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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앤 May 21. 2023

히쓰잔 공원

고치시가 더 좋아진다

히로메 시장에서 너무나 맛있는 것들로 배를 잔뜩 채운 뒤 술도 깨고 먹은 칼로리 들고 소비하고 싶어 걸었다. 목적지는 며칠 전에 고치시의 지도를 볼 때 제일 큰 공원으로 보이던 히쓰잔 공원이다. 가보고 싶었다. 나는 어떤 도시를 가면 그 도시의 가장 큰 공원을 늘 가보고 싶어 한다. 그곳에 가서 버스킹을 할 수 있나 점검도 하고 싶었다. 지도상의 규모로 보아선 상당히 크게 보였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그곳을 향해서 포만감으로 가득한 몸을 이끌고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편도 36분. 이 정도면 그냥 식은 죽 먹기다. 나야 걷다 자주 멈춰 사진을 찍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공원을 향하는 길이 어느 마을이 끝나는 지점즈음에서 산길로 접어들게 되어 있다. 입구는 제법 넓어 차들도 올라다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잠깐 멈췄다. 아니 이거 공원이 산에 있나? 도심 한복판에 있지 않고? 이거 올라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내가 너무 큰 도시 위주로 다니면서 도시 한복판에 있는 공원들에 익숙해져 있나? 그러나 매번 뉴욕의 센트럴 파크만 만날 수는 있는 건 아니니 그래 가보자 하며 잠시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다. 간간히 아름다운 새소리들이 들린다. 이거 계속 가는 게 맞나? 또 그런 생각이 들 때 마침 방향이 바뀌며 저만치 앞 쪽에서 한 남자가 걷고 있다. 사람이 있으면 반가울 줄 알았는데 성인 남자가 있는 건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아니 안도가 안된다. 다시 내려갈까를 또 생각하고 있는데 직진 본능인 나의 발은 계속 앞으로 걷고 있다. 다행인 건 간간히 차들이 지나친다는 것이다. 그래, 일단 좁고 어두운 산길이 아닌 아주 넓고 2차선의 환한 도로니 또 사람도 걸어가는 길이니 그래 가보자 하고 계속 걸었다.


산새 소리가 참으로 청명하다. 커다란 나무들도 아름드리다.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운치 있고 상쾌하기는 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중년 또는 노년의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이다. 그들 아니고서야 저런 음악 소리를 낼 일이 없기 때문이다. 6,70년대 다방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그런 음악이다. 여기 고치시는 음악도 오래되었네라며 나는 웃었다. 어떤 건물에서 그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길래 다가가 보니 무슨 문회회관이라고 쓰여 있다. 문화회관이 산속에 있어? 여러모로 독특한 고치시다.


하기야 저런 트럼펫이며 커다란 소리의 악기들을 연습하려는 공간으로는 이곳이 딱이다 싶다. 연습 중인지 조금 연주하다 뚝 끊기고 또다시 반복해서 그 부분을 연주하다 딱 끊기고. 뭔가 잘 안 맞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누군가 질질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 아마 나도 저런 짓 많이 했을 듯하다. 부지런히 연습들 하셔라. 그래서 실력을 기르는 수밖엔 달리 그 어떤 방법도 이 세상엔 없을 테니.


하여튼 그런 건물과 음악을 만나고 나니 훨씬 마음이 누그러들며 이젠 됐다 싶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서움이 사라진 영혼엔 희망과 자유와 환희로울 준비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벚나무에 핀 저 벚꽃의 색깔 좀 봐라. 산속에 있는 벚나무들은 그 존재 자체가 발광이다. 얼마나 곱고 품위 있고 고상하던지. 색깔 치유라면 저런 색으로 할 일이다. 벚꽃 사진 찍느라 한참을 거기서 놀다 또 올라간다. 아직도 16분이나 남았다고 나오니 도대체 이 히쓰잔 공원이라는 것은 산꼭대기에 있는 것인가? 무슨 공원이 산꼭대기에 있나? 하기야 부산의 용두산 공원도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다리도 아프고 숨은 차고, 걸어 올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쯤에서 끝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또 든다.


날은 더워서 하나씩 벗은 옷은 이미 거추장스럽게 짐이 되어 버린 상태다. 이런 날 산을 올라야 맞나 하는 생각이 자구만 나를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이미 반은 더 올라왔고 여기서 내려가자니 언젠가 한 번은 와봐야 히쓰잔 공원을 왔다감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래 그냥 올라가자며 나를 다독여 앞으로 걷게 했다. 다행히 가는 도중 한 번씩 예쁜 벚나무와 근사한 동백나무가 화려한 꽃으로 나를 겪려 해 준다. 그럼 또 나는 마구 사진을 찍어대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나의 곳곳을 생기로 채운다. 꽃의 에너지가 주는 생기로.


고불꼬불길의 정점을 지나자 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까지 차가 올라올 수 있고 그 위로는 걸어가야 되나 보다.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앞쪽에 벤치들이 놓여 있다. 아 잘됐다. 벤치에 앉아 좀 쉬어야겠다 하고는 벤치 쪽으로 갔다. 그러다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나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다니! 고치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가히 장관이었다. 그 앞에는 벚나무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지형으로 전체가 산으로 빙 둘러 쌓여 있는 고치시의 풍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도시의 곳곳에 몇 줄기 강이 기다란 줄기를 이루며 흐르고 있는 모습도 이 풍경의 아름다움에 한 몫한다.


이 전체적인 풍경을 한눈에 바라보게 되어 있는 이 히쓰잔 공원! 내려갈까 말까를 몇 번이나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내려갔으면 영영 못 보고 말았을 이 풍경들! 그래서인지 더욱 큰 감동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감탄과 행복함과 기쁨과 감사함 같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상황. 그렇게 아름답고 속 시원한 풍경에 흠뻑 빠져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런 곳에서 노래를 하고 싶은데 악기도 없고 아쉬웠다. 아니다 내 목소리라는 악기가 있는데 왜? 하며 나는 노래를 한 자락 부르기로 했다. 다행히 사람들이 없어서 좋았다.


악기를 가지고 노래할 때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냥 입으로만 노래하려니 조금 쭈뼛거려지긴 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부르지는 못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평소 즐겨 부르던 이은상시 홍난파곡의 가곡 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마소 타고  다시 타서 재될법은 하거니와 ” 행복한 감정이 물밀 듯 밀려온다. 나는 이렇게 노래와 함께할 때 나의 행복이 가장 크게, 화사하게 꽃처럼 핀다는 걸 안다. 흔히 말하는 찐으로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렇게 놀고 있다 보니 이곳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공원임을 알겠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고는 다시 내려가곤 했다. 그러나 나처럼 걸어 올라온 사람은 없고 모두들 차를 타고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지도상으로 히쓰잔 공원이 아직도 9분이나 더 올라가야 된다고 나와서 살짝 망설였다. 그러나 푹 쉬고 나니 에너지도 회복되길래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여기서 너무나 아름다운 장관을 만났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가봐야 한다 싶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좁고 습한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어떤 할아버지가 내려오며 나에게 곤이치와 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일본에 와서 상당히 상냥하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는 때가 있다. 바로 이런 때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태에서 곤이치와라든지 또 다른 인사말로 일본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넬 때 나는 당황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사람들처럼 일본 사람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건 매우 낯설다. 내가 생각하는 동양의 일본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의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할 때 나는 무방비 상태라 어떻게 행동을 하든 부자연스러움이 끼어든다. 더군다나 바로 인사를 하려 하는데 곤이치와, 하이, 안녕하세요 들이 섞이며 꼬여서 말이 빨리 나오지 않는 바람에 정신 차려 곤이치와 하고 인사하고 나면 적당한 타이밍에서 왠지 조금은 오차가 나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조금은 무뚝뚝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러면 내가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무뚝뚝하다고 느낀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도 이런 상황이었으려나? 나처럼 상냥한 사람이 모르는 자신에게 인사를 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즉 방심한 상황에서 재빨리 들어오는 인사공격을 민첩하게 방어하며 맞대응으로 인사를 하지 못하는 그런 거?

하여튼 나는 일본에 와서 언어를 일본어 마인드로 장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에게는 같은 동양인 외모의 사람이라 일본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나는 엄연한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랬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럼 왜 먼저 할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이방인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나를 향해 있었고 그들을 향해 열려 있는 건 계획에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알아가고 교류하는 그런 류의 여행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렇게 인사하고, 그래도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하니 이젠 제법 민첩해져 곤이치와 라는 인사말이 쉽게 잘 나왔다. 그리고는 이렇게 사람이 오르는 길이니 안심하며 가도 되겠지 하고는 계속 올라갔다.


드디어 도착했다. 히쓰잔 공원. 그러나 꼭 대기까지 올라와 보니 어머나 이게 뭐람?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주 조그마한 원형의 공원, 중간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중심에 서있고 앞 쪽엔 전망대라고 만들어 놓은 철재 계단이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서는 더 실망만 했다. 전망이 아래쪽에 있는 벤치에서 본 것보다 훨씬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대형 벚나무만은 볼 만했다. 아름다운 벚꽃이나 실컷 감상하고 내려가면 된다. 오늘 히쓰잔 공원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더 이상 고치시의 그 어느 것도 안 봐도 되겠다 싶을 만큼 그렇게 만족스러웠다. 고치시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어딘가를 추천하라면 무조건 여기를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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