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
* <공동선> 2025년 7-8월호 ‘두려움 너머’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박현경(화가, 교사)
2025년 5월 22일. 제주 중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고인(故人)의 가족, 동료, 제자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 전국의 많은 교사가 두고두고 이날을 슬프게 기억할 것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교사가 아닌 사람들도 꽤 많은 이들이, 이번 제주 중학교 선생님 사건을 접하며 자동적으로 서이초등학교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2023년 7월 18일. 故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故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 이후에야 뒤늦게 세상에 드러난 억울한 죽음이 또 있다. 군대에 가서까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고 전역해 복직해서도 시달리다가 2021년 12월 8일 “하루하루가 힘들었어요 죄송해요”라는 카톡 메시지를 남기고 돌아가신 호원초등학교 故 이영승 선생님.
2021년 호원초등학교 故 이영승 선생님의 죽음, 2023년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 2025년 제주 중학교 선생님의 죽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 분 모두 학교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돌아가시기 전에 학생 보호자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이 세 분 이외에도 다수의 교사들이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언론의 조명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받았다면 어느 정도로 주목을 받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이유로 인한 죽음이 여러 건 반복된다면 이는 ‘개인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참사’다. 대한민국 교사의 잇따른 자살은 사회적 참사다. 이 사회적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기관 차원이 아닌 교사 개인이 민원을 응대하는 구조’를 꼽을 수 있다.
2023년 故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죽음 후 2023년 7월 22일부터 2024년 2월 17일에 이르기까지 총 열두 차례의 ‘전국교사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전국의 교사들이 추모의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점’이 되어 집회에 참가했다. 전 세계 교육운동사에 유례없는, 누적 인원 80만 명의 집회였다. 특히 故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49재 날이었던 9월 4일에는 파면, 협박, 형사 고발 등을 운운하는 교육부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멈춤의 날’을 이루어냈다. 전국의 교사들이 연가, 병가, 조퇴를 내고 검은 물결에 합류했다. 그 물결이 너무도 거대해, 교육부는 마침내 징계 방침을 철회했다.
이렇게 전국의 교사들이 뜨겁게 싸운 결과, 교사들의 손으로 만든 교권보호 4개 법안이 9월 정기국회 1호 법안으로 통과되고, 12월에는 아동학대처벌법이 개정되면서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이 정비되었다. 특히 초·중등교육법 제20조 1항에서는 ‘교장은 (중략) 민원 처리를 책임지며’, 유아교육법 제21조 1항에서는 ‘원장은 (중략) 민원 처리를 책임지며’라고 하여, 민원을 처리할 책임이 교사 개인이 아닌 교장, 원장에게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그랬는데 왜 또 제주 중학교 선생님 사건이 생긴 걸까. 법은 바뀌었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장은 왜 바뀌지 않았을까. ‘교육 당국의 안일함’이 그 범인이다.
서이초 사건이 있고 난 뒤인 2023년 8월, 교육부가 제시한 민원처리 기본 원칙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 교사가 민원을 직접 응대하지 않고 ‘기관’이 대응하는 체제로 개선
- 학교 민원대응팀으로 민원창구 일원화
- 나이스 및 챗봇 활용한 온라인 민원시스템 도입
- 정당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 엄정 대응
약 2년이 지난 지금 이 네 가지 기본원칙 중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상 한 가지도 없다. 서둘러 대책을 내놓으며 생색을 냈을 뿐 현장이 실제로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 작업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충청북도를 예로 들어 보겠다. 2024년 충청북도교육청은 두 차례에 걸쳐 학교 현장에 공문을 보내 민원대응시스템 구축 현황을 조사했다. 그러나 조사한 내용은 녹음 전화기 설치, 민원 대응실 구축 등 시설, 장치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온라인 민원시스템 도입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실제로 민원창구가 ‘일원화’되었는지, 실제로 교사가 민원을 직접 응대하지 않고 ‘기관’이 대응하는 체제로 개선되어 정말로 학교장이 ‘민원 처리를 책임’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은 전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이 변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 교육계의 보수적 문화를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2024년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음성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나는 음성교육지원청과의 정책협의회 때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민원대응 관련하여 실질적인 변화가 있는지 음성 관내의 학교들이라도 먼저 체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관내 교사들에게 “선생님들, 더 이상 힘든 민원을 선생님이 감당하려 하지 마시고 관리자(교장, 교감)에게 넘기십시오!”라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주어야 현장이 바뀔 수 있다고 발언했다. 나의 이런 발언에 대한 음성교육지원청 교육장의 반응은 대략 이러했다.
“아유, 참! 오죽했으면 그런 얘길 여기 와서 하실까…….”
마치 다른 나라 얘기를 듣는 듯한 태도와 유체이탈 화법에 나는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꼈다.
교사의 노동 환경에 큰 관심을 가고 있는 김현수 정신과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육희망’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교육계의 입장이 너무 미온적이며 교사를 직접적으로 돌보는 정책은 너무 미흡합니다. 교사라는 직업의 위험성이나 노동강도에 대한 재정립이 확실히 필요합니다. 교사가 힘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관리자, 교육청, 교육부의 인식이 너무 안일합니다.”라고 밝혔다. 너무나도 정확한 진단이다.
민원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악성·특이 민원도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민원에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교육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민원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 교사가 민원을 직접 응대하지 않고 ‘기관’이 대응해야 한다는 것. 민원 처리의 책임자는 교장(유치원의 경우 원장)이라는 것. 교육청도, 관리자들도 답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답을 알고도 엉거주춤 현장을 내버려 둔 것은 ‘교사들한테는 그래도 된다’는 ‘안일함’ 때문이다. 악성·특이민원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관리자, 교육청, 교육부의 안일한 인식이었다. 교육 당국의 안일함이 교사들을 죽게 했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로 인해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제주 중학교 선생님 추모 문화제 때 노래패 선생님들이 눈물 머금고 불러 주신 노래 가사로 이 글을 마친다.
‘아프게 하지 마라. 눈물 흐르게도 마라. 상처 주지 말고 파괴하지도 말고 그냥 평화로운 바람 부는 대로 두어라. 아프게 하지 마라. 좌절하지 않게 하여라. 빼앗지도 말고 떨게 하지도 말고 그냥 아름다운 것들 바라볼 수 있게 하여라. 아프게 하지 마라. 더 이상 우리를 더 이상 우리 형제를 더 이상 나를 더 이상 그 무엇도 더 이상 내 이웃을 아이들을 이 세상을 더 이상 우리들을 아프게 하지 마라.’
<참고한 자료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홈페이지 보도자료 ‘제주교사 사망 사건 엄정 수사 및 순직 촉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 – 형식적인 민원대응팀 전면 개선하여 안전한 교육활동 보장하라!’
교육희망 [긴급 인터뷰] “교사의 자살을 막기 위한 확고한 지원정책 시급해!”_김현수 정신과의, 현경희 편집실장, 2025.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