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매미 Feb 28. 2022

그렇게 우리는 식구가 됐다

    몸살 날 정도로 고민하게 되는 날이 있다. 내겐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그날 나는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직접은커녕 사진으로도 본 적 없는 어느 아깽이. 우리 집에서 오래 전부터 한 식구로 살고 있는 왕순이 말고 또 다른 고양이 이야기다.
     바로 전날인 11월 16일 월요일 오후, 우리 반 M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하교하고 싶다고 내게 허락을 구했다. 10반 친구 Y와 함께였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이는 것을 목격하고 구조해 신고하자 시청에서 데려갔는데, 현재 그 고양이는 골반이 부러진 채 반려동물보호센터에 있고, 데려가 치료시켜 키울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서 이런 경우 치료비를 지원해 준다는 걸 알게 되어 일단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카라에 지원을 신청하는 한편 임시 보호나 입양을 하실 분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나는 M과 Y에게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어서 가 보라고 힘껏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응원해 주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인 11월 17일 화요일 아침에 M을 보자마자 “어제 고양이는 어떻게 됐어?”라고 물었고 피하고 싶은 어두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반려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동물은 입양을 전제로 해서만 나갈 수 있는데 M과 Y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자격이 안 되어 고양이를 데리고 나올 수 없었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단다. 또한 고양이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 그날 밤에라도 안락사될 수 있다고 했단다. 차에 치여 도로 중앙선 쪽으로 내동댕이쳐진 고양이를 한달음에 달려가 맨손으로 구한 M이었지만, 또한 그런 M의 연락을 받고 출동해 고양이 살리기에 함께 발 벗고 나선 Y였지만, 성인이 아니어서 고양이의 치료를 시도할 가능성조차 딱 막힌 현실 앞에 너무나 큰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M은 센터에서 펑펑 울다가 나왔고, 고양이를 그냥 죽게 놔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토요일 저녁에 시청에서 데려간 고양이가 어떤 이유에선지 월요일 오전에야 보호 센터로 이송됐던 점에 대해서도 속상한 맘을 털어놨다. 차에 치여 뼈가 부러졌는데 아무런 치료도 못 받고 케이지에 차갑게 방치됐을 어린 생명체를 생각하니 나도 화가 나 눈물이 솟았다. 무섭고 슬픈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그 고양이는 어젯밤 죽었을까? 아니면 고문당하는 듯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까? 그리고 내 안 깊은 데서 이런 말이 떠올랐다.
     ‘나는 성인이잖아. M이랑 Y는 미성년자라서 고양이를 못 데리고 나왔지만, 나는 성인인데……?’
     그렇게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정말 고생 많았구나. 마음 아프겠다. 듣는 나도 너무 속상하네. 그렇지만 너희는 최선을 다한 거야.”
     힘겹게 대화를 마무리 짓고 돌아섰지만 내게 이 일은 이미 남의 일이 아닌 게 되어 있었다. 금세 뒤돌아서 M에게 상황이 어떤지만 알아보겠다며 반려동물보호센터 전화번호를 받아 교무실에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반려동물보호센터에 전화를 했고, 직원분으로부터 고양이가 아직 살아있으나 데려가 치료할 사람이 없으면 ‘인도적 조치’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고양이가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을지, 아니면 데려다 치료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의 상태인지 센터에 계신 수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듣고 싶다고 요청했다. 삼십 분쯤 후 직원분이 내게 다시 전화해 전해 주신 수의사 선생님 말씀은 고양이의 골반 두 군데에 골절이 있다, 그런데 어제에 비해 상태가 나아졌고 치료를 받는다면 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배변이나 보행 장애가 있는 장애묘로 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런 경우 대략 병원비가 어느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지도 귀띔해 주셨다. 한 번 데려가면 절대 재입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와 함께. 직원분께서 예상치로 말씀해 주신 치료비는 우리 형편엔 큰돈이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아……. 솔직히 경제적인 면이 부담돼서요. 조금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수화기에 대고 이런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센터 직원분은 내일 아침까지 입양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하셨다.
     지끈지끈 아픈 머리로 동물보호단체 카라에도 전화를 해 봤다. M이 전해준 것과는 상황이 사뭇 달랐다. 올해의 시민 구조 지원 사업은 예산 소진으로 이미 종료된 상태였다. 도와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고 했다. 학교 옥상 가는 길목에서 통화를 했는데, 통화를 마치고는 거기 주저앉아 혼자 울었다. 왜 그런지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카라에서도 도움 받을 길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고양이를 센터에서 데리고 나오는 순간부터 내가 고스란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게 실감났다.
     남편에게 전화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갑작스럽고 장황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고 나서, 남편은 전적으로 내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고양이를 입양하는 것까지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마음만으로 끝낸다고 해도 각시님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반대로, 걔를 입양해서 치료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해도 괜찮아요. 같이 해결해 나가면 돼요. 어떻게 결정해도 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각시님이 가장 마음 가는 쪽으로, 최대한 각시님 좋은 쪽으로 결정했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고마웠다. 하지만 고민은 계속됐다. 내 마음이 뭔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만일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또는 걔가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면? 오히려 걜 데려온 걸 후회하게 되진 않을까? 한때의 감정에 휩쓸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 결국 돈 걱정 때문에, 돈 아까워서 한 생명을 포기하는 게 맞는 일일까? 물론 세상의 수많은 다친 길고양이들을 다 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고양이만큼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왕순이랑 함께 살면서 동물과 인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얼마나 신중히 결정해야 할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결코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모든 생각들과 함께 나를 괴롭힌 건, 14년쯤 전 나 역시 차에 치여 골반 두 군데가 부러졌었던 바로 그 기억이었다. 구급차에 실려 갈 때 차가 덜컹거리는 순간마다 뼈마디를 울려오던 통증. 병원에 도착해 어디가 어떻게 부러진 상태인지도 모른 채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눕혀지던 때의 공포와 아픔. 바로 그 기억이 자꾸만 밀려와 얼굴도 모르는 이 고양이에 대해 감정 분리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지금도 그 조그만 생명체가 겪고 있을 공포와 통증이 머리도 가슴도 아닌 바로 내 골반, 내 내장에 전해져 나는 무섭고 아팠다. 그래서 몹시 눈물이 났다.
     하루 종일 줄곧 고민한 끝에 겨우 얻은 결론은 ‘일단 한번 직접 가서 보자!’였다. 남편에게 전화해 오늘 퇴근 후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택시를 타고서 센터에 가 보겠다고 했다. 고양이를 직접 보고 수의사 선생님도 직접 뵙고서 말씀을 들어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올 거 같다고. 잠시 후 남편이 다시 내게 전화해 말했다.
     “가게 문 일찍 닫고 차 렌트해서 학교 앞으로 갈게요. 우리 같이 가요. 조그만 박스도 하나 갖고 갑시다. 가서 고양이 보고 그냥 두고 올 수 있겠어요?”
     그 순간 기적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확실해진 것이다.
     퇴근 시간이 되어 교무실을 나서는데 M과 Y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M이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전화해 보시니까 센터에서…… 뭐래요?”
     이 질문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용기를 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대답을 할 수 있기 위해 하루 종일 용기를 내야 했던 것이다.
     “으응, 고양이 살아 있대. 지금 선생님이 가 보려고.”
     순간 M은 오열했다. 울면서 거듭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나도 또 눈물이 났다.

     한 시간여가 지났을 때 나는 남편과 함께 반려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 확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봉순이는 우리 식구가 됐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