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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Jul 06. 2022

고 박길룡 선생을 추억함

유상하가 남긴 박길룡에 대한 소개글

* 이 글은 『조선건축』 제2권 제1호(1947년 12월)에 게재된 건축가 박길룡에 대한 소개와 유상하(柳相夏)의 글 「故 朴吉龍 先生을 追憶함」을 현대 문장에 맞게 약간 손을 본 것이다.


건축가 고 박길룡 선생


1. 약력

1898년 11월 20일 탄생

1919년 3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1919년 4월~1932년 7월 조선총독부 근무

1932년 7월~1943년 4월 건축사무소 경영(경성에서)

1943년 4월 27일 서거(당시 나이 46세)


2. 공직

조선건축회 이사

조선건축기사협회 이사장

조선건축대서사조합장

조선주택영단 참여(參與)

조선농지영단 촉탁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3. 저서: 재래식 주가 개선에 대하여 2권, 건축조선 주간 발행


4. 논문: 주택독본, 조선주택 잡감, 도시의 갈 곳, 조선 재래주택 건축 연구, 건축법령 해설, 유행성의 소위 문화주택 등


5. 작품: 서울대학 법문학부, 조선 대박람회, 화신백화점, 대동공업전문학교, 태서관 등 저명 건축만 122점


고 박길룡 선생을 추억함

유상하


우리나라 건축계의 유일한 개척자이시며 우리 건축가의 최고 선배이신 고 박길룡 선생!


그대가 그렇듯 한많은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5주기가 되었다. 그간 우리 시대에는 세기적으로 큰 변혁이 발생하였으며 우리에게는 그대가 그렇게도 갈망하시던 자유 해방의 기회를 얻게 되어 자주 독립을 쟁취하고자 있는 힘을 다하여 각자 맡은 사명을 다하고자 분전하고 있는 이 때에 고 박 선생을 추억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서울 거리를 아무렇게나 차림차리를 하시고 혹 달린 번대머리를 빛내시면서 분주하시던 완강하신 거대한 자태를 추억할 때 고 박 선생의 혁명적 투지의 청빈한 생활은 저 아테네시(市)의 철인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하시며 그이의 심원한 학설과 풍부한 언행은 우리 건축계의 영원한 존재일 것이다.


그이의 반생을 우리 민족 주가(住家) 개선 문제에 많은 연구와 노력을 쏟으셨으며 그 결과로써 전국 5개 전형(典型)의 재래식 주가를, 주거 행동의 능률적인 집중식 주택형을 창안, 보급케까지 하셨다. 건축문화 계몽운동에 주력하셔서 자비로 『재래식 주가 개선에 대하여』 전 2권과 주간으로 『건축조선』을 발행하셨으며 그 외에 각 신문, 잡지를 통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셨다. 발표된 논문 중에는 「주택독본」, 「주방에 대하여」, 「조선주택 잡감」, 「조선 5개 전형 재래주택 연구」, 「도시의 갈 곳」, 「유행성 소위 문화주택」 등 고귀한 논문이 많으시다.


고 박 선생의 논문 중 한 절을 이에 소개함으로써 그이의 뚜렷한 면모를 살피고자 한다.


우리의 주택은 우리의 장구한 역사의 유전(遺傳) 또 지리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으로 나온 우리의 합리적인 생활 용기(容器)가 되어야 한다. 형해(形骸)만 있는 구조는 건전한 수단이라 할 수 없다. 문화 진전에 역행하는 현상, 이것은 우리가 단연코 방지, 근절치 않고는 개선을 바랄 수가 없다. 대체로 신문화의 창생은 재래 문화에 외래 문화가 접촉, 흡수되어 재래 문화의 힘으로 소화, 배양되어야 배태, 창생하는 것이다. 재래의 구문화와 이래(以來)의 신문화가 혼합된 합성체가 신문화의 건설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진화 과정의 첫 계단이 될 뿐이다. 요컨대 우리의 장구한 생활이 낳아놓은 재해 형식을 토대로 하고 우리 지방의 산물을 재료로 하여 과학적인 양식의 구조법을 구성수단으로 하고 우리의 취미를 장식으로 하여 현대 우리 생활의 용기가 될 가구(家構)가 우리 생활의 표현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조선 건축가들의 갈 길을 밝혀 주셨다.


고 박 선생의 작품에 있어서는 건축가 생활 23년간 그이의 혁신적 이념과 혁신적 수법은 날로 연마되어 근대 건축가로서의 선생은 인격, 예술, 기술을 완비하셨으며 설계에 있어서는 신속 정확한 필치로 많은 작품을 내놓으셨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저명한 작품만 하여도 사무소 건축 기타(화신, 한청빌딩 등) 35여 점, 학교 건축 기타(서울대학 문리과, 평양 대동공업전문 등) 17여 점, 병원 건축(세브란스 임상교실, 심(沈)의원 등) 10여 점, 공장 건축(진남포견직회사, 조선고무회사 등) 10여 점, 주택 건축(김, 전 주택 등) 50여 점, 합계 122여 점을 들 수가 있다.


고 박 선생의 건축가로서의 주장은 허식을 배격하여 합리적이고, 간소화한 건축을 성격화시킴에 있어 근대 유행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공통됨이 많으시다. 정치적 두뇌의 소유자이신 고 박 선생은 각계 각층으로 많은 활동을 하셨으며 많은 공적도 남겨 놓으셨다.


이에 박 선생을 소개함으로써 그이의 생전의 면모를 추억하는 동시에 우리 후진들의 재발분을 요청하는 계기를 삼고자 하노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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