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말 8초 여름휴가 시즌이다. 우리 가족은 작년에 이어 제주도를 찾았다. 누구는 해외 안 가고 왜 제주도냐고, 제주도에 꿀발라 놨냐고 했지만 물놀이 좋아하는 자녀를 둔 가족에게 여름 제주도만한 곳이 없다.
목적지는 제주도 함덕해수욕장이다. 우리 부부와 함덕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결혼 전 우연히 방문했다가 그 매력에 푹 빠진 것이 11년 전이었다. 이후 첫째 아이와 같이 놀러 오고 둘째 아이까지 갓난쟁이 때 와서 논 이후로는 우리 가족의 페이버릿 장소가 되어버렸다.
함덕해수욕장은 늘 같은 풍경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이맘때 와서 그렇기는 하지만) 에메랄드색 바다와 푸른 하늘, 거기에 노란색 파라솔과 형형색색 튜브, 즐거운 표정의 다양한 얼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생동감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우리 가족은 작년에 이어 2년째 4박 5일 똑같은 스케줄로 제주도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말이 4박 5일이지 사실상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따라서 하루 일과만 잘 설명하면 휴가의 대강을 설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듯 하다.
함덕해수욕장 근처 호텔에 머물렀던 작년과 달리 에어비앤비(Airbnb)에서 작은 독채를 예약했다. 함덕에서 차로 10분 거리였고 크지는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예쁜 복층 숙소였다.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숙소 링크)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는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 두 아이는 미역국, 짜장밥, 어묵국 등으로 든든한 아침식사를 한다. 그동안 나는 대형 돌고래 튜브에 전기식 에어펌프로 공기를 주입한다. (한참 걸린다) 식사와 공기주입을 마치고 나면 숙소에서 나와 함덕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해수욕장 가는 길에 잠시 GS25 편의점에 들러 “김혜자 도시락”과 “뭘좋아할지몰라다넣었어 도시락”을 3개 정도, 삼각김밥 2개, 샌드위치 1개를 맥주 한 캔과 함께 구입한다. 그것들을 얼음 잔뜩 넣어둔 아이스백에 넣으면 우리의 일용할 점심 준비 완료다.
함덕해수욕장 입구에 아내와 두 아이를 먼저 내려준다. 10시부터 시작하는 파라솔 대여를 위해서다. 매번 10시 10분 내외에 “함덕리 새마을회” 명의로 카드 2만 원이 결제된다. 하루 파라솔 대여료다. 올해부터 파라솔 대여가격이 대폭 인하되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략 10시 30분 내외로 해변 맨 앞줄 파라솔 대여가 마감된다. 우리가 매일 아침 서둘러 해수욕장에 오는 이유다. 앞 줄과 뒷 줄은 오션뷰, 바다 접근성, 물건 적치 등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맨 앞 줄에 앉아 오늘도 성공했구나 하면서 한숨을 돌리면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모래놀이 하는 사이, 아내는 책을 읽는다. 아내가 요즘 읽는 책은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인데 스토리도 재밌지만 파라솔 아래에서 파도 소리 들으면서 읽기에 너무나 좋은 책이다. 내가 일상에 지칠 때 습관처럼 꺼내보는 책이기도 하다.
아침의 여유를 틈타 나는 아침수영을 시작한다. 바다에서 팔을 휘저으며 나아가면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이 온몸을 교차해 지나가고 짠 물이 입 안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미역이 스르륵 몸을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파도에 둥실 몸이 떠오르기도 한다. 인공풀장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이 깊은 생동감을 준다.
좌우 두 바퀴 왕복을 하고 나면 몸이 조금 풀린다. 그즈음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마치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바다에 들어온다. 한여름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역시 물뿐이다. 아이들과 아내와 나는 바다 속 물놀이를 시작한다.
분홍색 핑크퐁 튜브를 탄 민서와 대형 돌고래 튜브를 탄 준서와 함께 한여름 바다를 즐긴다. 돌고래 튜브 바람을 넣기 위해 아침마다 에어펌프기계와 씨름을 하지만 (진짜 한참 넣어야 한다) 그래도 준서가 하루종일 잘 가지고 노는 걸 보면 마음 한켠이 뿌듯하다.
12시 30분 넘어가면 파라솔 아래에서 점심을 먹는다. 단출한 편의점 도시락이지만 오전 물놀이 후에 먹는 점심이라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맛있게 뚝딱 먹고 과자도 살뜰히 챙겨 먹고 나면 잠시 휴식시간이다. 그러고는 얼마 안있다가 다시 바다에 들어간다. 끊임없는 물놀이의 연속이다.
오후 3시 정도면 물이 많이 차오른다. (우리가 간 시기는 오후 6시가 간조였다) 준서와 나는 튜브를 버리고 물안경을 끼고 수영을 시작한다.
준서가 수영을 배운 지 6개월 정도 되었는데 자유형을 꽤 잘한다. 본인 말로는 25미터 왕복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뻥이 좀 있는 듯 하고, 그럼에도 파도치는 바닷물에서도 꽤 잘 헤쳐나간다. 같이 옆에 나란히 누워 함께 자유형을 하고 있으면 엄청 뿌둣한 마음이 들면서 다 키운 느낌이 든다.
오후 4시 정도(오후 6시 간조 기준)가 되면 물이 맑아져서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진짜 그렇다) 이제 스노클링 할 시간이다. 동남아도 아니고 제주도에서 스노클링이라니? 하겠지만 실제 가능한 포인트가 있다. 제주도 함덕해수욕장을 “아시아의 동남아”라고 내가 부르는 이유가 있다. (나만 그렇게 부른다)
준서와 장비를 챙겨 스노클링 포인트로 이동한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질러가면 도보로 10분 거리에 포인트가 있다. 가는 길 중간에 삼별초의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함덕포 전적지 기념비가 있다. 고려시대 삼별초가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옮겨가면서 항쟁을 이어가다가 결국 고려-몽고 연합군에 진압된 장소이기도 하다. 슬픈 역사와 어울리지 않게 언덕에서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다.
스노클링 포인트에는 물고기가 많다. (아래 직접 찍은 동영상 참고) 동남아의 알록달록 니모류 열대어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토종열대어류가 많이 모여있다. 열대어 사이로 둥둥 떠다니며 유영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30-40분 놀다가 다시 함덕해수욕장으로 복귀한다.
오후 5시(오후 6시 간조 기준)부터는 채집 forage 시간이다. 물 빠진 바닷가에서 물고기, 게, 새우, 조개 등을 잡는 건데 물론 잡아먹기 위해서는 아니고 단순히 잡았다 풀어주기 catch and release 하기 위한 것이다. 준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휴가기간에는 작은 게와 복어, 열대어 종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채집활동을 하다가 마지막 물놀이를 하면 집에 갈 시간에 된다. 함덕해수욕장 마감시간이 오후 7시다.
파라솔 내 짐을 정리하고 튜브에 바람을 뺀 후 (돌고래 튜브 바람 빼는데도 한참 걸린다) 수돗가에 가서 담수로 발과 몸을 대충 씻고 간단히 아이들 옷을 갈아입힌 채 차를 타고 숙소로 간다.
내가 숙소 앞 수돗가에서 튜브와 수영복, 구명조끼 등의 모래를 씻고 터는 사이 아내와 아이들은 샤워를 마치고 깔끔한 상태가 되어 나타난다. 나까지 샤워를마치면 밖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피자 등을 픽업해 오거나 마트에서 장을 봐서 해 먹거나 하는 식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한다.
그리고 숙소에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든다.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재미없고 지루할 것 같지만 행복은 계속되더라도 지겹지 않고 늘 새롭다. 우리 가족은 모처럼 속세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똑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는 멋진 말을 남긴 바 있다. 그의 말이 여전히 옳다면, 우리 가족은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 늘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내년 제주도 여름휴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