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밍

by 소티

세상을 바라보는 창, 그 창은 누구의 것인가?

미디어와 프레이밍, 인식은 조작될 수 있다


여러분은 한 영상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추위에 떠는 노르웨이 사람들을 위해 라디에이터를 모아 보내자는 자선 캠페인을 다룬 영상입니다. 처음에는 다소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곧 반전이 드러납니다. 이 영상은 아프리카를 항상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하는 서구 미디어에 대한 풍자이자 비판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와 기사를 보고 듣고 공유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보들이 누군가의 선택을 거쳐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 맙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 그 창이 조금만 기울어져 있으면 세상을 우리는 세상을 비뚤게 보게 됩니다.


미디어는 프레임을 씌운다

프레이밍(Framing)은 미디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건을 보도할 때,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생략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실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책 실패"라는 기사를 '정부의 무능'으로 보도할 수도 있고, '복잡한 사회 구조 탓'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뉴스가 어떤 프레임을 거느냐에 따라 우리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게이트키핑과 아젠다 세팅

프레임 이전에, 어떤 정보가 선별되어 들어오는지도 중요합니다. 이를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라고 합니다. 즉, 언론은 어떤 정보는 소개하고, 어떤 정보는 배제할지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게이트키핑을 통해 미디어는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주제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를 아젠다 세팅(Agenda-setting)이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많은 문제들은 실제로 중요해서가 아니라, 자주 보고 들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한 유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졌습니다. 한 사람은 코를 만져 '이건 뱀 같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다리를 만져 '기둥 같다'고 말합니다."

"코끼리의 코는 뱀처럼 생겼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코끼리는 뱀이다"라고 말하면 진실을 왜곡한 판단입니다.

우리가 보거나 들은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곧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프레임 너머의 전체를 상상하고 본질을 깨닫는 힘, 그것이 바로 미디어 프레이밍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힘입니다.


개인 미디어 시대, 우리는 모두 프레이머가 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생각을 전파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각자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잘라내고 보여주는, '1인 미디어' 시대의 프레임 생산자가 된 셈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전달하는 말 한 줄, 이미지 한 장이 타인의 인식을 구성하는 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창문은 어떤 색인가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조금만 어두워도 그 너머의 풍경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창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그 창은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스스로 닦고 세운 것입니까?"

우리는 더 이상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프레임을 만들고, 전달하며, 확대하는 주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은 전체인가?" "혹시 누락된 목소리는 없는가?" "이 정보는 어떤 목적을 품고 내게 도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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