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risham의 Rogue Lawyer
로스쿨을 다니면서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과목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면 별로 쓸모가 없을 것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형사소송법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미국에서 형사소송법은 거의 헌법 III이다. Constitutional Law I은 국가제도, Constitutional Law II에서는 시민의 권리를 다루고, Constitutional Law III에서는 형사피의자의 권리를 다룬다고 보면 무방하다), 3학년이 되어서야 Criminal Law를 들었다.
실수였다. 인간사의 비극이야말로 가장 문학적이고,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심오한 주제 아닌가. 그런데, 범죄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변호사를 다룬 소설도 많지만, 형사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은 왜 그렇게 드문가?
간단히 말해 우리는 소설 속에서나마 정의가 즉 우리편이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형사변호사가 이긴다면, 그건 피의자가 이기는 것 아닌가? 피의자는 억울할지는 몰라도, 우리편은 절대로 아니다.
그나마 형사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마이클 코넬리의 The Lincoln Lawyer에서도 2편 3편으로 가면서 형사변호사와 그 대척점의 검사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결국 대척점에 있는 유명한 형사 해리 보시가 계속 카메오로 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범죄자의 변호사인 미키 할러를 독자들이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미키 할러는 재판에서는 지지 않지만 (매일 재판에서 지는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가 성공하기도 꽤 어려울 것이다), 결국은 법정 바깥에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정의의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는가?
존 그리샴만큼 리걸 스릴러를 잘 쓰는 사람도 드문데, 그는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그는 인물 (character)를 중심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야 같은 주인공이 계속 나온다면야, 그리고 독자가 좋아해 준다면야 더 바랄게 없겠지만... 최근에는 존 그리샴이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얼마전에 나온 Gray Mountain의 Samantha Kofer는 그냥 한번 나오고 끝내기에는 좀 아까운 캐릭터 아닌지, 속편이 나오지는 않을지 생각했었다면, 이번 소설 Rogue Laywer의 Sebastian Rudd는 더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는 존 그리샴 소설 치고는 소설 한 권에 너무나도 많은 사건이 나온다. 한 가지 사건을 끝까지 끌고가기보다는 대여섯개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책을 덮을 때가 되면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된다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마치 에피소드집 같다.
주인공 세바스챤 러드는 미키 할러보다 좀 더 그늘에 가까운 변호사이다. 싫어하는 사람도 아주 많다. 딱히 윤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정치인 후보감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그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권력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존 그리샴은 시리즈를 쓰지 않는 사람이지만, 아마 Rogue Lawyer는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 본다. 존 그리샴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후회하지는 않는다.
궁금한 것은, 한국에서도 존 그리샴 소설이 번역도 되고, 잘 읽히는 것 같은데 (펠리칸 브리프의 후광인가?) 미국 법제도의 미묘한 뉘양스를 다 이해하고 읽는 걸까?
... 이틀 걸렸다. 하루면 다 읽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