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이랑 세상 읽기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3년 7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그러게 선생님이 잘 다독여 주셨어야죠!……”
A 학생 어머니의 날 선 말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대답할 겨를을 찾기 어려웠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심장이 쿵덕거렸다. 금요일 퇴근 무렵이었다. 그 주말 내내 A네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웃으며 A를 마주하는 데 참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취약하던 시기였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과 뿌리 깊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고, 흉부에 원인 모를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고, 아무 때나 눈물이 주룩 흐르곤 했고,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엔 그냥 확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버릴까 하는 충동마저 느끼던 때였다. A네 어머니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 몰랐을 것이다. 나랑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었으니까.
B 학생의 어머니는 유독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으셨고, 문자에도 전혀 답이 없으셨다. 당시 나는 늘 마음이 바빴고, 그런 와중에 B의 진학과 관련해서 혹은 B의 결석이나 조퇴와 관련해서 보호자와 연락할 일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락이 안 되니 짜증스러웠다. 아마도 그 짜증스러움이 내가 B에게 하는 말들에 묻어났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B는 언제나 나에게 공손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성인이 되어 나를 찾아온 B는 털어놓았다. 그 무렵 어머니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셨노라고. 어떤 연락도 받기 힘든 상황이었노라고. 나는 B의 어머니가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무렵 B네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찍힌 여러 통의 부재중전화와 이어서 도착한 안내 문자 메시지는 그분께 얼마나 폭력적으로 느껴졌을까.
2023년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C 씨는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년 차 여교사였던 C 씨는 학부모에게서 걸려 오는 전화들로 힘들어했고, 동료 교사에게 ‘학급 운영을 하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10배 더 힘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C 씨의 사촌오빠에 따르면 C 씨의 일기장에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너무 지칠 대로 지쳐 있다’는 내용과 ‘갑질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7월 21일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전국에는 C 교사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으며, C 교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간 원인을 추측하거나 분석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만가만 생각해 본다. C 교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의 동료들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들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생각해 보면, C 교사에게 여러 통의 전화를 한 학부모는 C 교사의 마음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서 덜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일부 교원 단체는 ‘과도한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힘드니 학생 인권을 제한하자는 논리는 다시 말하면 ‘내가 힘드니 나 대신 너를 힘들게 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의 관계는 내가 이기면 네가 지고 내가 지면 네가 이기는 파워 게임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문제의 원인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상처 주기 쉽게 만드는 ‘구조’와 그런 구조 속에서 유난히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 이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구조’를 꼼꼼히 살피고 고쳐야 한다. 이를테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의 개인 핸드폰 번호 노출 금지를 제도화하고, 근무 시간 이외에는 교사에게 연락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앞서 기술한 나의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일 수 있는지 모른 채 어떤 이는 나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나는 누군가를 짜증스러워했다. 그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황들이었나.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잘’ 대해야 한다. 서로가 마치 얇은 유리잔인 것처럼, 조심해서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부서지기 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