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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Aug 21. 2023

바닥과 소통

현경이랑 세상 읽기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3년 8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의 ‘너’는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난 누군가일 수도 있으며,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비밀에 싸여 있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연결과 소통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말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세월호 참사나 10.29 참사 유가족들처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며 두 눈 부릅뜨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분들의 아픔을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에서 읽힐 수 있는 ‘네가 보고 싶어서’라는 주제로, 간절하게 ‘너’를 그리워하고 결연하게 행동하는 어떤 눈빛과 몸짓들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저마다 자기만의 어떤 그리움, 어떤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관람객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작가의 말’을 내걸고 개인전 ‘네가 보고 싶어서’를 열었다. 내가 여는 다섯 번째 개인전이었다. 8월 8일부터 8월 13일까지, 전시 기간 동안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고 응원의 메시지를 주셨다. 전시를 마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이 일은 어떤 의미였나 되돌아본다.


     전시할 작품들을 모두 완성해 액자 제작을 의뢰하고, 전시장 도면 위에 제목을 적어 가며 그림들을 배치할 때, 가슴은 두근두근 기분 좋게 뛴다. 그리고 전시 설치 날, 작품들을 옮기고 거는 육체노동으로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가운데, 서서히 솟아나는 기쁨이 있다.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공간이 드디어 물리적으로 구현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처럼 개인전을 연다는 건 내가 창작한 세계를 활짝 펼쳐 보이는 기쁘고 즐거운 일인 한편, 꽤나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간 내가 창작해 온 작품들을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다는 건, 나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 감정의 바닥, 내 사고(思考)의 바닥, 내 실력의 바닥, 그 모든 한계들이 발가벗은 채 전시장 환한 조명 아래 나란히 걸려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발가벗은 내 한계들이 묘한 화음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노래는 다른 사람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를 수 없는, 그렇기에 ‘더 잘’ 부른다고도 ‘더 못’ 부른다고도 할 수 없고 그냥 ‘부른다’라고만 할 수 있는, 바로 나의 노래다. (다른 이들에게는 각자 자신의 노래가 있을 것이다.)


     나의 노래인 이 개인전을 보며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 속내를 드러내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건 아마도 나의 노래가 나 자신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이 세상의 마음 아파하시는 분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하며 안도했다. 나의 길이 잘못되지는 않았구나.     


‘보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요즘 많은 소식들을 접하며 밑도 끝도 없는 슬픔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 슬픔을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했습니다. 
′천사′는 눈물을 흘리기에 천사구나. 전시를 보고 나니 나의 괴로움이 쓸모없는 것 같지 않아졌습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음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무의식 속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대상들을 떠올려 봅니다. 침묵으로 그림을 응시하며 그리운 대상과 대화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절한 슬픔, 그리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지만, 그림을 보면서 왜 이리 마음이 아린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연대와 연결의 힘을 믿는 작가님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전시를 관람한 뒤 남겨 주시고 간 쪽지들을 하나하나 펼쳐 읽으며 나는 또 가슴이 설레고 사뭇 두렵기까지 하다. 이 귀하고 순수한 문장들을 받아 삼킬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나는? 그리고 동시에 기쁘고 또 기쁘다. 과분하다 여겨질 만큼의 공감과 지지를 선물로 받았구나.


     관람객분들의 쪽지들을 모두 다 읽은 후 다시 작업대 앞에 앉는다. 새로운 의욕이 샘솟는다. 나는 계속해서 세상의 우는 이들과 함께 울며 작업하고 싶다. 그 작업은 내 바닥이 다 드러나는 노래,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어 내년이나 내후년쯤 또 전시장을 채우고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두려움을 직면함으로써, 소통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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