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두려움 너머

by 박현경

*<공동선> 2025년 11-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제목: 오늘 뭐 먹지?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1. ‘포미볶음면’에 고수 ‘듬뿍’

올해 1월부터 전교조 충북지부 전임으로 일하고 있다. 매일 아침 나는 학교가 아닌 지부 사무실로 출근한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수업을 하는 대신, 어려움에 처한 선생님들을 상담하고 교육청에 항의 방문을 하고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쓰고 교육정책을 검토한다. 학교에서 일하는 것과 지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대표적인 공통점은 바로 늘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늘 배가 고프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허겁지겁 입에 넣어 배를 채우기는 싫다. 맛있는 것을 선택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싶다. 내게 먹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출근하면서부터 몹시 궁금하다.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게 될까?


지부 사무실에는 지부장님, 정책실장님, 총무국장님 그리고 사무처장인 나, 이렇게 네 명의 여성이 근무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부장님은 파스타보다는 짬뽕, 짬뽕보다는 쌀국수, 쌀국수보다는 추어탕을 선호하시는 것 같다. 정책실장님은 기름지고 바삭바삭한 튀김, 버거 등을 좋아하신다는 점에서 나와 같지만, 매운 음식을 잘 못 드신다는 점에서는 나와 다르다. (나는 신라면이 심심해서 신라면 레드를 먹는다.) 총무국장님은 기름진 음식, 가공식품 등을 싫어하시고 채소 위주의 건강 식단을 추구하셔서 때때로 사무실에서 우리를 위해 직접 점심을 차려 주실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입맛은 이 글 전체에 녹아들어 있으니 생략하고, 다만 내가 육고기는 거의 먹지 않는다는 점만 밝혀 두기로 한다.


1월부터 지금까지 10개월 정도를 함께 근무하다 보니 이렇게 제각기 다른 취향을 지닌 네 사람 모두가 대체로 만족스럽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 몇 군데가 우리의 단골이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포미쌀국수’다. 맛있고 저렴하며 우리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찾는 식당이다. 홀 서빙 직원을 전혀 쓰지 않고 손님이 스스로 챙겨다 먹고 반납하게 해 착한 가격으로 운영하고 있다.


포미쌀국수에 오면 나는 무조건 ‘포미볶음면’에 ‘고수 추가’를 시킨다. 포미볶음면 7천원, 고수 추가 1천원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분이 고수를 싫어하시는 덕분에 내가 고수를 독차지할 수 있다. 계란, 숙주, 파, 견과류, 매운 고추 등이 어우러진 뜨겁고 쫄깃한 볶음면에 싱싱하고 향긋한 고수 잎을 곁들여 먹으면 오전 동안의 스트레스가 저 멀리 날아간다. 매콤달콤짭조름한 맛에 혀가 위안받고, 텅 빈 듯했던 위장이 따뜻하게 채워져 갈수록, 오전의 날카롭고 뾰족하던 나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한없이 너그럽고 둥글둥글한 내가 새롭게 태어난다.


지부장님은 고기를 듬뿍 추가한 쌀국수를, 정책실장님은 분짜를, 총무국장님은 기본 쌀국수를 드시곤 하는데 식사가 끝난 후 식당을 나설 때면 세 분도 꽤 만족한 표정이다. 집중해 먹느라 흐른 땀을 닦으며 우리 넷은 사무실로 걸음을 옮긴다.



2. 남편의 ‘짜파구리’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온다. 남편도 곧 퇴근해 집으로 온다. 초집중 상태로 하루를 보낸 끝, 몸이 노곤하고 눕고만 싶다. 배만 안 고팠다면 그대로 누워 버렸을 터.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조리를 시작한다. 오늘의 메뉴는 짜파구리. 물을 끓이고 너구리와 짜파게티 봉지를 뜯어 면을 끓는 물에 넣는다. 너구리 면을 짜파게티 면보다 더 먼저 넣어야 한다. 너구리 소스는 절반만, 짜파게티 소스는 한 개를 다 쓴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달구고 대파를 송송 썰어 볶는다. 계란 후라이를 부친다. 내가 반숙을 좋아하므로 반숙 후라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남편이 한다.


완성된 짜파구리를 그릇에 담고 볶은 대파를 고명으로 얹는다. 반숙 계란 후라이도 얹는다. 너무 맛있어 아껴 가며 먹는다. 매콤하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랑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거기에 가끔 씹히는 대파의 진하고 찐득한 풍미가 최고다.

먹은 뒤 설거지는 내가 한다. 이렇게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고 산다.



3. ‘동북볶음요리’의 ‘파기름 건두부’

내가 작년까지 근무했던 음성군 금왕읍에는 ‘동북볶음요리’라는 음식점이 있다. 중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나랑 남편은 이 가게의 찐단골이었다. 우리는 횟수를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자주 이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매번 한국인은 우리뿐이었다. 다른 손님들은 전부 중국인이었다. 가게를 가득 채운 커다란 중국어와 호탕한 웃음소리에 마치 중국에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주문하는 메뉴는 거의 늘 같았다. ‘파기름 건두부’, ‘지삼선’, ‘새우볶음밥’ 그리고 ‘설원’. 간혹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을 때는 (그런 때는 별로 없긴 했지만) 새우볶음밥을 생략하기도 했고, 때로 남편이 고기가 당길 때는 (그런 때는 꽤 있었다) 새우볶음밥 대신 꿔바로우를 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파기름 건두부와 지삼선은 빼놓지 않고 늘 먹었다.


그중, 가지와 감자와 피망을 볶아 만든 지삼선은 여느 양고깃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이지만, 파기름 건두부는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 집에서밖에 먹어 본 적 없는 독특하고 맛깔난 메뉴다. 다른 음식점에서도 건두부를 볶은 요리는 먹어 봤지만 이 ‘동북볶음요리’에서만큼 식감과 풍미가 훌륭한 경우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국수처럼 가늘게 채썬 건두부, 역시 가늘게 썰어 볶은 대파, 간장 베이스인 듯한 소스, 잘게 다진 생마늘, 그리고 고수, 오, 고수의 조화. 담백하면서도 향긋하고 고소하고 또 매콤한 맛에 나는 너무나 행복해지곤 했다.


중국요리를 먹으면서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는 사람은 ‘맛알못’이거나 ‘독한 금욕주의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맛을 아는 쾌락주의자이므로, 이 풍미 있는 음식에 적절한 술을 곁들인다. 내 최애는 ‘이과두주’이지만, ‘동북볶음요리’에서는 아쉽게도 이과두주를 팔지 않아, 매번 ‘설원’을 마셨다. 만족도는 높았다. 도수는 이과두주보다 낮지만, 향긋하고 깔끔하고 좋은 술이다.



4. ‘짬뽕’과 ‘이과두주’

“뭐 먹고 싶어?”라고 누군가 물을 때면 “네가 먹고 싶은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네가 먹고 싶은 게 짬뽕이기를. 혹은 짜장면이나 볶음밥이기를. 그러면 내가 짬뽕을 먹을 수 있으니까.


나는 짬뽕을 좋아한다. 짬뽕을 좋아하지만 그 맛에 대해 뚜렷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짬뽕이면 다 좋다.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에 풍성한 해물, 쫄깃한 면발. 그리고 곁들여 마시는 이과두주.


비 내리는 날의 짬뽕은 언제나 옳다. 이과두주를 곁들인 짬뽕은 더더욱 옳다. 배고팠다 먹는 짬뽕에 이과두주라면 천상의 경험이다. 진한 짬뽕 국물에 125ml짜리 이과두주 한 병은 마주한 이와 약 한 시간 정도의 허물없는 대화이고, 짱짱했던 긴장의 대담한 이완이자, 샘솟는 창작 욕구와 영감(靈感)의 샘이다.

이과두주는 코로 향을 들이마시면서 천천히 혀를 적시듯이 마신다. 원샷하지 않는다. 입을 살짝 축이는 느낌으로 살며시 마신다. 이렇게 하면 그 풍미를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고, 엉망으로 취해 민폐를 끼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독자여, 혹시 내게 밥을 사 주고 싶다면 중화요릿집으로 날 초대해 다오. 값비싼 요리는 필요치 않다. 짬뽕과 이과두주면 내게 최고다. 우리, 비 오는 날에 만나자.



5. 오늘 뭐 먹지?

관건은 삶에 대한 사랑이다. 삶에 대한 사랑에서 힘이 나온다. 삶에 대한 사랑이 말라붙은 채로는 어떤 힘도 낼 수가 없다. 따라서 잘 싸우고 싶으면, 투쟁력을 키우고 싶으면, 우선 내가 내 삶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려면 내가 나를 좋아해야 하고,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해야 하고, 내가 내 일상을 즐겨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중요한 투쟁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일상 속에 재미있고 기분 좋은 순간들을 촘촘하게 길러 나가야 한다. 일상 속 작은 즐거움들에서 삶에 대한 사랑이 자라고, 삶에 대한 사랑에서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에게는 ‘오늘 뭐 먹지?’가 매우 소중한 질문이다. 오늘 해야 할 투쟁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문제다.


*이 글은 글쓴이가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5년 6월호에 게재했던 ‘내가 사랑하는 음식’을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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