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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Kim Aug 01.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브런치를 써 보려는 이유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님

음악을 좋아하는 친한 친구에게 어느날 물었다.  "너는 왜 음악을 안하고 다른 걸 하니?"  그 친구 왈:


"제일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하는건 위험해.  음악으로 먹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음악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어.  그렇지 않고 계속 음악을 사랑한다면, 먹고 사는 것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이건, 그건 위험해."


그리고,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컴퓨터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독서도 있다.  핸드폰으로도 제일 많이 하는 것이 책 읽고, 신문과 블로그 기사 읽는 것이다.  원래 좀 재미 없는 사람이다).  그 친구가 말했다.  "좋겠네.  음악이나 스포츠는 하면 할 수록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컴퓨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지니 말이야."  


무어의 법칙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앞의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나는 왜 블로그를 하는가?  또, 나는 어떻게 블로그를 해 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접한 것은 2000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블로그를 내가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을 것이고, 그때 맨 처음으로 도메인을 샀다.  그 도메인은 2008년 경 만료되었고, 그때 무렵 현재 사용하는 도메인을 샀다.  이 도메인은 아직도 가지고 있고, 거기에서 여전히 블로깅을 하고 있다.  갈수록 뜸해지지만 말이다.  아마도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일 것이다.


나는 그 블로그를 여전히 철저히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취미생활로만 제한하려 한다.  마치, 내 친구가 음악을 철저히 취미로만 제한하려 하는 것처럼...  어떻게든 그것을 돈벌이와 연결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블로그이건, 아니면 웹사이트이건, 이걸 운영하는 전체 과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을 하건 그걸로 돈을 벌어 봐야 그것을 바닥까지 경험할 수 있는 법이다.  마케팅과 SEO와 기타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을 무시하고 블로그를 제대로 해 봤다고 할 수 있는가?


돈벌이와 취미를 연결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 나에게는 블로그를 하던 지난 10여년간 생긴 의식적, 무의식적인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원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첫째, 여기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예를 들어, 취미생활이라면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절대 할애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내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도구이다.  워드프레스, 텍스트패턴, 지킬, 노드 등등과 같은 도구이다.  이 두 가지 원칙을 결합하면 묘한 결론이 나온다.  그것은 대부분의 글은 절대로 30분 이상을 할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지장을 주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대로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법 이야기나 비즈니스 이야기).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취미이건 말건, 법과 관련된 일로 먹고 사는 이상은 절대로 자기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는 떠벌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변호사 숫자가 과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변호사들 가운데에도 블로그 등을 통하여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를 보면 좀 마음이 불편하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저렇게 떠벌이고 다니는 것을 그 일을 맡긴 고객은 알까?  알면 도대체 어떤 마음이 들까?  또, 자기가 특정 주제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 (전략, 업무에 대한 접근 방법 등)를 저렇게 공개하면 나중에 업무를 할 때 핸디캡같은게 생기지 않을까?  한 마디로 윤리적, 전략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때, 나는 이게 먹고 사는 문제와는 무관한 취미생활이어야만 한다는 제약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편견이 분명히 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되짚어보기로 하고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다), 다시 그 앞의 이야기, 그러니까 첫번째 이야기, 즉 여기에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돌아가 보자면, 내가 즐겨 찾는 블로그 가운데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폴 그레이엄의 블로그일텐데, 그는 나와는 정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는 글을 자주 쓰지 않는다.  많아야 일이주, 적으면 한두 달에 하나씩 글을 쓴다.  그 대신 하나의 글을 쓸 때마다 수십번은 퇴고를 하고, 다시 살펴 보고, 또 확인하는 꼼꼼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어 하나 하나에서 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나도 일을 할 때에는 그렇게 하지만, 솔직히 그의 블로그를 가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는 나와는 달리 먹고 사는 것과 블로그를 철저히 구분한다는 원칙이 절대로 없다.  그에게는 블로그는 그의 생계의 연장이다.




다시 세 번째 원칙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도대체 왜 먹고 사는 것과 블로그를 철저히 차단하려 했을까?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시키면, 사실상 블로거가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모종의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술 전도사이건, 이데올로기의 전도사이건, 마케팅의 전도사이건, 고양이 전도사이건...  둘째는 자기가 같이 일할 만한 사람, 즉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세계에 알게 하는 것이다.  첫번째 접근법을 마케팅이라 하자.  두번째 접근법은 당연히 영업이다.  어떻게 하건, 어떤 전략을 선택하건, 목표는 당연하다.  첫째, 가능한 많은 추종자 (구독자?)를 모아야 한다.  둘째, 자기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하여 가능한 한 많이 떠벌여서, 누군가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 글이 최소한 첫 페이지에는 나와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점을 입증하여야 하므로, 열심히 댓글을 달아 주고, 열심히 댓글에 대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친절해야 한다.  이 문제는 나의 경우에는 첫번째 원칙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글에 할애하는 시간이 하루 30분이라면, 글을 쓸 시간도 없는데, 댓글 확인하고 거기에 댓글 달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SEO를 할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까, 사실상 바닥까지 내려가 보려면, 심연을 직시하려면, 결국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돈의 문제인 것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이 문제도 아주 복잡한 문제이고, 따로 한 번 써 보려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그걸 해서 돈을 벌어 본 사람은 프로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취미생활인 것이다.  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이고, 그렇게 남고 싶었던 것이다.  착한 사람인 척 댓글창에서 코스프레할 필요도 없고, 또 성실한 사람인 척 매 10분마다 댓글 확인해서 대답할 필요도 없고...  




그렇지만, 10년이 넘게 지나자 회의가 생겼다.  이것이 과연 옳은가?  이것은 옳은 선택인가?


물론,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결국 이걸 계속하려면 저널리스트가 되던, 마케터가 되건, 영업맨이 되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되기 싫었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되기를 선택하기는 싫었다.  나는 절대로 파워블로거가 되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블로그를 뜸하게 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구독자 수가 1,000명을 넘었을 때였다.  중요하지도 않은 숫자이고, 1,000명이 내 글을 매번 읽는 것도 아니고, 1,000명 가지고 뭘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느끼는 부담은 아주 컸다.


그렇지만, 이 원칙에 대해서 회의가 든 것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뭔가 할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법에 대해서, 또는 법률산업에 대해서, 또는 법률제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리고, 과거 내가 사용하던 블로그에서 그런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해 왔지만 (첫째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그리고 둘째는 먹는 물에 손을 씼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제대로,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먹는 물이 세 가지 이유로 해서 오염된 것 같고, 또 가뭄이 들어서 이제는 물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손을 씼는 물을 마셔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약 2-3년 전이었다.  첫째는, 인공지능과 알파고와 컴퓨터가 법률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절대로 더 이상은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손을 씼는 물이 먹는 물을 침법한 것이다.  어쩌면 필연일 수도 있다.  무어의 법칙 때문에 내가 취미생활을 좀 더 편하게 했다면, 무어의 법칙 때문에 내가 먹는 물이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것도 나름 필연적인 것 아닌가?  둘째는, 무슨 이유에서이건 (나름대로 가설과 의혹은 있지만), 법률 시장이 매도자 우위 시장(seller's market)에서 매수자 우위 시장(buyer's market)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고상 떨지 말고 그냥 말하자면 단도직입적으로 변호사 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셋째는 경제가 너무 위태해졌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가고 신중상주의의 시대가 오고 있고, 한국의 제조업은 지는 해가 되었고, 금융위기는 항속적인 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명백한 신중상주의와 미국의 애매모호한 태도, 그리고 유럽의 데카당스 사이에서 한국은 갈 곳이 없어졌다 (좀 더 보수적으로 말하자면, 쓸 수 있는 패가 너무 없다).  말 그대로 삼각파도,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왕 이야기를 하려면, 이왕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면, 이왕 손 씼는 물을 마실 수 밖에 없다면, 제대로 마셔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바로, 아래에서 말한 심각한 정렬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브런치를 해 보려 하는 것이다.  하여간 말이 길어졌다.  그것이 바로 약 9개월 동안 방치해둔 브런치의 먼지를 털기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그나저나, 이 글 쓰는데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첫번째 원칙이 깨졌다.  왠지 벌써 망쪼가 들기 시작한 것 같다.

 

제목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가져 왔다.  다른 이유는 없고, 재미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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