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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Dec 19. 2022

감았던 눈을 와짝 뜰 때

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2년 12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윤동주, <눈 감고 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한 명상을 하고, 뜨끈한 두유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고양이들 아침밥과 물을 챙겨 주고, 고양이들 화장실을 청소해 준다. 요가원에 가는 날은 요가를 하며 땀을 흠뻑 흘리고 집에 와, 천천히 점심밥을 지어 먹는다. 요가복을 빨아 널고 오후 작업을 시작한다. 요가원에 가지 않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작업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시간이 남으면 걸어서 남편의 카페에 간다. 차 한 잔을 홀짝이며 전시 준비 일을 한다. 아침, 저녁, 밤마다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스스로가 많이 평온해졌음에 감사한다.

     휴직 중인 나의 일상.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가슴이 저리다. 깨뜨리고 싶지 않은 안온함이다. 그러나 이 안온한 이불 속에만 푹 파묻혀 밖에서 누가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진정한 평화일까.


     세속의 모든 일들에서 몸과 마음을 끊고 진정 자유롭고 진정 평화롭게 살겠노라 마음먹은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정치는 관심을 끊어야 할 지저분한 일로 여겨졌고,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한 채 분노에 휩싸인 이들로 여겨졌다. 오래 전 일이다. 그때의 내 자신이 진심으로 부끄럽다.

     내가 수도원과 성당에서, 미사와 책들 속에서 그토록 목마르게 찾아 헤매던 하느님, 그분이 바로 거리에 계시고 사람들 사이에 계신 걸 늦게서야 알아보았다. 국가가 제 할 일을 하지 않아 춥고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 국가가 공권력으로 짓밟은 이들, 자본의 논리 속에 위험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그들의 일이 도무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 안온한 일상의 루틴을 깨고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나가게 되었다.

     10.29 참사로 희생된 분들에게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분들에게도, 故 백남기 농민에게도, 故 김용균 노동자를 비롯해 노동 현장에서 참사를 당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깨뜨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일상이 있었을 것이다. ‘밤이 어두’운 가운데 삶이 더 춥고 더 팍팍해진 모든 이들에게, 지키고 싶은 따스한 삶이, 소박하고 안온하고 따스한 삶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소중한 일상, 소박하고 안온하고 따스한 삶을 살아갈 때 이 이웃들을 떠올리고 이 이웃들과 함께 분노하게 되는 이유이다.


     윤동주 시인이 시에서 말했듯, ‘밤이 어두웠’기에 ‘눈 감고 가’는 시대이다. 여기서 ‘눈 감고 가거라’의 의미를 나는, ‘의연하게 가라, 내면의 힘으로 가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라고 했다. 오늘 내가 이웃과 연대하기 위해 하는 조그만 일 하나하나가 바로 ‘가진 바 씨앗을 뿌리’는 행위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감았던 눈을 와짝 떠’야 할 시기이다. 발부리에 차이는 돌이 너무나 사납다. 사나운 돌에 차인 발부리가 뼛속까지 아프다. 10.29 참사 희생자 유족분들의 뼈아픈 절규가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말해 준다. 슬프다고, 심란하다고 외면하며 내 일상의 안온함만을 챙길 때 나는 비극이 되풀이되는 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일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감았던 눈을 와짝 떠’야 할 때, 눈을 뜨고 연대해야 할 때, 조그만 몸짓으로라도 행동해야 할 때. 오늘 나의 일상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2」

10.29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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