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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앤 May 21. 2023

고치성과 히로메 시장

가다랑어 타다키, 무조건 무조건이야

고치시의 일기 예보는 정확했다. 고치시의 셋째 날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맑을 거라는 예보 그대로 화창한 아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축축하지 않은 공기를 흠뻑 맡으며 기지개를 켠다. 마음이 바빠온다. 일주일 내내 비 예보인데 이 날 하루만이 비 오지 않는 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 그래서 일찍 서둘러서 호텔을 나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고치시에서 지낸 5일 동안 비가 왔던 둘째 날을 제외하곤 모두 맑았다. 분명 매일 아침 예보상으론 비가 온다고 하는데도 날은 낮이 될수록 화창하니 맑아 기분 좋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화창한 날씨라 발걸음도 덩달아 신난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은 이미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확정 지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날씨 요정술을 제대로 부려볼까? 하며 신나게 길을 나섰다. 어느 쪽으로 갈 건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그냥 그때의 기분에 따라 정해진다. 오늘은 왼쪽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리를 건넌다. 여기 고치시는 우리가 한강을 끼고 있는 것처럼 강과 여러 갈래의 강인지 천인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여러 줄기의 물줄기를 끼고 있어서 웬만큼 가는 데마다 물이 흐르고 있다. 시내 곳곳에.


기후도 온화한 데다 강을 끼고 있고 시원스러운 야자나무가 일렬로 심어져 있는 풍경은 가히 낭만적인 섬으로 여행온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켜 준다. 오늘은 고치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구경꾼 모드로 지내보기로 한다. 모든 것이 다 촬영감이다. 맘에 드는 풍경들을 하나둘씩 찍어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제법 큰 제방을 따라 곧장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허름하고 초라한 노인들을 종종 만난다. 노숙인들도 보인다. 쓰레기 처리 상태가 일본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고치시,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랐던 풍경이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일본 같지 않은 풍경들이 낯설기도 하다.


에히메 현을 거쳐와서인지 그곳과 자꾸 비교가 된다. 그곳이 우리에게 알려진 일본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 재현하고 있다면 여기 고치시는 그 룰을 벗어나기 시작한 한마디로 제멋대로 고치시 같은 느낌이다. 에히메 현에서는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단연토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고치시에 와서는 그냥 일상으로 보게 된다. 봉투에 담아 버리는 쓰레기도 마쓰야마시의 경우는 밖에 내놓더라도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그물망으로 덮어놓던데 여기는 그냥 내다 버리고 끝이다. 한국이랑 똑같은 모습이다. 처음에 고치시를 걸을 때 한국의 부산 남포동 거리 어딘가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쭉 아래로 내려가다 구글 지도를 켜보니 고치성이 가까이에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날에 고치시의 자랑일 텐데 고치성을 안 가보면 안 되겠지. 당장 고치성으로 향한다. 고치성은 아래에서 보이는 외관이 어찌 좀 초라해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마쓰야마성을 이미 본 탓인가? 그래도 일단은 올라가 본다. 고치성 돌담에 낀 이끼들이 세월의 오래되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응달부근에 있는 성벽을 다 뒤덮고 있던 초록의 이끼들과 콩처럼 생긴 둥근 잎의 식물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라기보다는 징그러움으로 다가와 그 흔하디 흔한 나의 감탄사 하나가 안 나왔다.


그런데 고치성은 아래서 올려다보던 외관의 비주얼보다는 실제 안으로 들어와서가 진가를 발휘했다. 목조건물의 안이라서 그런지 들어서는 순간부터 서늘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선선함, 시원함,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시원함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오. 상당히 기분이 좋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좁고 경사가 가파른 나무 계단, 이 계단도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딛고 올랐다 내렸다 했는지 닳아서 반들반들해져 있다. 그 계단을 올라 제일 꼭대기 층에 이르자 그동안 멈춰있던 나의 감탄사가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사면으로 뚫려 있는 성의 꼭대기 층. 고치시 전체를 동서남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한 바퀴를 돌며 고치시 전체를 둘러보는데 장관이었다. 좀 쉬고 싶어서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내장까지 시원해진다. 오장육부가 다 시원해진다는 표현처럼 정말 시원했다. 그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손자들을 데리고 올라온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대여섯 살 정도 보인다. 일하는 엄마와 아빠 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고치성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 것이겠지.


그 모습이 예쁘면서도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남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사진 담당이신가 보다. 아이들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주신다. 그리고는 내려가는데 아이들 중 하나가 내려가는 게 무섭다고 울상을 하며 울먹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내려가는 것도 가파르고 위험해 보이는데 저걸 어쩌나 싶다. 뒤뚱거리는 듯 느린 걸음으로 할아버지가 먼저 내려가 중간에서 아이들을 잡아주고 위에서는 할머니가 아이들을 천천히 내려보낸다. 모두 슬로 무비 속 장면처럼 시간이 흐른다.


노인과 어린이의 동고동락. 이런 모습들일 것이다. 그래도 이 어린이들은 얼마나 복 받은 건가 싶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과 동고동락이라니, 그것도 상당히 복 받은 인생, 커다란 감사함일 것이다. 그렇게 고치성에서의 여유롭고 시원한 시간을 보내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왔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그런 고민할 필요 없다. 고치성에서 내려오면 바로 고치시의 명소랄까 히로메 시장이 딱 마중해주고 있으니까.


히로메 시장은 평일 낮시간대에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매우 활기찬 곳이다. 그러니 주말이나 야간에는 어떠할지 상상이 안된다. 내가 밤에 혼자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니 야간 상황을 점점 해볼 일은 없다. 오늘은 저번에 한 바퀴 돌아봤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돌며 구경을 했다. 그리고는 무얼 먹어볼까 생각한다. 교자가게가 줄이 길게 서 있었던 걸 떠올리고 그곳으로 가보니 오늘은 줄이 길지가 않다. 재수다. 내 앞에 몇 팀이 다다. 이럴 때 시도해봐야 한다. 그래서 교자를 한 접시 시키고 레모네이드를 한 잔 주문했다. 고치시의 레모네이드는 알콜량이 상당하다. 이거 한잔 마시고 빙글빙글 돌면서 알딸딸해져 버렸다.


고치시의 교자는 가히 명성이 높을 만했다. 겉은 아주아주 얇고 바싹 튀겨져 마치 감자칩을 먹을 때처럼 바스락 소리를 낸다. 속은 질척거림이나 비릿함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야채위주인 듯 상큼하게 느껴졌다. 육즙은 가득하면서도. 이래서 다들 좋아하는구나 싶을 만큼 괜찮은 교자였다. 이런 교자라면 나도 당연히 좋아했지! 하며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다음으로 도전할 것은 고치시하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가다랑어 타다키다. 그런데 와서 볼 때마다 줄이 너무나 길다. 한 시간도 넘게 줄을 서서 저걸 먹어야 해 말어야 해?를 고민하며 포기했었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다. 여행 가서 그 지역의 유명한 것들을 먹는 재미가 얼마나 큰데 절대 안 먹을 수 없다. 오늘은 무조건 먹기로 결정하고 줄을 섰다. 그러나 시간은 의외로 빨리 지나갔다. 한 직원이 짚을 태워 가다랑어를 그을리는 모습을 계속해서 직접 보여준다. 멋진 불쇼를 보는 것도 같고 생전 처음 보는 구경거리라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얼마나 많은 가다랑어들을 그간 불에 그을리며 만들어 냈을까? 아주 능수능란한 손놀림이다. 나는 내 차례가 점점 다가오자 다른 사람들이 무얼 시키는지 매의 눈으로 바라봤다. 모두들 시키는 것이 비슷했다. 어떤 걸 시켜야 할지 미리 고민하라고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주는 이 시스템은 참 좋다. 나는 가다랑어 타다키 위에 굵은소금이 뿌려진 시오 메뉴와 초밥의 형태로 만들어진 타다키를 주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파래 튀김을 추천하기도 했지만 나의 눈에 비친 파래 튀김은 기름이 줄줄 흘러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맛있었다는 평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문하지 않았다. 그건 콜레스테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해당사항이 없고 누릴 자격이 있는 자들을 위한 선물이니 너네들이나 많이 먹으시라.


가다랑어 타다키를 먹어 본 소감을 말한다면, 고치시를 여행한다면 무조건 먹어야 해! 이거다. 나는 이후에 다른 날에도 또 가서 줄을 서서 사 먹었다. 그날은 그다지 줄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그날도 역시나 또 너무나 맛있었다. 생마늘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와서 그렇게 마음 놓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고치시를 여행한다면 무조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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