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골 살이
살포시 비쳐 오는 아침 햇살, 재잘재잘 들려 오는 나뭇가지 위의 새 소리, 저 건넛집에서 아련히 들려 오는 개 짖는 소리, 나지막이 들리는 소 울음소리, 그리고 지나가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가지 모습까지. 24시간 도시의 소음과 현란한 조명 빛에 지친 우리에게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하루는 너무 많이 쓰여 이제는 식상해져 버린 힐링이라는 단어가 차고 넘칠 정도로 우리에게 평안함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귀농을 꿈꾸고, 귀촌을 꿈꾼다. 나도 그랬다.
이보다 더 맑을 수는 없는 신선한 공기와 마실 때마다 1년은 젊어질 것 같은 맑은 물, 그리고 산과 숲이 있는 정선 가리왕산 밑에 집을 하나 장만했다. 이런저런 작은 고민이 있었지만 주위 이웃도 좋고, 읍내나 농장과도 멀지 않고, 바로 옆에는 가리왕산 휴양림과 계곡이 있어 결국 이 집을 얻었다.
집 주위에는 나 외에 3가구가 더 산다. 요약하면 앞집이 있고, 옆집이 있고, 뒷집이 있다. 그리고 시골의 대부분 집이 그러듯이 모든 집이 닭을 키운다. 키우는 이유는 달걀을 얻기 위함이고, 때에 따라서는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을 위한 삼계탕이나 닭볶음탕용으로 닭들은 그들의 역할을 다한다. 그런데 세 집 중 앞집에 기르는 닭이 문제다. 혹시 오해할 수 있어 말하자면 그 집 지붕이 파란색은 아니다.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닭은 수컷들이 큰 소리로 운다. 새벽에 우는 닭도 수컷이다. 암컷들도 울기는 하지만 그 소리는 무척이나 작다. 그래서 암탉이 울면 집 안이 망한다는 소리가 있는듯 싶다. 그리고 암컷만 있어도 알은 낳는다. 하지만 수컷 없이 난 알은 무정란이고, 부화할 수 없다. 수컷이 있어야 유정란을 얻을 수 있고, 병아리로 부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정란이 무정란보다 비싸고, 영양가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유정란을 사람들이 더 선호한다.
본 사진은 특정 닭과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본 사진은 자료 사진입니다.
요즘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바로 앞집의 수탉이다. 앞집에서 왜 수탉을 키우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수탉은 동트기 전, 날이 밝아진다는 것을 알리며 운다. 그리고 이 소리를 신호 삼아 농민들은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앞집 닭은 새벽에만 우는 것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목청이 옛날 유행했던 가수 키메라의 목소리를 닮았다. 이 닭 우는 소리를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들으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사한 지 며칠 되던 날, 앞집 아저씨가 나에게 말했었다.
"저희 닭이 좀 시끄럽지요. 닭이 저렇게 우는 것은 자기 위치를 알려 주려고 그러는 건데, 저희 닭이 건강한 수탉이라서 그런 겁니다. "
"아, 네 좀 시끄럽기는 한데 참을만 합니다."
이사 온 지 머칠 만에 '닭 때문에 못 살겠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었고,
또 그것이 이렇게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사 온 지 며 칠은 그냥저냥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닭소리가 점점 신경이 쓰인다. 이제는 남들은 듣지 못하는데, 앞집 닭이 아주 작게 울어도 나에게는 그 닭소리가 들린다. 개가 자기 주인의 발소리와 다른 사람의 발소리를 저 멀리서 구분하듯이 나는 이제 다른 수탉과 앞집 수탉의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다가 닭 때문에 조현병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래 가서 저 닭의 모가지를 비틀까? 아니면 몰래 가서 농약을 먹일까? 이런 저런 상상을 했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죽은 이유를 모르는 앞집 주인이 새로운 수닭을 사오면 끝이기 때문이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목청이 더 큰 수탉이 오면 그건 더 문제다.
앞집 사람에게 항의해 볼까? '닭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아마 난 동네에서 왕따가 될 거다. 열 받은 앞집, 옆집, 뒷집에서 수탉을 몇 마리씩 더 사서, 새벽이면 닭 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릴지도 모른다.
군청이나 읍사무소에 인터넷으로 민원을 넣어볼까? 군청에서는 시골에서 닭 기르는 것을 문제 삼을 거면 차라리 도시로 돌아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 많은 댓글이 달리고, 내 신상이 털릴지도 모른다. 내가 읍내에 나가면 '저 넘이 닭 못기르게 한 그 넘이래'라고 수군거릴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나는 저 수탉을 내가 이기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는 깨달았다. 빨리 복날이 와서 앞집에서 저 수탉을 빨리 잡아먹기를 바라던가, 아니면 저 닭이 빨리 나이가 들어서 더는 자기 위치를 알려 줄 필요가 없어지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내가 닭 울음 소리에 적응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해 보인다. 아마도 이게 제일 현명한 방법이고, 내가 닭보다 나은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 나는 동이 트기 전, 4시 30분 경 눈을 떴다. 그리고 닭의 울음 소리를 기다렸다. 마치 알람 시계 소리가 울리기 전 일어나 알람이 울리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밍기적거리듯이, 수탉 울음소리가 울리면 마치 '너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벌써 일어났어'라고 닭에게 시위하듯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면 10시 이전에 자기로 했다. 앞집 닭도 양심이 있는지 해가 진 후에는 울지 않는다. 아마 양심이 아니라 원래 닭의 습성일 게다. 닭이 잘 때 나도 자야 한다. 결국, 나는 닭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닭 때문에 아침형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덕분에 간단한 농사일과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렇게 아침 일찍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앞집 닭은 어느 암탉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 주려는지 키메라 목소리를 흉내 내 "꼬~~끼~~오~~오~~오"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