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법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거나 완만하게 표현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현행 정당법에는 지구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지구당이 정당 조직으로 존재하였지만 2004년 개정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2005년 당원협의회라는 이름의 대체 조직이 도입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행 정당법은 "정당은 국회의원지역구 및 자치구ㆍ시ㆍ군, 읍ㆍ면ㆍ동별로 당원협의회를 둘 수 있다. 다만, 누구든지 시ㆍ도당 하부조직의 운영을 위하여 당원협의회 등의 사무소를 둘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당원협의회라는 조직은 있지만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그저 명목상의 하부 조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아울러, 정치자금법은 당원협의회의 후원금 모금도 인정하고 있지 않아서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원협의회 도입 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구당 부활 논의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당원협의회의 조직 및 역할, 기능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당원협의회(지구당 폐지)는 현역 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에 형평성 문제, 당내 민주주의 문제 등을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역 의원들은 후원회 명목으로 후원금은 물론 지역 사무실도 운영할 수 있지만 원외 인사들은 선거 기간이 아니면 사무실을 열고 후원금 모금 등 정치활동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사무실을 갖춘 지역조직이 없다 보니 당원들이 온라인을 통해 집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특정 세력이 전체를 좌우하는 양극의 당내 민주주의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과거 지구당이 있던 시절 정당법은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국회의원지역선거구를 단위로 하는 지구당으로 구성한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시·광역시·도에 당지부를, 구·시·군에 당연락소를 둘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시민들이 지구당 사무실을 통해 중앙당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고 후원금 모금을 통해 실질적인 운영도 가능했었다. 이에 따라 지구당은 유권자의 여론을 수렴하고 정치적 이념이 같은 사람을 결집시켜서 정치적 충원을 담당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으로서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과거 지구당 운영과정에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지구당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지구당 사무소를 상시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적·물적 조직과 많은 비용이 필요로 하였고(언론에 따르면 사무실 임차료와 인건비 등으로 월 1000만 원 이상의 운영비가 들어간다고 함), 따라서 지구당 운영 경비 조달을 위한 불법 정치자금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2002년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차떼기 등을 통해 지구당이 불법 정치자금 모으는 통로가 된 점 등이 지구당 폐지와 그 대안으로 당원협의회 제도를 도입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구당이 고비용 저효율 구조 및 불법적 운영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의 대안으로 등장한 당원협의회가 후원금 모금을 제한하고 사무실을 둘 수 없도록 제한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순리였다. 공간이 없으니 임차료, 인건비가 필요 없었고 따라서 운영하는데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았다. 물론 어쩌면 이러한 과도한 제한이 지구당 폐지 후 20여 년 동안 당원협의회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돈이 돌지 않으니 정치자금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무실도 후원금도 없는 당원협의회가 최선의 대안인가 하면 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튼튼한 지역조직 없이 건강한 정당문화를 양성하는 것은 꽤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22대 국회에서 지구당 부활과 관련하여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거의 부패가 되살아나서 부활은 안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최초의 지구당 제도는 1962년 12월 31일 제정 정당법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에 관한 법령은 1946년 2월 23일 미군정청령 제55호 정당에 관한 규칙이었으며, 이승만 정권 내내 효력을 발휘하였다. 4.19 혁명 이후 탄생한 제2공화국의 제3차 개정헌법은 제13조에선 최초로 정당에 관한 규정을 두었으며, 1960년 10월 13일 정치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하였다. 그러나 이 법률은 정당의 설립이나 활동, 조직에 대한 포괄적 규정을 담지 못했으며, 5.16 쿠데타와 함께 등장한 제3공화국에서야 정당법의 제정이 이루어졌다.
정당법이 규정하고 있던 지구당은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지구당은 일반적으로 최고 의결기구로 지구당 당원대회를 두었으며, 집행기관으로 는 지구당을 대표하고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장을 두었다. 위원장과 함께 수명의 부위원장이 있었고 사무국을 두었다. 위원장 산하 계선조직으로는 윤면동 단위의 당무협의회가 있었고, 협의회마다 청년회, 여성회, 총무 등을 두었다. 경우에 따라 당무협의회장 산하 리.통 단위별 투표구를 담당하는 관리장을 두며 그 아래에 반책을 두었다. 그야말로 정교하고 방대한 조직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1962년 당시 지구당 제도는 여러모로 제3공화국 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먼저 박정희 정권은 전국 131개 지역선거구 중 3분의 1 이상, 약 44개의 지구당을 가져야만 정당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였다(제정 정당법 제25조). 각 지구당은 50인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하므로(제정 정당법 제27조) 최소 2,2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했다. 강력한 집권여당이거나 기득권에 기반을 둔 유력 야당이 아니라면 요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지구당 제도는 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신생 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 즉 신진 정치세력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려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구당 조직은 권력과 자원을 사실상 독점한 집권당이 막대한 재원을 흘려보내 유권자를 동원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후에 지구당 조직이 돈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고비용 정치의 상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요컨대 한국정치에서 지구당 조직은 유권자의 이익결집에 따라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배 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조직화된 것이다. 실제로 이 점이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된 지구당 폐지 주장의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
- 조한상, “정당민주주의에 입각한 지구당 부활론 검토” 중 일부 발췌
2004년 헌법재판소는 지구당 폐지와 관련하여 "정당의 핵심적 기능이 국민의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인 까닭에, 정당이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 기능은 원활히 수행될 것이고, 또한 국민들이나 평당원의 의사를 잘 반영하면 할수록 정당조직과 활동의 민주성은 고양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지구당이나 당연락소는 정당의 핵심적 기능을 민주적으로 수행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i) 지구당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 나라에서 지구당이 모든 선거구에 설립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사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점, (ii) 지구당이 선거기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선거가 끝난 후에는 그 활동이 약화되거나 미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 많은 나라들의 운영실태이지만, 정당은 의연하게 그 기능을 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점, (iii) 특히 오늘날과 같이 교통과 통신(특히, 인터넷) 및 대중매체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지구당이 국민과 정당을 잇는 통로로서 가지는 기능 및 의미가 상당 부분 완화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지구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여 핵심적 기능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라고 하여 지구당 설립 금지가 정당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는 할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헌재 2004. 12. 16. 2004헌마456 결정)
하지만 이후 당원협의회 운영이 한계를 보이고 지구당 부활 요구가 있자,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구당 부활이 포함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제안이유에 대해 선관위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구당을 폐지한 후 당원협의회를 도입했으나 현역의원과 비현역 정치인 간 정치적 형평성 문제, 당원협의회 사무소의 편법 운영에 따른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선거가 실시되는 때마다 정당 선거사무소를 둘 수 있어 규제의 실익도 크지 않다"라고 밝히며, "정당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헌법에 비춰도 지역차원의 정당조직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엄격한 선거법 덕분으로 탈법적인 자금 수요가 거의 사라졌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생활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전향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2021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의견을 냈지만, 입법화에는 실패하여 당원협의회 체제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제22대 국회 개원 후 지구당 부활 관련 논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발의한 정당법 개정안은 모든 선거구별로 1개의 지구당 설치를 허용하고 유급직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법적근거를 담았다. 아울러 원외위원장도 현역 국회의원들처럼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조항도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여러 논의를 통해 풀뿌리민주주의도 회복하고 과거 지구당 폐해도 막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