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골 살이
세상을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할 때가 있다. 개인을 위해서든 집단을 위해서든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혀야하는 때도 있다. 그 실행자가 누구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너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제 3자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일은 아마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일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게 했더라면......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우리 시골집 닭 이야기이다. 시골집에 있는 닭 말이다. 다른 집의 닭 이야기는 절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작년 가을부터 시골 집에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때 온 닭은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세 마리였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예뻤던 하얀 암탉 한 마리는 돌연사 했다. 모든 돌연사가 그렇듯이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새집으로 이사 옴으로 인한 새집증후군이었거나 하얀 닭의 아름다움을 시기한 두 암탉이 공모해 벌인 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해보지만 그냥 쓰잘데 없는 의심일 뿐이다.
어쨌든 시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닭의 세계에도 흘러갔고, 살아남은 닭 중 암탉(이하-어미 닭) 한 마리가 9마리의 병아리를 3월 23일 부화하였다. 이때 태어난 병아리들은 이제는 어엿한 사춘기 병아리들이 되었다. 높은 나뭇가지를 겁 없이 올라가는 최근 행동을 보면 아마도 인간으로는 중2 정도의나이가 된 병아리가 된 듯하다. 1세대 닭을 합하여, 12마리가 된 닭들은 그동안의 하루 먹이 양의 두 배 이상을 먹게 되었다. 4월 초까지만 해도 닭들을 밭에 내 놓고, 방생할 수 있어서 닭들은 인스턴트 모이가 아닌 건강에 좋은 자연산 곤충 및 풀을 돌아다니면서 먹었다. 하지만 이젠 밭에 옥수수 등 여러 작물들을 파종하였기에 밖에 내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의 고민은 커가는 병아리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닭장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보통 병아리는 부화한 지 45일 정도 지나면 약병아리라고 하여 삼계탕용이나 백숙용으로 쓰일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연)계(軟鷄)이다. 결국 지금 기르고 있는 9마리 병아리들도 곧 삼계탕이나 백숙 또는 치킨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시간에 의해 자동적으로 부여 받게 된다. 그리고 이말은 기존 닭을 포함한 12마리의 닭들은 관상용에서 식용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곧개와 닭들이 최고로 싫어한다는 복날이 있는 여름이다.
설상가상인지 금상첨화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모 닭(어미 닭 외의 또 다른 암탉)도 부화를 시작했다. 보통 부화 기간이 21일 정도이니, 아마도 2주 후면 또 병아리가 나올 것이다. 사실 갓 부화된병아리를 보면 생명에 위대함에 놀랍고, 마치 군대에서 부대기를 따라 행군하는 훈련병처럼 병아리들이 어미 닭의 뒤꽁무니를 종종 걸음으로 힘겹게 따라 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어미닭은 사람들이 닭장이나 병아리들 주위로 접근하면, 내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소리로 새끼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새로 먹을 것을 발견하면 발로 헤저어 어린 병아리들에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수 없는 모이들을 분리하여 가르친다. 이러한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 나쁜 인간들에게 닭대가리라고 하는 것은 호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는 잠시뿐, 닭장 밖에서 먹이를 먹으며놀다가 닭장으로 들어갈 때 열린 닭장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서 퍼덕되는 것을 보면"저런 닭대가리" 라는 말을 자동으로 내뱉게 된다.
하여튼 이제 곧 시골 집 닭장에는 닭이 미어터지는 순간이 오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닭의수를 조절 하는 것이 나의 당면한 문제가 되었다.
닭의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닭을 부화하지 않도록 유정란을 바로 바로 소비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부화한 닭을 판매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닭을 필요할 때 잡아먹는 것이다.
이미 첫 번째 방법은 시기적으로 지나 간 것이고, 이제 두 번째이나 세 번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닭을 파는 방법은 가격이 얼마가 되었든 닭의 수를 조절하는 데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부수익도 얻을 수 있고 말이다. 그러나 조금은 허탈하다. 더구나 판매용으로 전문적으로 기른 것도 아니므로 주위 사람들에게 팔 수 밖에 없고, 누가 산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닭을 들고 장터에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터넷 직거래를 해서 산 닭을 택배로 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세 번째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최선이고, 최고의 방법이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느 날 시골집에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왔다,닭장에는 닭도 아주 많다
그런데 내가"'멀리서 왔으니 닭 한 마리 잡아서 백숙 해줄까?"라고 얘기한다. 과연 이 말에"싫어요, 난 기르는 닭은 안 먹어요!"라고 말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마도 99% 이상은 "감사 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고스톱 치면서 기다리겠다고 화투장을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농촌에서 닭을 기르는 이유 여러 가지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건강한 유정란과 닭고기를 얻기위함이다. 특히 자연에서 기른 닭의 요리는 도시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매우 만족할만한 선물이다.시골 사람들이 농촌에서 닭을 기르는 것은 도시인들이 마트에서 사 온 털 빠진 닭을 내장고에 보관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된다. 자연산(?) 닭을 냉장고가 아닌 닭장에 생물 상태로 보관하는것만 다를 뿐이다. 그러기에 결론적으로 나와 같은 경우, 닭의 수를 조절하거나 닭장의 닭을 소비하는 방법 중 제일은 세 번째 가끔씩 닭을 잡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최선의 방법, 최고의 방법 세 번째를 선택하면서 시작된다.
과연 내가 기르던 닭을 잡아 먹을 수 있냐?라는 원론적인 문제는 고민 꺼리가 되지 못한다. 결정적인 문제는 누가 닭을 잡을 것인가?(여기서 잡다는 죽임을 의미한다.)
만일, 누군가가 닭을 잡아 준다면, 막걸리 한 사발을 '캬' 소리 나게 먹으면서, '역시 닭은 시골에서 기른 닭이 최고야!' 또는 '좀 질기긴 하지만 역시 토종닭이야!'라고 쟁반 위에 놓여 진 닭 위에 침이 튀기든 말든 설레발을 치면서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닭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몇 년 전쯤 처음 시골서 닭을 키우던 처가 어른들은 닭을 잡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 옆집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수고비로 담배 한 보루를 사다드리곤 했었다. 만일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닭을 잡는다면 담배 한 보루에 4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마트에서 닭 5마리 정도는 살 수 있는 금액으로 닭을 잡는 것이다. 즉 이 방법은 내 닭을 먹으면서, 닭 값을 주고 잡아먹는 것인 셈이다. 그것도 한 번에 4 ~ 5마리 정도는 잡아야 수지 타산이 맞는다.(엄밀히 말하면 손해다.)
화살표 위치에 병아리가 있어요. 안 보이는 분은 아래 사진을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닭을 파는 식당에 닭을 가져다주고 일대일로 교환하는 것이다. 프라이드치킨이 먹고 싶을 땐 BBQ에, 백숙이 먹고 싶을 땐 백숙 집에, 삼계탕이 먹고 싶을 땐 삼계탕 집에. 뭐,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실제로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닭 그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난 유정란 먹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다. 우리는 마트에서 계란을 사다 먹는다. 그것은 대부분 식용용 무정란이다. 그러니까 그냥 계란빵이나 다름이 없다. 계란빵에서 닭이 나올 이유는 없다. 그런데 유정란은 느낌이 다른다.
닭장에서 꺼내오는 계란은 대부분 유정란이다. 시골에서 닭이 낳았기 때문에 유정란은 아니고, 수탉이 같이 있고, 교미를 한 후에 얻은 알이기 때문에 수정된 유정란이다. 우리는 그 유정란을 가져다 먹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알을 꺼내어 바로 먹지 못하고, 며칠 지난 후에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쁜 일정 때문에도 그렇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날짜가 며칠 지난 유정란을 먹을 때면, 마치 껌껌한 지하실에 무언가 찾으려 내려가서, 혹시 고양이나 쥐가 튀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등 스위치를 켜듯이 계란을 깨곤 한다. 계란 후라이를 하려고 알을 깼을 때 병아리의 형상이 된 무언가가 나를 깜짝 놀라키며,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온에서는 알이 부화할 수 있는 온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래도 마트에서 산 유정란과는 다르게 우리 닭이 낳은 알은 항상 찜찜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어미 닭
품에 숨어 있는 병아리
더구나 요즘은 닭을 죽인다는 뜻의 잡는 행위가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는 것도 힘들다. 요즘 닭과 눈을 자주 마주친다. 닭의 모이를 주러가다가도 보고, 닭장을 청소하러가다가도 보고, 밖에 나온 닭을 몰아서 닭장에 넣으려다가도 보고, 닭과 눈을 정면으로 마주 치는 것은 별 느낌이 없다. 그런데 닭의 뒤쪽에서 내가 걸어가고 있는데, 닭의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면, 나는 가끔 닭이 무서워진다. 분명 닭의 머리(대가리)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닭의 튀어 나온 갈색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생선 좌판에 죽어 있는 가지미가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닭이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이다. 항상 인간이나 사람이나 째려보는 눈은 무섭다.
시골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닭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닭 잡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거기에는 함께 연관 검색어로 '닭 잡는 기계'라고 나온다.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아 반갑다. 하지만 아직 닭 잡는 기계는 찾을 수 없었다. 털 뽑는 기계는 있다.
며칠 전 처가 어른들과 진진하게 닭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저 닭들을 나중엔 잡아먹기는 해야 하는데, 어쩌지요? 라는 나의 물음에 두 분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씨익 웃을 뿐. 그 웃음의 의미는 아마도 그 일은 내 역할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결론은 이제 곧 누군가 닭을 잡아야한다. 그래야만 닭의 숫자만를 조절할 수 있다. 닭을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방법들은 호러 영화만큼 잔인할 수 있어서, 나중에 별도로 19금 글로 써야 할 듯하다.
다만,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 닭의 목을 비트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곧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한다.
요즘 농촌에는 귀농, 귀촌 인구가 많아졌다. 보통 시골 마을의 1/3 정도가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는 닭을 기르고 있으며,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제 곧 새로운 창조산업이 생길 것이다.
"닭 모가지 비틀어 드립니다.
한 마리에 5천원!! 두 마리 하시면 한 마리 서비스 입니다. 3마리에 단돈 만 원!!"
어쨌거나 누군가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정말로 오는지, 내가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가 우리 집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주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잔인해 보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