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 피아노 콩쿠르를 보러 가다

by 준서민서패밀리


오늘 준서가 피아노 학원 다닌 지 2년 6개월 만에 콩쿠르에 나갔다. 이번 콩쿠르는 전국 1만 개의 피아노 학원 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대회는 아니었지만, 성남에 거주하는 초딩들이 한 달에 한 번 판교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우리 가족에게는 성남의 쇼팽을 뽑는 매우 의미 있는 대회였다.


준서는 세 달 전부터 콩쿠르를 준비했다. 연주곡은 슈몰(Schmoll)의 “물의 요정과 어부”였다. 조성진도 11살에 첫 콩쿠르를 나갔다고 하던데 마침 준서가 coincidentally 11살이었다. 준서는 학원에서 연습하는 것 외에도 집에서도 꾸준히 연습했다.


악기 연주는 트라이앵글과 캐스터네츠를 넘어서지 못했던 나에게 아들의 콩쿠르 출전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어릴 적 친척이 하는 피아노 학원을 2년 넘게 다녔는데 체르니에 진입 못하고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학원 역사상 바이엘만 주야장천 치다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피아노 치는 방 벽면에 푸욜(FC바르셀로나), 발데라마(콜롬비아) 같은 사람들의 초상화가 붙어있었는데 왜 붙어있었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었다. 물론 쇼팽이나 슈베르트, 바흐였을 것이다. 피아노 치는 내내 친구들이랑 축구하러 가고 싶다 끝나고 딱지 치러 가야지 생각만 했으니 실력이 늘 리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아내는 피아노를 잘 친다.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아 곧잘 연주를 하곤 한다. 그래서 준서 콩쿠르에도 엄청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마르세유턴이나 무회전 킥을 잘하는 사람은 부러워해도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은 크게 부러워하지 않는 나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콩쿠르 시작 전 오전 준서가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간 사이 나는 어김없이 수영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는 사이 아내와 준서는 긴장감 넘치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되었고 우리 네 식구는 판교에 있는 성음아트센터로 향했다.


가는 내내 준서는 떨었고 무척이나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작년 말 민서의 발표회를 예로 들며 할 수 있다고 격려했지만 준서 귀에는 잘 안 들어가는 듯했다. 그리 길지 않은 드라이브 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준서는 대기실로 들어갔고 우리는 객석에 앉았다.


3학년 공연에 이어 4학년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점점 준서의 차례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 역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30명 남짓 관객 앞에서 떨리지 않을까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등등 걱정이 밀려왔다.


408번 호명과 함께 준서가 걸어 나왔다. 약간 상기된 얼굴을 보니 조금 긴장한 듯했다. 이윽고 의자에 앉았고 연주를 시작했다. 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1분여의 연주를 무사히 마무리해 주었다. 그 1분이 보는 우리에게는 10분은 될 정도로 매우 길게 느껴졌다. 마음 조리고 있다가 잘 마무리하고 나니 너무나 대견했다.


공연이 마무리되고 우리는 준서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내가 준비한 꽃다발에 준서는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새로운 성취를 이뤄내는 모습을 보니 아빠로서 너무나 뿌듯했다.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 인생의 어려움을 또 하나 극복해 보았다는 점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물론 바이엘 피니셔가 감히 논할 수 없는 훌륭한 연주였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준서가 좋아하는 파스타집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콩쿠르의 성공을 자축했다. 지난한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노력이 결과의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겠지만 필요조건인 것은 맞다. 준서가 앞으로도 그 지난한 노력들의 좋은 결과를 운 좋게 매번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민서 어린이집 연말 발표회를 보러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