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 위에 태어나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기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사의 기록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지만 그 정체를 밝히기에는 남겨진 자료가 턱없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박물관의 여러 업무와 기능 중 하나로 박물관에 소장된 수장품을 연구하는 일을 들 수 있다. 박물관에 전해지는 소장품에 대해서는 박물관이 입수(기증 또는 매각)한 순간의 기록이 남기 마련이지만, 그 물건을 구 소장자가 어떻게 손에 넣게 되었는지, 물건에 얽힌 사연까지 담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때로는 당시 관계자였던 박물관 원로의 증언이 유력한 증거로 채용되기도 하지만, 이조차 남아 있지 않은 아주 오래 전의 물건을 어떻게 추적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일단 구 소장자의 정보를 찾는 일밖에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의 소장품과 관련하여 몇 명의 인물을 추적 중에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민주(李玟柱)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내가 인터넷 세계를 뒤져 알아낸 것이라곤 《동아일보》 1923년 10월 15일의 기사뿐이다. 신문 기사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현대어로 풀어 본다.
단성청년정기총회
단성청년회에서는 지난 6일 오후 3시 단성청년회관에서 제6회 정기총회를 열고 손병국 씨의 사회로 회계 이태기 씨의 회계 보고가 있고, 임원을 다음과 같이 다시 선출하였다고 한다.
회장: 손병국 / 부회장: 이진보 / 총무: 최웅림, 최락교 / 간사: 하원규, 주원식, 이민주, 박동준
회계: 이태기 / 덕육부장: 이한동 / 지육부장: 손의진 / 체육부장: 이병문 / 사교부장: 최육림
평의원 10명 / 고문: 임홍순, 이병곤
단성이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을 가리킨다. 그밖에 다른 단서가 없어서 더 이상 이민주에 대하여 추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주(柱) 자를 항렬자로 쓰는 집안이 아닐까 추정되는데 합천 이씨의 족보 등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비슷한 사람은 나와도 명확히 이 사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서 혹시 경상남도 산청에 있었던 이민주에 대하여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