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 온 날. 하루 종일 잔 날, 고치시의 둘째 날
고치시의 둘째 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다. 어떻게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비가 오나? 잠시라도 그치면 후다닥 뛰쳐나가볼까 하고 틈나는 대로 창밖을 확인했는데 쉼 없이 , 주야장천,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대단하다. 고치시. 오늘은 비 내리는 고치시 덕분에 강제 휴식 모드였다. 하루 종일 자다 글 쓰다 노래하다 또 자다했더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지금도 비가 오나 싶어 창을 열어 확인하니 여전히 부슬부슬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끈기와 인내, 본받아야겠다.
오늘 걸은 걸음수가 82걸음이라고 휴대폰에 표시되어 있다. 아마 아침에 호텔 조식 먹으러 갈 때의 걸음수일 것이다. 돌아보니 시코쿠 한 달 살기 와서 2주도 훌쩍 넘어간 지금까지 이런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게 더 놀랍다. 역시 나의 날씨요정술! 그 내공이 엄청나지 않은가. 이건 정말 그렇다. 내가 늘 "나는 날씨운이 좋아", "나는 날씨 요정이야"라고 말하며 살아서인지 언제 어디를 여행하든 날씨운이 정말로 좋았다. 그 많은 여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씨로 인해 고생을 하거나 좋지 않은 기억이 거의 없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난 늘 생각하며 감사해한다.
호텔프런트에 가서 우산 빌려 잠시 나갔다 올까도 생각했지만 뭐 하루쯤 안 나가보는 것도 나의 여행 기록에 특이한 날로 남겠다 싶어 꾹 참고 견뎌본다. 덕분에 어젯밤도 푹 자고 오늘도 틈틈이 잤다고 피부 상태가 아주 좋다. 칙칙해져 가던 비주얼도 어느 정도 회복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강제 휴식하게 만든 비 고치시가 싫지만은 않다. 불면증이 있던 나는 이번 시코쿠 여행 와서 잠을 무척 잘 자게 되었다. 불면으로 제법 고생을 하던 내가 지난 1월에 도쿄에서 지낼 때부터 수면의 질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 시코쿠에 와서는 불면이 뭔가 싶을 만큼 잠을 잘 자게 되었다. 숙면을 취하는 나날들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다.
삶이 단순해지니 잠도 규칙적으로 자게 된다. 밤이 되어 피로감이 몰려오면 커튼을 닫고 불을 끈다. 그 순간 나만의 자그마한 공간에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온다. 그러면 꼭 최면술 할 때 레드 썬!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잠의 세계로 빠져버린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불면증 탈출기를 말해주고 싶다. 첫 번째, 삶의 단순성과 규칙성이다. 여행 와서의 하루는 낮엔 해를 충분히 받으며 실컷 걷고 하고 싶은 거 하는 정도밖에 하는 일이 없다. 정말 단순하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하루를 정리하며 일치감치 잠자리에 든다. 매일 규칙적이다. 이렇게 삶이 단순해지고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살면 몸도 마음도 거기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
두 번째는 잠자기 전 뇌의 단순성과 규칙성이다. 집에 있으면서도 많이 걷고 부지런히 뭐든 찾아가며 일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집에서 몸이 덜 힘들어 잠을 못 자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밖에 나오면 잠을 이렇게 잘 자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 봤다. 잠자리에 들면 모든 상태가 릴랙스 되어야 하는데 집에서의 나의 뇌는 오히려 잠자기 전에 활성화되며 계속 부스팅 된다. 특히 잠자리에 누우면 온갖 상상과 꿈의 나래를 펼치며 더욱 신이 나서 활동량이 왕성해진다. 그런 뇌가 어찌 잠잘 생각을 하겠는가? 뇌가 신나서 춤추며 놀고 있는데 무슨 잠의 세계로 빠져들겠는가 말이다. 그러다 힘들어 지치면 마지못해 잠이 드는 패턴이 계속되니 불면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행복하게 나른한 상태로 잠이 들어야 할 텐데 힘들어 지쳐서 잠이 드니 나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리가 없다. 이것만 고쳐가도 나의 여행은 대성공 아닌가 싶었다.
잠자기 전 나의 뇌의 과부하뿐만 아니라 나의 신경 과부하도 나를 힘들게 하는 주 종목이다. 그래서 몸의 육체적 활동량은 같아도 마음의 활동량, 신경의 과부하로부터 단순화되는 것이 내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특히 큰 장점이다. 모든 신경의 선이 끊어지는 것 특히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오면 더욱 좋다. 모든 언어들이 나의 신경으로 와닿지 않고 그저 내 주변에 왔다가도 튕겨져 나가니 아무런 흔적도 영향도 남기지 못하는 것. 나는 이 점이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인데 모든 신경의 선, 회로들을 잘라내어 그저 나 혼자 온전하게 서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여행에서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불면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다. 오후 열한 시 열두 시를 전혀 넘기지 않고 아침 다섯 시나 여섯 시까지 숙면을 취하는 아주 건강한 상태에 있다. 잠이란 것이 삶에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를 불면 때에도 느꼈지만 숙면의 세상에서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건강한 삶, 좋은 삶, 행복한 삶에 숙면이 이렇게 필수적인 것이었구나를 느끼니 그렇다.
내가 숙면의 세상으로 오게 만든 건 분명 도쿄여행과 시코쿠 버스킹여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많이 걷고 햇볕을 쪼이고 적당한 운동량과 규칙적인 생활, 빛이 차단되는 침실, 신경의 단순화, 그리고 잠들기 전 영화나 영상에 노출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하다. 그러나 마지막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나는 늘 놓쳐 왔는데 확실하고 가장 효과가 큰 불면증 탈출방법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잠드는 시간에만 집중을 하는데 더 중요한 건 일어나는 아침 시간이었다. 여기에 집중했어야 한다.
그래서 불면증 탈출 방법 세 번째, 아침 생체 시계다. 아침에 나의 몸의 생채 시계를 아침이라고 꼭 알려주어야 하는 것. 돌이켜 보니 나의 불면이 어쩌면 조식폐지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나 활동은 하고 있지만 나의 장기들과 대부분의 세포들은 아침이 아닌 상태, 계속 잠들어 있는 상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아침 시간에 일어난 지 한 시간이 넘지 않는 시간에 무언가를 살짝 먹는 습관을 기르기로 했다.
이렇게 해야만이 내 신체 장기들이 아침이라는 것을 알고 깨어나 거기에 맞춰 생활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이 방법 저 방법을 해 보다 요즘은 야채수프를 한잔 마시는 걸로 정착이 되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면이 정말 깔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저녁 9시가 넘어가면 졸음이 슬슬 몰려오며 밤시간을 몸이 알린다. 그러면 일을 마무리하고 씻은 뒤 곧장 침실로 간다. 그 좋아하던 잠자기 전 영화 보는 버릇도 버렸다. 아무리 늦어도 11시를 넘지 않고 잠에 깊이 빠져들어 아침 6시 즈음 일어나는 삶! 이거 상당히 행복하다. 이것이 나의 오랜 불면을 타파한 숙면 비법이다.