적응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언제나 처음은 서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적응을 하지 못했다. 매일 일을 해도 겨우 적응할 판에 나는 겨우 이틀만 나가는 파트타임에 불과했다. 첫날부터 나의 사수가 되어준 오스트리아 친구가 언제나 함께 했지만 어리바리한 모습이 계속되자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이곳에서는 한국인도 동양인도 없었다.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등등 수많은 나라 중에 어딜 가도 있다는 한국인이 없다니 신기했다. (나중에 대만 친구가 새로 들어왔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푸드 러너이었지만 일을 시작한 첫 주에는 음식을 가지고 플로워에 나가지 못했다. 각 테이블의 번호를 외우고 테이블의 각 좌석의 번호도 외워야 했다. 음식 이름을 외우고 혹시 모를 메뉴 설명을 위해서 메뉴 이름과 재료 그리고 간단한 조리방법을 알고 있어야 했다. 음식을 양 손에 들고 주방을 벗어난 순간 나의 머리는 백지가 되어버린다. 음식을 고대로 들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간 적도 여러 번이다. “괜찮아, 나도 가끔 그래”라는 동료들의 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가끔이 아니었으니까.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며 내가 방황하거나 넋을 잃지 않게 도움을 주었지만 점심시간 피크타임에는 각자 일을 하기 바빠 나는 뒤로 물러나게 된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병을 들고 빈 잔을 채우러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물이 아닌 탄산수를 마시는 손님 잔에 물을 부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여기서는 물 대신 탄산수를 마시는 손님이 많았다. 같은 투명색인 탄산수와 물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었다. 각 테이블의 담당 서버들은 모든 일에 능숙했다. 덕분에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물 하나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무사히 하루가 지났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아직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축 쳐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호텔일은 육체적으로 힘들다면 레스토랑에서는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꼈다. 자신감이 생기기는커녕 주방에 숨어드는 시간이 길어졌다. 몇백 개의 식기들과 와인잔들을 폴리싱을 하고 냅킨을 접었다.
“와 이거 냅킨 누가 접은 거야!?”
냅킨을 정말 잘 접는다는 칭찬까지 받는 지경까지 왔다. 눈감고도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주방에 있다 보니 요리사들과 마주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심지어 재료 손질까지 도와주는 지경까지 되었다.
‘쥴리! 넌 주방 보조가 아니라 푸드 러너야. 이런 거 안 해도 괜찮아’
어느 날 매니저가 나타났다. 맞다. 나는 주방일을 하는 포지션이 아니었다. 어느새 주방에 있는 시간을 더 즐기는 나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음식이 나오자 매니저는 나를 불렀다. 그릇을 집어 들고 몇 번 테이블에 몇 번 자리이며 이 음식의 이름은 무엇이야 라며 유치원생에게 하나하나 알려주듯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쥴리! 고!”라고 외쳐주었다.
임무수행을 하고 난 뒤 매니저는 너무 잘했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뿌듯함보다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그 뒤로 나는 음식이 나온 대로 접시를 들고 무작정 플로워로 나갔다. 음식 설명을 부탁하는 손님에게는 눈에 보이는 재료들을 읊어주었다. 테이블에 먼저 다가가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기도 했다. 잘못된 테이블로 가기도 하고 다른 자리에 음식을 뒤바꿔 놓기도 했지만 실수에 당황하지 않기로 했다. 여러 가지 예상치 못했던 상황과 우발적인 사고들이 발생해도 유연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잘하지는 못해도 못난 짓만은 하지 말자’라고 했던 다짐과 다르게 나는 처음부터 잘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실수가 두려웠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일 조차도 무서워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늘 다짐은 쉽지만 실행이 어렵다. 다짐이고 뭐고 그냥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가짐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자 레스토랑의 일이 재미있어지고 즐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호텔 스케줄을 줄이고 레스토랑 스케줄을 하루 더 늘렸다. 어느샌가 오픈과 마감을 맡으며 매니저와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를 부려먹을 수 있을 만큼의 노동력을 보여주고 있구나.
“쥴리, 난 너랑 같은 날에 일하는 날이 좋아. 너랑 같이 일하는 게 좋거든”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힘들어했던 나의 마음을 녹여준 어느 날 넌지시 건네준 동료의 말이었다.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