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자

두려움 너머

by 박현경

* ‘공동선‘ 2026년 1-2월호 ’두려움 너머‘ 꼭지 게재 글입니다.

* 이 글은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쓴이의 글 ‘내 남자 이야기’를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힙니다.


제목: 나의 남자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1. 격렬한 섹스 후에 그 남자가 말했다. “나랑 살아 줘서 고마워요.” 나는 대답했다. “고맙긴요. 이건 당신이 밑지는 일이에요.” “아니에요. 나랑 살아 줘서 고마워요.” “아니, 이건 백 퍼센트 당신이 밑지는 일이라니까요.”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자, 나는 고지(告知)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내가 하자(瑕疵) 많은 인간이란 걸 당신한테 분명히 밝혔습니다. 나중에 속았다며 원망 말아요.’ 2015년 어느 날이었다.

2.

2025년 현재, 나는 여전히 그 남자와 살고 있다. 그에게 지난 10년은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빈말이 아닌 온전한 사실적시(事實摘示)였음을 숱한 체험을 통해 깨닫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 ‘숱한 체험’의 가벼운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발을 굴러 가며 그에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린 일들 중 그가 정말로 뭔가를 조금이라도 잘못했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전부 단지 내가 배가 고팠거나 혹은 생리 전날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나에 대해 사랑만 가득한 그를 나는 그렇게 마음 아프게 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이런 게 있다. 나는 수도 없이 여러 번, 친구들이나 동지들, 지인들과 술을 퍼마시다가 그에게 전화해서 나를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경계를 넘어 꽤 먼 곳에서도 그랬다. 이를테면 서울. 그가 퇴근 후 청주에서 서울까지 차를 운전해 나를 데리러 와 만취 상태의 나를 태우고 다시 운전해 청주까지 내려온 일이 몇 번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를 위해 주는 남편이 있다는 게 몹시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그가 얼마나 피곤할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우울증이 심해져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하루 열여덟 시간씩 잠을 자던 기간이 있다. 나는 휴직 중이었고, 무기력이 심해져 청소고 뭐고 평소 루틴처럼 하던 일들을 전부 다 때려치운 상태였으니 당연히 집안 꼴은 엉망진창이었다. 당시 그는 편도로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운전해 출퇴근하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내가 힘든 것만 생각했지 그의 하루가 얼마나 고될지, 그의 마음이 어떨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밖에도 나는 사고를 여러 건 쳤다. 그 중에는 너무 중대해서 여기에 차마 적을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동안 그가 나에게 잘못한 일은 단 한 가지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그에게 눈꼽만큼도 섭섭한 일이 없다. 어마어마한 불균형이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밑졌다. 지금도 그는 밑지고 있다.

3. 찬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같은 계절이면 내 맘속에 반복 재생되는 장면이 있다. 늦은 저녁, 현관문이 열리고, 바깥 찬 공기를 온몸에 머금은 채 그가 집으로 들어온다. 이제부터 나하고 같이 쉴 시간이 너무 기대된다는 듯 두 눈엔 신나는 기색이 가득하다. 그의 뺨과 입술은 차고 통통하다. 거기에 내 따뜻한 뺨과 입술을 비빈다. 뭔가 묵직한 걱정거리에 골똘했던 내게 그의 명랑함이 뺨을 통해 전해진다. 어린 소년 같은 그의 싱싱함에 나는 내 불안과 우울을 잊는다. 그렇게 수많은 저녁을 함께하며 어느새 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너무 그의 속을 썩여서, 소년처럼 싱싱하던 그가 예전보다 어두워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4.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사랑하는 낭군님, 겨울휴가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이제 슬슬 정할 때가 왔어요.” “네, 생각해 볼게요.” 아침 출근길에 나의 남자와 이런 카톡을 주고받고 나서,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그이는 아마도 일하다 틈을 내, 통통하고 귀여운 손가락으로 볼펜을 집겠지. 이면지 위에 날짜와 요일을 적으며 휴가 계획을 세우겠지. 그의 삐뚤빼뚤 중학생 같은 글씨를 떠올리니 자꾸 눈물이 흘렀다. 지난 십 년간 그 삐뚤빼뚤한 글씨로 그가 내게 정성껏 써 준 모든 편지와 엽서들이 한꺼번에 가슴에 몰아쳤다.

“왜 그를 울렸니? 왜 그를 마음 아프게 했니?”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묻는 듯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때문에 꺼이꺼이 서럽게 울던 날, 그이는 그 통통하고 귀여운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겠지. 아프게 아프게 눈물이 솟았겠지. 수천수만 번 미안하다고 해도, 내가 준 상처를 만회할 순 없겠지. 그래서 나는 속절없이 울었다. 야근하는 저녁, 나의 남자가 보고 싶어서, 나는 울었다. 그렇게 울며 야근을 하고는 몹시 앓았다. 다음 날 출근하지 못할 만큼 앓았다.


5.

지난 11월 18일은 우리의 열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수년 전부터 ‘우리 십 주년 때는 오마카세 가자’며 별러 왔지만 정작 이날이 다가와서는 우리의 지갑도 시간도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날 나는 퇴근해서도 계속 아이패드와 두꺼운 책자를 펴 놓고 일을 해야 했고, 그는 퇴근 후 친구들과 테니스 약속이 있어서 밤 아홉 시 반이 넘어 들어왔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한 ‘중간 맛 신전떡볶이’랑 김치참치김밥, 그리고 모듬튀김과 함께였다. 우린 마주앉아 천천히 음미하며 맵고 기름진 만찬을 즐겼고, 그날 각자 겪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나 소중한 저녁이었다. 그 소중한 저녁을 보내며 나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저녁들이 늘 이렇게 도란도란 다정하고 무해하기를 기도했다. 그는 이미 나로 인해 밑져도 아주 어마어마하게 밑졌으므로.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상처를 줄 권리가 조금도 없으므로. 따라서 우리의 저녁은 이제 그렇게 영영 안온해야만 할 것이다. 그 다정하고 무해한 저녁들을 통하여, 그에게 그 소년 같은 싱싱한 웃음을 되돌려주고 싶다.

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라고 했다.

나의 남자는 무신론자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 너무도 깊고 크다. 내가 사랑하는 이 무신론자에게서 나는 사랑을 배운다. 사랑이란 게 어떤 것인지 그를 통해 체험한다.

7.

비록 내가 그동안 사고도 많이 치고 그의 속도 많이 썩였지만, 단 한 번도 변치 않았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사실이 있다. 나는 그의 뺨을 어루만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림: 박현경, <깊은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