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
* <공동선> 2025년 9-10월호 ‘두려움 너머’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목: 그리운 사람들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작년 내 개인전에 나는 ‘마침내 널 만날 거야’라는 제목을 붙였다. “모든 두려움을 넘어 마침내 널 만날 거야.”라고 전시장 벽에 적어 놓았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의 삶과 창작 작업은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돼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다가가려면 수많은 두려움을 넘고, 넘고, 또 넘어야 한다. 여기서 ‘너’는 신(神)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사람들, 구체적인 사람들이다. 하느님은 사람들 사이에 계시다.
오늘 온종일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을 하다 보니 그리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 그리운 사람들 이야기를 여기 나눈다.
“앞으로 그르노블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릴 거야.”
지뻬(J. P.)에게 이렇게 말하며 산 아래로 펼쳐진 그르노블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지뻬를 봤을 때 그는 한 손을 제 가슴에 얹고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28일 오후의 일이다.
2015년 1월 한 달을 프랑스 남동부의 그르노블이란 도시에서 지냈다. 하루 중 절반은 대학교에서 어학 강의를 듣고 나머지 시간에는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곳은 주거 환경이 취약한 분들이나 노숙인분들이 찾아와 무료로 빨래와 샤워를 하는 ‘뿌앙도(Point d’Eau)’라는 이름의 쉼터였다. 뿌앙도(Point d’Eau)는 우리말로 ‘샘’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샘’에서, 빨래나 샤워를 하러 오신 분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어 대기자 명단을 만들기도 하고 이분들의 우편물을 찾아 드리기도 하고 일회용 면도기나 목욕 타월 등 필요한 물건을 챙겨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그분들이랑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우노 게임을 했다.
어떤 사회가 살 만한 사회인지 알려면 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바로 이 지론에 따라 나는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미리 뿌앙도에 대해 알아 두었다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나라에 정착해 살게 된다면 나 또한 가난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될 테니, 이 사회가 정말 살아갈 만한 곳인지 똑바로 알고 싶었다. 또한 대학교에서 교수와 대학생, 대학원생들과만 만나며 체류 기간을 보내기에는 무균실에서 지내는 듯한 갑갑함이 느껴졌다. 이 사회의 진면목, 끓어 생동하는 한 단면을 핍진히 체험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뿌앙도에서 소중한 체험을 많이 했다. 이곳에서 보고 듣고 부대낀 순간들 덕분에 프랑스 사회 계층 문제, 인종 문제의 미묘한 점들을 피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노숙인분들과 정이 들어서 나중에 작별할 때 눈물이 몹시 났다.
지뻬는 바로 이 ‘샘’에 샤워나 빨래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거칠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다만 수줍게 웃을 때만큼은 소년 같은 얼굴이 되살아났다. 나의 귀국이 목전에 닥쳤을 때 그가 수줍게 웃으며 내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나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그냥 친구로서 커피 한 잔을 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좋다고 했다. 이 사람에게 좋은 추억 하나를 선물하고 싶었다. 노숙인,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우정을 주고받는 시간을 감히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나의 주머니 사정 역시 그리 좋지 않았으므로 대학교 구내식당으로. 우린 구내식당에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자라 온 이야기, 살아 온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날에 함께 그르노블 성채(城砦)에 걸어갔다 오자고 약속했다. 그날 캄캄한 버스 정류장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그에게 ‘달’이라는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달, 달, 달…”이라고 몇 번이고 따라했다.
다음 날엔 약속대로 둘이서 그르노블 성채에 올랐다. 중간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을 때 그의 구닥다리 엠피쓰리로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걷고 또 걸어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이르자 우린 멈춰서 한참이나 그르노블 시내를 내려다봤다. 저긴 뿌앙도, 저긴 그르노블 역, 이렇게 가리키며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이제야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이미 남자친구가 있고 게다가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너무 슬프다고. 나는 말했다. 내가 그르노블에서 마지막 하루를 함께 보내는 사람은 내 남자친구도 아니고 대학교 친구들도 아니고 교수님도 아니고 바로 너라고, 나는 앞으로 그르노블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릴 거라고. 그날 작별할 때 지뻬는 내게 꼭 그르노블로 돌아오라고 했다. 꼭 다시 오라고, 자기는 이제 일자리도 찾고 똑바로 살 거라고.
2019년 1월, 남편과 함께 그르노블을 다시 찾았다. 뿌앙도에 가자 직원분들과 노숙인분들이 나를 기억하고 반겨 주었다. 지뻬는 바로 며칠 전 일자리를 따라 멀리 떠났다고 했다. 남편이랑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성채에 오르며 샌드위치를 먹고, 그르노블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지뻬와의 추억이 생생했다.
내가 선물하고 싶었던 ‘좋은 추억’을 그는 잘 받았을까? 그 추억은 그에게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거다.
지금도 나는 그르노블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지뻬를 떠올린다.
넌 기억하고 있는지 모두 잊은 듯 지내는지 비 내리는 그 날이면
널 떠올리곤 해
(중략)
그 소란했던 시절에
그대라는 이름
- 빌리 어코스티 <소란했던 시절에> 가사
‘힘들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날. H랑 연락해서 만나러 감. 운천동. 대화. 폭우. 우비. 가까스로 집.’이라고 나의 수첩 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칸에 적혀 있다. 이 짧은 메모에서 우리가 그날 함께 나눈 시간이 물씬 묻어난다.
너는 2016년에 J여고 2학년이었고 신문반 활동을 했다. 나는 그 신문반 지도교사였다. 2017년에 너는 고3이 되었고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어떤 식으로든 우린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고 여름방학 중이었던 7월 28일에 내가 너를 만나러 갔다.
자전거를 타고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꾸무럭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네가 전화로 가르쳐 준 길을 헤매며 빗속에서 자전거를 몰았고, 몇 번의 전화통화와 몇 번의 버벅댐 끝에 마침내 너를 만났다. 우린 당시 네가 살던 빌라 건너편 카페에 마주앉았다. 그 시기 너는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고 나는 그런 네 이야기가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너는 이야기했고 나는 들었다. 너의 곤란한 상황에 마음이 많이 쓰이면서도, 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그 시간 자체는 참 달았다.
너랑 이야기를 마치고 카페 앞에서 인사를 나눈 뒤 곧장 편의점에 들러 우비를 사 입었던 것 같다. 아닌가. 우비를 그보다 더 전에 샀던가. 암튼 비닐 우비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만큼 빗줄기는 거세어졌다. 세찬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물에 푹 잠겼다 나온 듯이 쫄딱 젖어 있었다. 너도 나도 가난했고 비가 오면 비를 맞아야 했다. ‘그 소란했던 시절’의 어느 순간을 우린 함께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린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제 네가 다녀갔다.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는 너는, 나의 전시회에 와 나를 만나려고 아침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너의 남자친구도 함께 왔다. 너는 직접 만든 모루 꽃다발과 손글씨 편지를 내게 건넸다.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 얼른 그 편지를 꺼내 읽었다. ‘선생님은 처음으로 저를 있는 그대로 봐 주신 어른이었어요.’라는 문장은 왜 사람을 울리는가.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일 것이다.
어제 전시장에서 나와 중국집에서 볶음밥과 짬뽕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다 기억할 수는 없다. 2017년 7월 28일 그 비 쏟아지던 날 너와 내가 어느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를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닳아 옅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 시각 우리가 함께 있었고, 조금 추웠고, 같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사실은 잊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도 나는 이번 전시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너를 생각할 것이다. 가장 먼 곳에서 나를 찾아와 준 사람.
2017년의 너와 나가 각자의 삶에서 소란했던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처럼 2024년의 너와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소란한 한 시절을 건너고 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린 틈을 내어 서로를 만나고 이 틈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의 힘으로 우리는 이 시절을 무사히 건널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렇게 읊조리겠지. ‘그 소란했던 시절에 그대라는 이름.’
*<그르노블을 생각하면>은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2년 8월호, <소란했던 시절에>는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4년 11월호에 실린 바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